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보드랍고 차가운 가루들이 눈이란 말이지.
도대체 누가 뿌려주는 걸까.
하늘엔 누가 살고 있는 걸까...
도무지 알 수가 없지만 기분을 상쾌하게 만드는 신비로운 물질이군
내가 지나간 곳엔 내 발바닥이 생기고,
주인이 지나간 곳엔 주인의 발자국이 찍히네.
내 발바닥이 이렇게 귀엽게 생긴 건지 오늘 처음 알았어
주인의 발바닥이 이렇게 큰 지도 처음 알았고
주인도 눈을 무척 좋아하는 거 같아
나를 데리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목소리가 한껏 흥분돼 있는 걸 보면 말이야
주인 아들은 주인보다도 더 좋아하는 것 같고
주인 아들은 눈을 쓸어 동그란 것을 만들어 주인에게 던지고
눈을 쓸어 다독다독 나를 닮은 눈개도 만드네
코끝을 스치는 찬바람에 눈의 냄새가 배어있네
눈에서는 축축한 흙냄새도 낙엽 냄새도 비의 냄새도 나네
눈이 덮었다고 개들이 지나간 흔적이 사라진 건 아니네
사라지지 않아서 내가 왔던 길도 알 수가 있네
주인 아들은 문밖을 나오자마자 자꾸 나에게 눈을 던지네
내가 깜짝 놀라고 눈을 깜빡이면 그게 또 재밌다고 깔깔거리네
내 머리 위에도 눈을 올리고
내 등에도 눈을 뿌리고
내가 나무 아래로 가면 나무를 흔들어 눈을 맞게 하네
그러고 또 좋다고 깔깔대네
주인 아들이 산책을 할 때 이렇게 좋아하는 건 처음 보네
마치 내가 일주일 만에 산책 나온 날처럼 말이야
오늘 우리 주인들이 눈을 나보다 더 좋아한다는 걸 알았지
눈은 목이 마르면 먹을 수도 있는
입에 들어오면 바로 물이 되는
아무 때나 늘 있는 게 아닌
밟으면 소리가 나는
많이 밟으면 사라지는
뭉쳐서 던지고 뭘 만들 수 있는
뭐든 지나간 곳엔 자국이 남는
시간이 갈수록 사라지는 존재
오래 걷다 보면 눈이 햇살보다 눈 부신 존재로군
오늘은 태어나 처음 만난 가장 눈부신 날
나는 앞으로 살며 눈을 얼마나 자주 느낄 수 있을까
주인아, 눈이 오면 날 꼭 밖으로 데려가주렴
내 뒷다리에 고드름이 열릴 때까지 산책을 시켜주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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