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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손민준 Sep 11. 2021

눈 맞춤

눈 맞춤은 관심과 사랑의 표현이며 곧 호감의 화살표이기도 하다

가을 햇살이 좋은 날, 햇볕이 아까워 가족과 양평 두물머리로 나들이를 나갔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는 서정적인 느낌이 있어 언제와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수십이 지나서 찾은 두물머리는 옛날에 보았던 풍경과 달리 영화, 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하고 여행지로 개발되어 많은 인파가 찾는 곳이 되었다. 두물머리의 아침은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몽환적인 신비로움을 간직한 곳이기에 사진작가들이 찾는 최고의 명소이기도 하다. 


두물머리의 풍경을 보며 걷다가 400년이 넘은 느티나무에 도착했다. 오래전 느티나무에서 눈 맞춤으로 만난 한 여자의 영상이 떠오른다.

  

군에서 제대 후 친구들과 두물머리에 놀러 갔다. 나들이 나온 가족은 돗자리에 앉아 삼삼오오 자연을 느끼며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느티나무 아래서 우리 또래 젊은 남녀가 눈 맞춤하며 만남을 즐기는 모습이 부러웠다. 

  

6월의 햇살을 받으며 여자 다섯 명이 재잘거리며 나타났다. 친구L이 점심 준비를 하며 놀러 온 여자들에게 함께 밥 먹자고 말했다. 여자들이 괜찮다며 사양했다. "어디서 왔어요?"라고 내가 묻자, 양평 용문에서 왔다고 한 여인이 답했다. 친구S가 아이스크림을 건네며 합석하자고 말했다. 여자들도 싫지 않은 듯 아이스크림을 받아 들며 미소를 지었다. 우리는 둘러앉아 서로 농담하고 웃으며 친해졌다. 

  

어느 순간부터 여자 무리 중 한 여자와 눈이 자주 마주쳤다. 그녀는 눈웃음을 지으며 내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나도 그녀의 시선이 싫지 않고 눈 맞춤도 싫지 않았다. 우리는 눈 맞춤을 하며 서로 호기심의 대상이라고 생각했다. 여럿이 웃고 떠드는 사이에 우리는 남들이 알지 못하도록 야릇한 시선을 주고받았다. 다른 네 명의 여자와는 다르게 특별한 눈빛 교환이 한동안 이어졌다. 우리만 통하는 비밀의 언어 눈 맞춤으로 상대의 마음을 읽어 낼 수 있었다. 우리는 노래 가사의 한 소절 “눈으로 말해요, 살짝이 말해요. 남들이 알지 못하도록 살짝이 말해요.”처럼 눈빛을 교환했다. 


눈 맞춤은 서로를 바라보며 추는 춤이다. 우리는 눈 맞춤으로 남들이 흔히 말하는 눈이 맞았다. 대화는 없었지만 눈 맞춤으로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은 느낌이었다. 눈 맞춤은 그녀와 나, 서로에 대한 호감이었다. 눈 맞춤은 입맞춤보다 더욱더 달콤하며 사랑의 전도사 역할을 한다. 

  

그녀들이 간다며 일어섰다. 그녀와의 아쉬운 눈 맞춤은 많은 걸 생각하게 했다. 이대로 보내면 다시는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인사하고 돌아서는 그녀에게 용기를 내어 전화번호를 알려 주며 꼭 외우라고 했다. 두 달 후 그녀와 통화 할 수 있었고 우리는 영화를 보며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녀들은 스물 하나, 우리는 스물 일곱이었다. 그 후 나는 지방으로 발령이 났고 그녀를 자주 볼 수 없었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더니 그녀의 눈웃음과 설렌 감정도 사라졌다.

  

몸속에 숨겨진 마음이 있다면 눈은 겉으로 드러난 감정이다. 숨겨진 마음은 알 수 없어도 겉으로 드러난 감정의 눈은 감출 수 없다. 눈 맞춤을 하며 상대방의 눈을 바라볼 수 있다면 우리의 각박한 세상도 살아가는 힘이 된다. 하지만 눈 맞춤이 모두 좋은 건 아니다. 부적절한 욕망의 눈 맞춤은 화를 부른다. 어른의 부적절한 탐욕의 눈 맞춤은 가정불화로 이어져 배우자와 순수한 아이에게 상처를 입힌다. 잘못된 눈 맞춤으로 아이들이 상처받는 일은 없어야겠다. 

  

우리는 안면이 없는 사람과 눈이 마주치면 쑥스러워 서로 피하기도한다. 찰나의 눈빛은 그 사람에 대한 심성을 파악하기에 충분하다. 눈빛에는 그 사람 본연의 마음이 담겨 있다. 얼굴은 다 가릴 수 있어도 눈은 절대 가릴 수 없다. 말로 깊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아도 짧은 눈 맞춤은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무서운 눈, 거짓말하는 눈, 사랑하는 눈은 다르다. 눈에는 그 사람의 삶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만물 중에 사람만이 눈 맞춤에 감정을 느낀다. 눈 맞춤은 관심과 사랑의 표현이며 곧 호감의 화살표이기도 하다. 넉넉한 마음을 가지고 눈으로 웃을 수 있다면 삶의 여유도 생긴다. 눈웃음은 건강과 행복의 상징이기도 하다. 눈 맞춤과 눈웃음은 좋은 화장이다. 웃음보다 우리의 얼굴을 밝게 해주는 화장품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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