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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우선 vs 적자우선

by YT

아직 이슬람과 무슬림에 대한 이해의 내공이 부족해서인지 지금부터 이야기하려는 무슬림의 관습과 전통이 서로 어떻게 연결되고,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나로서는 파악하기 다소 어렵게 느껴진다. 그래서 일부러 엮지 않고, 일단 나열해 보자.

성경 속 이야기에서 무슬림은 장자우선의 원칙을 따른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에굽(이집트)의 종, 하갈과의 사이에서 낳은 이스마엘을 무슬림은 그들의 시조로 여긴다. 하지만 기독교에서는 정부인인 사라와의 사이에서 (이스마엘 보다 늦게) 태어난 이삭을 그 시조로 여긴다. 이것은 ‘대를 이음’과 관련한 입장에서 분명한 차이를 가지는 것이다. 우리 역시 기독교적인 전통과 그 맥을 같이 하는데, 만약 우리가 무슬림처럼 장자우선의 역사를 가졌다면 어떠했을까? 그러면 아마 [홍길동전]은 나오지 못했을 것이고, 조선시대 수많은 서얼들의 눈물은 만들어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적자우선’의 전통은 세력을 가진 비교적 동등한 힘들 간의 정치적 투쟁의 부산물처럼 보인다. 반가에서 아버지의 권위에 대해 (비록 그 당시에 상대적 지위가 다소 낮았다고 하더라도) 어머니의 존재 자체는 견제 장치의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즉 무슬림의 매우 즉흥적으로도 보이는 ‘장자우선’ 원칙은 원탑인 아버지에 의하여 만들어진 일방적인 가정의 질서라면, 적자우선의 원칙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가문이 만들어 낸 조화의 질서처럼 보인다. 그래서 자식을 위해 어머니의 서열이, 왕비의 서열이 중요했던 것이다. 고려시대 태조 왕건은 정치적으로 지방의 유력 호족 세력과 연대하기 위하여 결혼을 정책으로 이용하였다. 그러다 보니, 힘이 비슷한 왕비들의 세력은 하나의 힘으로 모이지 못하고, 몇 개의 작은 세력 동심원으로 구성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왕건의 시대에는 ‘적자’라는 개념이 매우 약했을 것이고, 자연스럽게 왕자들 간 투쟁이 왕위 계승을 두고 벌어졌을 것이다. 그러므로 적자우선의 원칙은 일부일처제에 그 근원을 두고 있는 듯 보인다.

이런 고려 태조 왕건의 시대 같은 모습이 터키 술탄 계승의 모습과 비슷한 점이 있다. 제10대 쉴레이만 대제에 의하여 그 전통이 깨지긴 하지만, 오스만 제국의 술탄은 공식적으로 왕비가 없다. 그럼 왕위 계승은 보통 어떻게 이루어질까? 술탄의 궁에는 완전히 바깥으로부터 격리된 ‘하렘’이라는 여자 포로, 노예들의 생활공간이 마련되는데, 이곳의 모든 여자는 기본적으로 술탄에게만 봉사할 의무가 있다. 이런 호기심을 자극하는 신비한 공간으로서의 ‘하렘’은 후대에 엄청난 이야기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아무튼 차기 술탄은 이 하렘 여인들의 아들 중에서 결정된다. 즉 우리의 개념으로 치면 노예의 아들이 차기 술탄이 되는 것이다. 물론 하렘 내에서도 자신이 낳은 아들을 술탄으로 세우려는 여인들 간의 암투가 있었고, 술탄이 즉위하면 하렘의 모든 자신의 형제들을 죽여버리는 잔혹함도 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술탄 직위의 계승 프로세스다. 우리 문화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아무리 술탄의 씨지만, 노예의 아들이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술탄이 된다? 그들에게 밭은 중요하지 않은 것이다. 씨가 중요할 뿐이다.

그리고 현재 사우디에서는 여전히 진행 중이고, 또 다른 무슬림 국가에서도 많이 있었던 왕위의 형제 계승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고찰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우디 아라비아의 건국자 압둘 아지즈 국왕은 공식적으로 17명의 부인과 80명의 왕자와 공주가 있었다. 킹 압둘 아지즈 이후 사우디의 왕은 그의 자식 대에서 형제 상속으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그래서 현재 살만 국왕은 즉위 당시 나이가 80세였었다. 어찌 보면 매우 민주적이다. 공평하게 모든 형제들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이 어린 동생은 오래 살아야 한다.

무슬림의 장자우선의 원칙이나, 하렘에서의 술탄 배출 시스템, 형제 상속에서 보면, 무슬림의 문화에서 모계는 큰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ONE TOP 시스템인 것이다. 이것은 여성에 대한 무시라기보다는 왕권이 너무나 강력해서, 모계로 대변되는 대항 세력이 약했던 것으로 풀이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에 반해 적자우선의 원칙은 절대자를 견제하고, 대항하는 세력이 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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