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방에는 오래된 쌀통이 있습니다.
쌀통에 쌀을 가득 채울 때면 어머니는 행복해하시곤 하십니다.
지금은 잘 살지만 힘들던 시절을 기억하자는 의미로 쌀통을 보관하고 계신다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언젠가 어머니께 여쭤보았을 때 다른 물건들과 달리 버리고 싶지 않다고만 하셨지만, 추측컨데 힘든 시기를 이겨내고 자녀들까지 잘 키워낸 어머니의 삶의 흔적처럼 여기시는 듯했습니다.
요즘도 밥을 굶는 사람이 있느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어머니의 역사에는 때꺼리를 걱정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고향집을 떠나 울산으로 오셔서 지금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자식의 입장에서는 몰랐던 부분을 제외하고서도 매우 치열하였습니다.
생산직 근로자로 일하던 아버지의 월급은 쌀을 사고 월세를 내면 반찬거리 살 정도만 남을 정도로 빠듯했기에 어머니는 각종 부업을 이어가며 근근이 살아갔습니다.
알뜰하게 저축을 좀 할 때쯤이면 직장생활에 만족을 느끼지 못하던 아버지는 직장을 그만두곤 하여 그간 모은 돈을 다 써버리기 일쑤였다고 합니다.
과거를 떠올려보면 아버지는 고향으로 돌아가자고 하고 싸우고 달래며 말리던 어머니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흔한 사 치한 번 해보시지 못하셨지만 알뜰하게 저축하여 집을 사고 늘려 이사할 때마다 행복해하시던 모습도 떠오르네요.
어머니가 힘들지만 아버지의 뜻을 따르지 않고 버틴 것은 자식들이 당신의 삶보다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 하나셨다고 어머니는 가끔 말씀하십니다.
시골로 돌아갔으면 우리 삼 남매가 교육을 받아 지금의 모습으로 살 수 없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일까 삼 남매가 모두 대학도 나오고 좋은 직장에 다니며 안정적인 삶을 사는 모습을 어머니께서는 자랑스러워하십니다.
끼니를 거르고 부업들을 하며 고생하셔서인지 어머니는 허리와 목 디스크, 어깨 통증 등 지병을 안고 사십니다.
세월이 좋아졌으니 인생을 좀 즐기셨으면 좋겠는데, 지병들 때문에 작은 즐거움조차 누리지 못하시는 거 아닌가 걱정이 됩니다.
부모님이 저를 키우실 때의 고생을 떠올리면서도 마땅히 효도하지 못하는 제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문득 어머니께 전화하고 싶어 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