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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움직이는 밭 Mar 27. 2022

나만의 포레스트를 꾸려나갈 용기

홍성, 논밭상점

나만의 포레스트를 꾸려나갈 용기


허전했던 논밭이 초록색으로 가득 찬 풍경을 바라보며 봄이 왔다는 걸 실감한다. 벚꽃, 중간고사, 가벼워진 옷차림 등에서 봄을 느끼던 이전과는 다른 것이었다.


홍성역에서 버스를 타고 30분 이상 달려오면 홍동면에 도착한다. 이곳은 온통 논밭으로 둘러싸여 있다. 허브를 기르는 농장의 이름이 '논밭 상점'이라는 것이 단번에 이해된다. 논밭상점에 들어가면 상쾌한 허브 향이 먼저 난다. 여러 향기가 섞인 비닐하우스에서 허브를 만지며 정신없이 하루를 보내게 된다. 저녁 노을빛이 비친 논밭 풍경과 함께 하루를 마무리한다.



나의 하루는 진짜 농부보다 조금 늦게 시작됐다. 8시에 비닐하우스로 출근하면 이미 새벽부터 진짜 농부 님들이 고수를 따고 있다. 옆에서 애플민트를 수확하거나 포장 작업을 한다. 중간에 새참도 먹고 유기농조합원에 납품하는 포장 작업을 마무리하면 오전 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농산물이 판매되는 것을 옆에서 함께 하다 보면 새롭게 알게 되는 사실이 많다. 농작물을 기르고 수확하는 것만큼 판매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 농작물이 가정집의 식탁에 오르기까지 많은 손을 거쳐간다는 것, 가장 신선하게 먹기 위해 농장 직거래가 최고라는 것. 계속해서 농장으로 찾아가야 하는 이유가 늘어난다.


봄이 되면 더 이상 농장에서 여유로운 일상을 즐길 틈은 없다. 농장의 시간은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바쁘게 흘러간다. 매일 들어오는 주문을 위해 허브를 수확하고 포장하고 택배를 보냈다. 어떤 점에서는 도시보다 치열했다. 자연은 매 순간 생존하기 위해 치열하게 존재했고, 농장의 일상 또한 그랬다. 시골에 가면 여유롭게 풍경을 바라보며 지낼 거라 기대했던 건 영화 속 한 장면일 뿐이었다.


하루를 마무리할 때는 판매할 수 없는 허브를 버리고 정리한다. 하나하나 소중한 아이들인데 버려지는 것이 아쉽고 마음이 아팠다. 거의 평생을 농사지으며 살아오신 농부님은 농사를 인문학에 비유하셨다. 자신만의 철학과 내공을 가지고, 순응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 자신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아 판매할 수 없다고 판단하면 버릴 줄 알아야 한다는 의미였다. 내려놓을 줄 아는 마음을 논밭에서 배운다.



논밭에 둘러싸여 지내는 동안 다른 수식어는 내려놓고 그냥 사람으로 존재할 수 있었다. 거창한 수식어나 과장된 목표는 필요하지 않았다. 옷에 흙이 묻어도, 조금 더러워져도, 얼굴이 타고 주근깨가 생겨도, 옷이 해져도, 이상하게 웃어도 괜찮았다. 괜찮은 일이 늘어난 그곳에서 자연스러운 나를 발견했고, 어느 곳보다도 편안했다. 어디서 사는지 보다 어떻게 살아가면 좋을지 깨달았다.


이제는 리틀 포레스트를 찾아 헤매지 않아도 괜찮다. 어떤 곳이라도 나만의 포레스트를 꾸려나갈 용기를 얻었다. 아파트의 베란다여도, 집 뒤편에 있는 작은 밭이어도 좋다. 푸릇한 새싹이 올라올 씨앗을 논밭상점에서 얻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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