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包의 시대

by YT

터키 사람들을 대하면서 또 유심히 관찰하면서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키도 보통 유럽인들에 비해 별반 커 보이지 않고, 덩치도 작아 보이는데 어떻게 그들은 한때 유럽을 벌벌 떨게 하고, 유럽/중동/아시아/아프리카에 걸친 대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을까? 비록 19세기 들어오면 ‘유럽의 병자’라는 조롱을 받지만, 15세기부터 18세기 동안 터키는 유럽을 위협하고, 세계를 호령했던 대 제국이었다. 신체적으로 다른 민족에 비해 별반 나아 보이지 않는데, 투르크 민족에게는 무슨 비결이 있는 것일까?

알렉산더 대왕은 긴 창을 이용한 팔랑크스 전법으로 그리스를 통일하고, 오리엔트를 향해 파죽지세로 쳐들어갈 수 있었고, 로마는 잘 조직된 백병전의 기술로 지중해를 내해로 만들 수 있었다. 또 몽골은 탁월한 기마 기술로 순식간에 대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 즉 역사적으로, 군사적으로 대제국을 건설했던 국가에겐 그들만의 특별한 비결이 있다.

그럼 오스만 제국의 비결은 무엇일까? 그 비결은 대포에 있다. 물론 오스만 제국 전에도 대포는 있었지만 ‘우르반’이라는 9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대포의 파괴력은 당시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다. 고대에는 주로 평원에서 두 군대가 격돌하는 전쟁이었다면 중세 시대에는 탄탄하고 높은 성을 빼앗는 싸움으로 변화하였다. 이런 공성전은 서로의 합을 겨루는 담백한 전투와는 달리, 시간이 오래 걸렸고, 침략해 들어가는 군대의 희생도 많았을 것이다. 이런 중세의 공성전에서 진가를 발휘한 것이 우르반이었다. 우르반 한방에 유럽의 성들은 맥없이 무너졌다. 우르반은 원래 사람 이름이다. 헝가리 출신 주물 공으로 처음에 그는 비잔틴 제국에 자신의 대포 제작 계획을 알리고 지원을 얻으려 하였으나 퇴짜 맞았고, 오스만 제국 술탄의 지원 아래 자신의 이름을 딴, 거대 대포 우르반을 만들게 된다.

하늘이 쪼개질 듯한 대포소리는 적에겐 공포였을 것이다. 더욱이 여기에, 오스만 제국의 군악대 메흐테르까지 가세한다면 적들이 전의를 잃어버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낮 동안 울렸던 우르반 소리에 혼절해 있던 적군에게, 메흐테르 군악대의 황홀한 음악과 연주는 더 큰 공포를 만들었거나, 전쟁터에는 어울리지 않는 감상이라는 역병을 돌게 했을지 모른다. 그냥 뒤돌아서 고향으로 가고 싶었을 것이다. 이스탄불의 ‘파노라마 1453’ 박물관에 가면 360도로 빙 돌아가며, 콘스탄티노플 공략/함락을 역사화를 통해, 전투 현장음의 음향을 통해 보고, 들을 수 있다. 여기에서도 우르반 소리가 간간히 들린다.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요인들이 필요하겠지만, 오스만 제국에게 대포는 결정적인 무기가 된다. 장기에 비유해보면, 알렉산더와 로마는 ‘卒’의 전투를 통해 세상을 지배했다면, 몽골은 ‘馬’의 시대를 열었고, 오스만 제국은 ‘包’의 시대를 연 것이다. 오스만 제국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는 바로 거대한 대포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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