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과 아프리카를 여행하며, 그리고 UAE와 사우디에서 실제 생활하며 느끼는 가장 인상적인 것 중 하나는 인도인의 존재일 것이다. 어디에든 있는 인도인의 존재는 마치 공기와 같아서 매우 당연하고 자연스러워 보인다. 아라비아 반도 국가들에서 인도인들은 기업을 운영하고, 아랍의 일부 관공서에서도 근무하고, 다양한 형태의 도/소매 상점과 유통을 장악하고 있다. 최근 아랍 국들이 자국민들의 고용을 촉진하기 위하여 인도인들의 사회/경제 활동에 다소 제약을 두고 있지만, 아라비아 반도에서 인도 Society는 무시할 수 없는 힘을 가지고 있다. 두바이가 창조경영으로 轉變을 이루기 전, 두바이에는 인도 루피화가 통용되었다. 또, 2000년대 초반만 해도 UAE에서는 힌디의 통용이 아랍어보다 높았고, 영어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이것은 곳곳에 인도 사람들이 있었던 탓도 있지만, 당시 두바이의 아랍인들도 힌디를 어느 정도 구사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비행기에서 아랍 전통 복장을 한 아이들이 인도의 코미디를 보며 즐거워했던 장면을 나는 기억한다. 2000년 초반 당시 우스개 소리로 ‘세상에서 가장 번성하는 인디언 씨티는 두바이다’라는 표현이 있을 정도였었다. 그리고 아프리카로 넘어오면 인도인의 위상은 더 상위층으로 옮아간다.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에서 중요한 핵심적인 기업들은 인도인들이 소유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중동과 아프리카에 일찍부터 인도인들이 많이 진출한 것은 지역적인 근접성도 있지만, 제국주의 시대 영국과 같이 이 지역들로 대거 들어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영국인들이 가는 곳에는 인도인 중간관리자들과 노동 계층이 늘 따라다녔고, 영국인들이 떠난 자리에 인도인들은 남아서, 그들만의 영향력과 문화, 그들만의 사회를 만들었다.
인도인들이 대영제국과 함께 아라비아 반도에 들어왔다면, 레바논과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자국의 불안정성(내전과 이스라엘 문제)으로 인한 도피와 지역적인 근접성으로 아라비아 반도에 진출한 경우다. 아마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지독한 전쟁의 상흔을 겪은 시리아 사람들의 수가 많아질 것이다. 이들 주변 아랍국가 사람들의 장점은 같은 아랍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언어 구사와 민족/문화의 유사성은 아라비아 반도 내에서 점점 인도인들을 밖으로 밀어내며, 현지인들의 중심으로 파고 들어가고 있다. 특히 1960년대 아라비아 반도에서 발견된 석유는 아라비아 반도 국가들의 급속한 산업 근대화를 촉진하였고, 더 많은 우수한 노동력을 갑자기 필요로 하게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당시 이들 국가에서 자국민들은 준비되어 있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인도인들과 주변의 아랍국가들의 우수한 인재들을 필요로 했을 것이다. 석유는 주변 아랍인들을 끌어당기는 힘을 가진다.
그럼 우리는 어떠한가? 먼저 일본 제국주의는 영국의 제국주의와는 달랐고, 해방 이후 맞이한 분단은 우리를 섬 아닌 섬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그 분단으로 인해 우리나라는 냉전의 이데올로기가 짓누르는 압력을 견디며 서서히 근대화를 이루어 갔다. 이런 식민지, 분단, 이념 대립은 우리나라의 해외진출을 지연시켰던 것이다. 최근 20-30년 정도가 우리나라의 해외진출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해외진출은 대기업에 의하여 추동되는 측면이 강하다. 1900년대 말 ‘세계경영’의 대우를 필두로 삼성과 LG의 해외진출이 본격화되었고, 대기업과 협업한 중소기업들의 진출이 시작되었다. 산업적 측면에서도 처음에는 상사(무역), 건설 그리고 중공업이 해외 진출을 이끌었다면 이제는 전자제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또 최근에는 문화 흐름인 한류와 더불어 엔터테인먼트 산업과 화장품, 홈쇼핑, 인터넷 쇼핑 등의 소비재 유통으로 해외진출의 SCOPE이 점점 확산되는 추세에 있다. 지역적으로 우리의 해외진출은 우리와 가까운 중국과 동남아 시장에서 시작되었고, 그것은 세계 곳곳으로 더욱더 확장될 것이다. 세계는 넓고 정말 할 일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