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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도 락이다

이날치 밴드

by 비둘기 Feb 05. 2025

2004년 전국노래자랑에 한복 입은 8살 꼬마가 나왔다. 그녀는 자신을 이렇게 소개했다. 

“민요짱, 시조짱 송소희. 박수 많이 쳐주세요!” 

송해 선생님께서는 기특한 눈빛으로 꼬마에게 물었다.

“이름이 뭐라고 했죠?”

“송소희요.”

“어디 송 씨이신 가?”

“송해 송 씨예요.”

한바탕 웃음을 준 꼬마는 시조 한 소절을 읊었다. 빼어난 실력에 많은 이들이 놀랐다. 송해 선생님께서는 허리를 숙여 작은 소녀와 눈을 맞추며 따뜻한 말을 건넸다.

“앞으로도 열심히 공부하시고~ 훌~륭한 명인이 되세요!”     



송소희는 송해 선생님의 말씀을 잊지 않았다. 국악 신동은 국악 소녀로 자랐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연습했다. 많은 이들에게 국악을 알렸다. 꾸준히 자신의 실력을 닦아나가는 그녀가 대단했다. 하지만 그녀가 노래하는 경기민요는 내 취향과 거리가 멀었다. 난 국악에 좀처럼 관심이 없었다. 


    

얼마 전, 우연히 그녀가 자작곡 'Not a dream'을 부르는 영상을 보았다. 한복을 입지 않은 송소희의 모습은 처음 보았다. 그녀는 애니메이션의 주인공 같았다. 잔잔한 일렉기타 소리 위에 흐르는 목소리는 분명 국악 소녀 송소희의 목소리였다.      

https://youtu.be/Zbo7UY8dxh8?si=sHWsbH2lHVCJpbdU

있나 내게도 드디어

구름곶 너무 꿈이 아니야

나의 날 온 거야      

마음을 놓아

이곳에서 날 불러

눈물은 닦아내고

오 달려온 나의 저 길을 바라봐   

<Not a Dream - 송소희>

  

노래가 너무 좋았다. 서울에서 인천을 가는 지하철 속에서 내내 ‘Not a dream’을 들었다. 경기 민요의 창법은 국악에만 어울리는 것이 아니었다. 송소희의 목소리는 민요에만 쓰기 아까웠다. 그녀는 훨씬 더 다양한 음악을 소화할 수 있는 보컬이었다.




반대로 어떤 음악도 우리의 소리로 만드는 이들이 있다. 바로 이날치다. 이날치의 보컬들은 모두 판소리를 전공자이다. 판소리는 북을 치는 사람인 ‘고수’와 노래를 하는 ‘소리꾼’ 두 명이 이끌어나가는 예술이다. 하지만 이날치 밴드엔 북 대신 드럼과 베이스가 있다. 소리꾼들의 목소리는 밴드 사운드를 뚫고 나온다. 그들이 내뱉는 가사는 스토리가 있다. 이건 누가 들어도 판소리다. 베이스 리듬과 드럼 비트가 있어도 이날치 음악은 판소리다.


  

'범 내려온다'를 처음 들었을 때 생각이 난다. 네이버 온스테이지 영상에서 처음 이날치를 보았다. 중독성 있는 베이스 리듬이 흐르고, 누군가가 저 멀리서 이상한 춤을 춘다. ‘저게 도대체 무슨 춤일까?’ 생각하며 나도 모르게 몸짓을 따라한다. 그때 소리꾼들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린다.

https://youtu.be/SmTRaSg2fTQ?si=dOOdk6dPW13LIVAP

범 내려온다범이 내려온다.

송림 깊은 골로 한 짐생이 내려온다.

누에머리를 흔들며

양 귀 쭉 찢어지고,

몸은 얼숭덜숭,

꼬리는 잔뜩

<범 내려온다>     



판소리에 베이스 한 숟갈, 드럼 한 숟갈, 댄스 열 숟갈을 더하니 훨씬 경쾌해졌다. 교과서에도 아무리 강조해도 느끼지 못했던 우리 국악의 가치를 깨닫게 되었다. 처음에는 신기해서, 나중에는 신나서 계속 들었다. 우스꽝스러웠던 춤은 생각보다 고난도 댄스였다. 쉬워보여서 함부로 따라하다간 몸이 삐그덕거릴 수 있다. 



이날치의 노래와 찰떡궁합인 춤을 만든 이들은 ‘엠비규어스 댄스 컴퍼니’다. 이들은 한국관광공사에서 한국을 알리는 영상에도 참여했다. 서울 이곳저곳에서 이들이 춤을 추는 영상은 현재 조회수 5221만회를 기록하고 있다. 한국적인 멋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주는 영상이다. 이날치는 ‘범 내려온다’가 실린 1집 ‘수궁가’로 2021년 ‘최우수 모던록 노래’를 수상했다. 

국악도 락이다.      




대한민국이 동양 문화권이라지만, 우리 생활 모습은 서양 문화권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인간 삶에서 가장 필수적인 요소를 의식주라 한다. 식(食)습관을 제외하고는 우리는 이미 서양 풍습에 물들었다. 우리나라에서 매일 한복을 입거나, 한옥에 사는 사람은 많지 않다. 요즘은 식습관도 조금씩 서구화된다. 이런 환경에서 살아가는 우리에게 국악은 낯선 장르다.


      

자라나는 아이들은 거의 국악을 접하지 못한다. 초등학교에 와서 처음 국악을 접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초등 음악 교과서엔 국악 곡이 많다. 민요, 궁중 음악, 판소리 등 종류도 다양하다. 국악 수업은 쉽지 않다. 평소엔 옆 반에 민망할 정도로 크게 노래하는 아이들도, 국악만 들으면 조용해진다. 판소리는 국악 중에서도 낯선 장르이다. 창을 하는 소리꾼과 북을 치는 고수. 단 두 명이 무대를 장악하며 펼치는 공연의 대단함을 아이들은 알지 못한다. 

"지금 여러분이 화면에서 보는 분은 대한민국 무형 문화재이십니다!"

“......”

아이들은 위대한 곡을 듣지 않는다. 좋아하는 곡을 듣는다.


     

이날치의 음악이 나오고 이런 고민이 많이 줄었다. 판소리를 수업할 땐 이날치의 노래를 함께 들려준다. 아이들이 판소리 관심을 보인다. '도대체 범이 왜 내려왔을까?' 궁금해하고, 판소리가 재미있는 이야기라는 걸 알게 된다. 쉬는 시간에 자기도 모르게 '범 내려온다'를 읊조린다. 교과서에도 아무리 강조해도 느끼지 못했던 우리 국악의 가치를 깨닫는다. 국악이 가야 할 방향이 있다면 바로 이런 식이지 않을까. 이런 예술가들이 더 많이 나타나면 좋겠다. 



'음악 악'자, '즐거울 락'은 같은 한자 樂를 쓴다. 이유는 모르겠다. 음악을 들으면 즐겁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날치는 우리에게 판소리의 즐거움을 전해주었다. 교과서에서 정의하는 판소리는 아니지만 그게 도대체 뭐가 중요한가? 우리를 더 흥겹게 만들 수만 있다면 꼭 소리꾼과 고수 단둘만 무대에 서야 할 이유가 있을까? 꼭 북의 장단에만 맞추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즐거워야 음악이다. 

국악도 락이다.      


https://youtu.be/YEQ_w6Sc80I?si=w_mYYHGc9N7gLqb_

가만히 가만히 조용히 조용히 봐봐요 봐봐요

가만히 가만히 조용히 조용히 봐봐요 봐봐요

가만히 가만히 조용히 조용히     

그림자 자라는 곳

산들이 창창하고 구름이 에워싼 곳 나무 한 그루 서 있으니

칼과 도끼 들고 언덕 위를 오른다

자웅 자웅 자웅 자웅 산꼭대기 올라서서

휘파람을 휘휭 분다

<봐봐요 봐봐요 - 이날치>     


<비둘기 추천 이날치 플레이 리스트>     

1. 범 내려온다     

2. 약일레라     

3. 발밑을 조심해     

4. 별주부가 울며 여짜오되     

5. 봐봐요 봐봐요     

6. 새타령     

7. 여보나리     

8. 어류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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