오늘은 주인이 산책길에 나를 데려갔던 동네가게 아주머니 이야기를 해볼게.
사실 주인이 나를 데리고 가게에 가는 일은 극히 드물어. 아무래도 오줌 사고를 칠까 봐 그런 것 같아. 이해해.
어머, 쟤 앉는 것 좀 봐
개구쟁이네 개구쟁이
만져봐도 될까요?
어머머, 좋아하는 것 좀 봐
엄청 활발하네
추우니까 들어와 기다려요
(이건 사실 주인을 위해 한 말이 아니라 내가 추울까 봐 한 말이란 걸 나중에 알았다)
목 마를 것 같은데 물 좀 줄까요?
핫도그 가게 아주머니가 내 주인에게 핫도그를 평소보다 크게 만들어 주셨다.
핫도그 집 아주머니는 내가 물그릇을 홀딱 뒤집었는데도 깔깔 웃는다. 내 주인이 당황스러운 표정을 짓자 괜찮다며 한번 더 웃는다. 음... 내 모습이 그렇게 귀여운 줄 처음 알았다. 오늘 알게 된 것은 핫도그 집 아줌마는 나를 무척 귀여워한다는 사실이다. 다음에 그 집에 가면 어떤 재롱을 떨까 고민해봐야겠다.
잘한 것도 없이 칭찬 받는 게 머쓱하긴 해도 괜찮은 기분이다. 근데, 생긴 걸로만 칭찬받는 건 왠지 세상에 빚진 거 같은 느낌이 든다. 사람들도 그런 기분인지 궁금하다. 우리 주인은 그런 기분을 알까.... 우리 주인이 바깥에서 생긴 걸로 칭찬받는 걸 아직 보거나 들은 적은 없다. 아... 언젠가 세탁소 아주머니가 칭찬 비슷한 걸 한 적이 있다. "OO씨, 어서와요~ 헤어스타일 바뀌었네. 젊어 보인다." 라고 하자 주인의 눈이 초승달이 되는 걸 봤다. 그래서 '젊어 보인다'라는 말이 칭찬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주인은 한사코 "아니에요, 젊어보긴요..." 그러면서 머리를 만지작거렸다. 그러자, 세탁소 아주머니가 한 말이 참 재미있다.
"사실, 난 사람들 머리만 봐. 원래 사람은 자기가 콤플렉스 있는데만 보잖아. 나 머리 빈 거 보이지? 나는 손님들 오면 머리부터 보잖아. 하하하. 사실 머리숱이 웬만하면 난 다 이쁘고 젊어보이는 거 같아."
사실 세탁소 아주머니나 주인이나 머리숱이 그렇게 차이나 보이진 않던데... 암튼 내가 키가 작으니 땅에서 제대로 못 본 것일 수도 있으니 판단은 보류할게.
세탁소 아주머니는 호탕하게 웃으며 인사하듯 머리를 숙여 훤한 속 머리를 내 주인한테 자랑스레 보여준네. 그러자 내 주인이 말하네.
"근데 워낙 피부도 고우시고 얼굴이 하얘서 머리숱이 적은 줄은 몰랐어요. 별로 티도 안 나는데요."
아무래도 주인은 세탁소 아주머니를 좋아하는 눈치야. 왜 주인은 세탁소 아주머니에게 호의적일까... 세 번째쯤 세탁소에 따라갔을 때 나는 그 비밀을 알게 됐지.
"ㅇㅇ씨 어서 와~
오늘은 문자 잘 확인했나 보네?...바쁘면 늦을 수도 있지."
"ㅇㅇ씨 오랜만이야. 보고 싶었어~
수요일에 가져오지 그랬어? 세일하는 날인데...바빴나 보네.
전에 아들 한 번 왔었지? 그때 깜짝 놀랐잖아. 엄마랑 웃는 모습이 아주 똑같아. 어찌나 인사를 잘하고 가던지..."
세탁소 아주머니는 60대라고 들은 거 같은데 정말 생기가 넘치는 분 같아. 내 주인은 세탁소에만 가면 세탁소 아줌마처럼 잠깐 목소리 톤이 높아지곤 해. 그래서 내 주인이 왜 세탁소 아주머니와 말할 때 기분이 좋아 보이는지 생각해보게 된 거지. 바로 그 아주머니의 말투와 친절에 비밀이 담겨 있더라고.
게다가 옥수수 가게 아주머니나 핫도그 가게 아주머니와 다르게 이름을 불러준다는 거였어.
보통, 가게 점원들이 포인트를 쌓아준다며 전화번호를 묻지 이름을 부르진 않잖아?
'전화번호 4자리요, 이렇게 말이야'
근데 세탁소 아주머니는 이렇게 말해
'ㅇㅇ씨 어서 와요~! 전화번호 4자리가 뭐였더라...'
그러면 내 주인은 '뭐였더라가 끝나기가 무섭게 0000'하고 말하지.
어느 날엔 주인이 아주머니에게 묻더라고.
"근데 이름을 어떻게 기억해요? 사람이 엄청 많을 텐데..."
그랬더니 세탁소 아주머니가 하는 말이 이랬어
"그렇지 못 기억하지. 몇 천 명도 넘는데 그걸 어떻게 다 기억해. 단골 좀 기억해두고, 특이한 이름은 저절로 기억하게 되지. ㅇㅇ씨 이름은 잊기 어려운 이름이잖아? ㅇㅇ씨, 안 그래?"
아...잊기 어려운 이름이구나. 우리 주인 이름이.
나는 그날 그 말을 곱씹으며 집으로 돌아왔지. 그렇다면 내 이름은 어떨까, 내 이름도 잊기 어려운 이름일까?
주인 아들이 나를 데려오던 날 눈을 지그시 감더니 '나루'라고 해요,라고 주인에게 말하는 걸 들었지. 주인이 '나루'라는 이름 근사한데? 라고 말했지. 그러자, 주인 아들이 '뭉치, 밍크, 크림, 초코,사랑이, 뭐 그런 흔한 이름 말고요.'
'산책하다가 초코야, 부르면 개들이 다 쳐다보면 어째요?'라고 하더라고. 나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했지.
그래서 내 이름이 꽤 마음에 들어. 주인 아들이 금방 지었지만 오래 생각해 둔 이름인 거 같거든. 뭐든 그래, 금방 했다고 그게 쉽게 정한 게 아니란 걸 말이야. 아마, 주인 아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내 이름을 지어놓았음에 틀림없어.
얼마 전, 주인이 책을 읽다가 아들에게 하는 말을 들었어.
'ㅇㅇ야, 나루라는 이름이 남한산성에 나오더라. 너랑 애기 때 우리 거기 갔었잖아? 아...기억 안나겠다. 네가 나루만 했을 때야. 널 업고 갔는데 기억 날 리 없지.'
'오우! 그래요? 이런 걸 운명이라해요? 나루가 우리 집에 와서 나루가 된 거 말이죠!'
요즘 주인 아들이 나를 보면 자주 하는 말이 있지.
"엄마, 얘는 진짜 귀여운 거 같아요. 자는 것도 노는 것도 먹는 것도, 기지개 켜는 것도, 나는 그래도 찰박대며 물 먹는 게 젤로 귀여워요."
귀엽다는 말을 하면서 웃는 주인 아들의 볼처럼 내 볼도 그럴까, 나는 나를 본 적이 없어 나를 상상할 뿐이다.
나는 주인 식구들이 '나루야~'하고 부르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주인을 쳐다본다. 개에게도 이렇게 이름이 대단한데 하물며 사람에게 이름이 중요한 건 두말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산책할 때 내가 앞서서 걸을 때 주인이 이유 없이 나를 불러줄 때가 있다.
'나루야~!'
그럼 나는 아무리 바빠도 뒤를 돌아보거나 멈춘다. 그리고 주인을 기다려준다. 그게 나를 데라고 산책 나온 주인에 대한 예의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 주인은 다정다감한 주인은 아닌것 같다. 정확한 시간에 밥 주고 물주고 그런 거만 잘하지 놀아주지도 않고 맛좋은 간식을 주는 것도 아니고 별로 재미는 없다. 말도 그렇다. 이런 말들을 제일 자주 듣는다.
'나루~ 잘 있었어?'
'나루~~~ 이제 오줌 좀 가리자. 제발!'
'나루, 조용히 해.'
'나루, 그만해. 앉아. 기다려'
'나루야. 네가 내 족쇄다'
'나루, 밥 먹자'
'나루나루나루야~ 가만 있어. 목줄 채우게'
뭐니뭐니해도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은 이거다.
'나루, 산책가자!'
주인의 아들은 이렇게 내가 태어나기도 훨씬 전부터 개를 좋아해왔다. 나를 만날 운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