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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혜숙 Apr 02. 2022

불안은 나의 힘이 아니라

불안한 사람이 불안한 사람에게 전하는 일기

 게으름과 불안함의 화려한 콜라보래이션으로 오늘도 죄스러운 하루다. 해야 하는 것엔 왠지 정이 없다. '열심히 한다'는 문장에 깃든 함의는 그와 멀찍이 선 내게 더 큰 부채감만 안겨줄 뿐이다.


<체계적으로, 계획을 세워서, 성실하게, 단계별로, 성찰하면서, 초심은 잊지 않고, 뒷심으로는 버텨가면서>


 두려운 것은 목표를 이루지 못할 나보다 최선을 다하지 못할 나에 가깝다. 실패라는 결과보다 제대로 하지 않아서 실패했다고 여겨지는 것이 더 두렵다. 과정과 결과 모두에 걸쳐 있는 복합적인 두려움은 무기력을 낳고 그 자리엔 나태가 스며든다. 불안이 다시금 인다. 한다고 생각하는 것조차 해야 한다는 생각에 힘겹다. 엄습하는 불안감은 습관이 돼버렸다.



 하고 싶은 것에는 가슴이 두근대고 눈이 번쩍 뜨이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춤을 추고 글을 쓰고 읽는 것을 좋아한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잘하는 것과 별개로 하고 있으면 힘이 났고, 할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설레고 기분이 좋았다. 어떻게든 하면 되는 거니까. 그런데 지금은 에너지를 잃은 기분이다. 하고 싶은 것조차도 미뤄나가는 내가, 감각에 상처가 난 것은 아닐까. 그마저도 상처가 났다면 힘은 어디서 다시 찾지? 의욕에 찬란하게 맴돌던 의지의 숨이 쉬이 빠져버린 기분이다.



 '청년이 직접 만들어 나가는 내일!' 같은 카피가 역겹다. 젊어서 많은 권한이 있음과 동시에 젊어서 무엇인가를 해야 한다는 당연한 듯한 에너지가 싫다. 아침에 일으키는 몸뚱아리는 여느 때보다 무겁고, 얼굴은 매번 붓고, 목 부근의 근육통은 특별할 것도 없다. 젊음보다 젊음에 대한 활기찬 희망의 시선이 밉다. 젊을 땐 젊은 걸 모른다면서, 나도 모르면 안 될까?




 며칠 전에는 Y를 만났다. 내 글을 퍽 좋아해 주는 고마운 사람이다. Y는 쉽게 읽히는 독자 친화적 글을 지향하는 사람이었기에 행복에 대해 이야기하는 그녀의 글은 동요같이 부드러웠다.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는 행복이 진짜 행복이라고 이야기하는, 의식의 공격을 받지 않은 말랑한 무의식의 행복이 진정한 행복이 아닐까 넌지시 이야기하는 그녀의 글이 보드라웠다. 부드러운 사람은 부드러운 글을 쓰는구나.



 그런데 불안감은 어떨까, 불안한 감정은 눈앞에 현현할 때 더 진짜 같은데. 의식과 무의식을 넘나들며 몸에 덩굴 내리듯 엄습해오는 불안감은, 진짜와 가짜를 논할 겨를도 없이 신경을 차갑게 식히는 불안감은 어떻게 다뤄야 하지? 사실 이 글을 쓰는 데에도 많은 다짐이 필요했다. 게으름에 대한 글을 쓰고자 게으름을 이겨내고, 나태에 대해 고백하고자 나태를 이겨내야 했기에 용기를 빚는 마음이 필요했다.



 두려움을 나름의 동력으로 삼으라는 말의 폭력성을 서서히 이해해 가는 중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함부로 그들이 겪는 무기력증을 태워내라고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 각자의 맥락 속에서 앓고 있는 어려움과 우울감, 불안을 나름의 힘으로 견디어 낼 수 있도록 마음으로 응원할 뿐이다. 나에게는 사실 그 사람들의 우울한 이야기를 들어줄 모범적인 청자의 자세도, 날카로운 조언을 해줄 예리함과 용기도 없다. 그냥, 벽에 붙은 덩굴줄기의 가지들이 영양분을 나눠 가지듯, 서로 의지해서 불안의 덩굴을 함께 견뎌내고 있다는 감각을 공유하고 있을 뿐이다. 네가 나에게 그랬듯이, 나도 너에게, 존재로서 응원하면 된다. 그래도 당신은 이해해 주리라 믿는다.



 나도 했으니 너도 할 수 있다고 감히 말하지 못하겠다. 근데 할 수 있다. 내 무기는 불안이 아니라 사랑이다. 불안은 결코 나의 힘이자 동력이 된 적이 없지만, 사랑은 그래 왔다. 불안하지만 너를 사랑하니까, 불안하지만 이 일을 사랑하니까, 불안하지만 내 미래와 나를 너무나도 아끼니까. 준비를 하는 과정은 누구에게나 힘들고 불안하지만, 그때 힘이 되어주는 것은 불안이 아니라 사랑임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우리는 외줄 타기 인생에서 시험에 인생을 베팅하는 게 아니라, 있는 힘껏 삶을 사랑하는 중이다. 그게 우리의 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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