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의 거미줄을 치기

사십 대 중반 아재의 사춘기 이야기

by hongfamily

줌파 라히리의 "저지대"를 읽다가 작품 속 인용된 경전의 문구가 나를 사색으로 이끈다.


거미는 자신의 실로써 공간의 자유에 이른다는 문구이다.


거미는 우리와 같이 평면을 기어 다니지만, 녀석이 거미줄을 치는 순간 3차원의 공간을 지배하게 된다. 비록 자신의 능력이 닿는 한에서만 이지만.

나는 말을 삶은 자신의 선택으로 자유에 이를 수 있다는 뜻이라 해석했다.

그렇다면 내 삶의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 내가 쳐야 할 거미줄은 무엇일까.


내가 이런 고민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착한 아들로 좋은 남편, 아빠로, 성실한 회사원으로 살아오면서 작은 문제조차 일으킨 적 없는 순둥 순둥 한 삶을 살았지만, 나의 나이 마흔이 되면서 문제가 찾아왔다.


사춘기도 별로 티 나지 않게 넘겼건만, 이제야 나의 삶을 온전히 나의 뜻대로 살아가고 싶다는 욕망에 휩싸인 것이다. 과거를 되씹어도 보고, 책도 읽어보고 하면서, 나의 삶을 온전히 나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여정을 시작했다.

여정의 첫걸음은 나의 삶을 온전히 되돌아보고 받아들이는 데 있으리라 생각했다. 나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글로 옮기어 세상에 드러낼 수 있을까?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과 나의 자존심이 격하게 부딪히리라 예상한다.

나의 과거를 되짚어보려는 이유는 책의 뒷 표지에 인쇄된 글귀처럼 나의 과거 또한 흘러가버린 것이 아니라 저지대에 고인 물처럼 그대로 고여 있었음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과거를 되돌아보니 좋은 기억들은 잊혀서일까 그다지 좋지 않았던 기억들이 더 많이 떠오른다. 저지대를 파내면 결국 시궁창 냄새가 나는 뻘흙이 나오듯.

나의 과거에 큰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닌지 모른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거나,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거나 혹은 다치거나 병들었던 것은 아니니까.

그러나 나의 부모님에 대해 생각할 때면 안타깝고 애틋한 만큼 가슴 답답한 느낌이 드는데, 사실 나를 힘들게 하는 그 부분은 상당 부분 부모님 자신들의 문제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모른 척할 수 없기에 더욱 힘들다.

어머니의 말씀을 바탕으로 결론 내리자면, 부모님은 사랑 없는 결혼을 하셨고, 성격이나 스타일도 잘 맞지 않았다. 처음부터 그랬는지 살면서 어느 순간부터 그랬는지는 알 수 없다.

어머니는 독립적이고 생활력이 강한 여성이나, 자신의 뜻을 굽히지 못하는 성격의 소유 자시다.

아버지는 말수가 적은 소시민 같은 남자이지만, 자신의 생각을 말로 표출하지 못하는 짜증을 가족들에게 내곤 하셨다. 맞벌이가 아니었기에 어머니는 돈을 벌어오는 가장의 뜻을 거스르지 않으려 노력하였고 우리 집은 그렇게 눈치 보고, 자기 생각을 입밖에 내지 못하는 가정이 되었다.


어머니는 자식들이 삐뚤어질라 참으며 지냈다고 말씀하시지만, 만들어진 위장된 행복은 어린 자식들에게 가정이 행복하고 편안한 곳이라는 느낌은 줄 수 없었다.


곧은 성격의 소유자이신 어머니는 자식들의 감정이나 선택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안 하셨던 듯하다. 당신이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을 암암리에 강요했다. 넉넉하지 못했기에 지원은 충분치 않았고, 네가 원하는 데로 해보라는 말은 거의 들어보지 못했던 것 같다.

겉보기에 착한 아들이었고, 비교적 성공적인 삶을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여전히 스트레스받고 있는 이유가 이것인지 모른다. 평생을 살아오며 나에게 각인된 모습, 내가 싫어하는 모습을 내가 닮아가고 있었다.

아이들에게는 다른 삶을 안겨주고 싶고 아내에게 좋은 남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면, 그 생각이 왠지 부모님과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여겨져 슬프기까지 하다.

어쩌면 소위 말하는 X세대의 부모님들은 모두 비슷할지 모른다. 당신들의 삶을 힘들게 영위하며 아이들을 위해 자신의 삶을 포기해야 했을 테다. 나의 고민은 어쩌면 나 외에 누군가가 함께 짊어진 숙제인지도 모른다.

나의 자유를 찾아간다는 것이 나의 부모님을 미워하는 것으로 귀결될 수는 없다. 과거의 나를 그리고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을 온전히 받아들이고, 나만의 거미줄을 쳐서 스스로 자유를 이루는 것만이 방법 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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