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한국에 와 병원을 찾았다. 접수를 하고, 지불을 하고, 피검사를 하고, 결과를 듣기 위해 진찰실 앞에서 기다리며 매우 건조한 일상의 단면을 본다. 물론 앞의 두 단계는 KIOSK를 통해 자동으로 처리된다. 하지만 그 프로세스 안에 있는 사람들이 건조하다. 그들의 말이 더욱 건조하다. 천편일률적인 말투들이 그러하고, 규정된 루트의 벗어남을 용납하지 않는 그들의 단호한 어투와 표정이 그러하다. 이런 현상은 카페 종업원들의 응대에서, 1588- 소비자 상담에서도 흔히 드러난다.
SF영화는 기계로 구성된 세상의 인간미 부재를 마치 ‘인간 코어’를 상실한 듯한 거창한 것으로 다루지만, 사실 현재의 이런 프로세스라면 아무리 사람으로 프로세스가 구성된다고 한들 인간미가 살아 있다고 할 수 있을까? 어쩌면 기계 사회보다 못한 것은 아닐까? 숭배되도록 배워온 인간미가 이 정도밖에 안된다면 인간은 기계로 대체되어도 무방할 듯하다. 이것은 휴머니즘이 지독한 이데올로기라는 주장에 힘을 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