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왜요?
평소 계획을 잘 세우지 않는다. 세워 봤자 잘 지키지도 못한다. 그런데 올봄 오랜만에 계획이란 것을 세웠다. ‘올해는 아이를 가져야겠다’. 피임만 안 하면 저절로 아이가 생기는 줄 알았다. 아니었다. 6월엔 아내와 산부인과에 가서 함께 검사를 받고, 임신이 가능한 날짜를 받아보려고 했다. 그런데 산부인과가 아닌 암 병동에 가게 되다니. 이래서 내가 계획을 안 세운다.
암 진단을 받고 며칠 뒤, 야구장을 갔다. 늘 그랬던 것처럼 유니폼을 입고, 응원 막대기를 들고, 닭강정을 먹고, 수많은 사람들과 응원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야구장 풍경이었다. 내가 암 환자가 되어도 세상은 잘만 돌아간다.
내 앞자리에는 한 가족이 앉아 있었다. 팔짱을 끼고 야구에 집중하는 아빠, 간식거리를 준비하는 엄마, 야구엔 별 관심이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마냥 즐거워 보이는 딸. 그 딸은 온 신경을 야구에 집중하신 아빠 입에 과자를 넣어주었다. 참 보기가 좋았다. 그런데 불현듯 나약한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도 저런 행복을 느낄 기회가 올까?’
눈물을 참으려고 아픈 목으로 열심히 응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원하던 팀은 졌다.
PET-CT 검사 결과를 확인하러 인하대 병원에 갔다. 암이 얼마나 퍼졌는지 확인하는 검사였다. 이비인후과가 아닌 혈액종양내과에서 받는 첫 진료이기도 했다. 진료실에 들어가자 교수님은 나와 아내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그리고 물었다.
“두 분 결혼하셨나요?”
“네. 했습니다.”
“혹시 아이가 있으신가요?”
“아직 없습니다.”
“젊은 분들에게 미안한 말씀을 드리게 되었네요.”
가슴이 철렁했다.
'뭔가 많이 잘못됐나 보다. 나 죽는 걸까?'
교수님께서는 말씀을 이어 나갔다.
“공격성이 강한 림프종이긴 합니다만, 다행히 암이 아직 많이 퍼지진 않았습니다. 이런 경우 완치를 목표로 치료합니다.”
‘완치’라는 말이 귀에 들리자 마음이 조금은 편안 해졌다. 휴.. 살 수 있겠구나.. 그럼 도대체 ‘미안한 말씀’은 뭘까? 교수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야 한다.
“항암 치료를 하면 낮은 확률이지만, 불임이 되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래서 항암 치료를 시작하기 전에 정자 냉동을 먼저 하실지, 아니면 바로 항암 치료를 시작할지 정해주셔야 합니다.”
아내와 나는 고민했다. 불과 한 시간 전까지는 살 수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미래의 아이를 고민하고 있다니. 그 모습이 우습게 느껴졌다. 아내는 나에게 말했다.
“그래도 치료 빨리 받는 게 낫지 않을까?”
교수님이 한 마디 덧붙였다.
“사람이 화장실 들어올 때랑 나올 때가 달라요. 많은 환자 분들이 처음엔 낫기만 하면 좋겠다고 하시는데, 나중에 낫고 나면 후회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교수님은 다음 진료까지 결정해 달라고 하시며, 정자를 냉동하는 병원을 소개해주셨다.
다행히 예약이 빠르게 잡혔다. 아내가 출근길에 나를 병원에 데려다줬다. 병원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니 ‘난임 센터’라는 간판이 보였다. 참, 별 경험을 다해보는구나. 병원 안으로 들어가니 대부분 여성분이셨다. 한두 명 보이는 남성 분들은 아내와 함께 오신 분들이었다. 간단한 상담을 하고, 피를 뽑고, 의사 선생님께 설명을 듣고, 작은 밀실로 들어갔다. 그 안에서 있었던 일은 비밀이다.
밀실에서 10분쯤 뒤에 다시 의사 선생님께 갔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정자가 건강하다고 말씀하셨다. 잘 얼려서 보관할 테니, 꼭 치료 잘 받고 다시 오라고 말씀해 주셨다. 병원을 나오며 훗날 만날 내 자식을 떠올렸다. 덕분에 며칠 동안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죽음의 공포가 사라졌다. 차가운 냉동실에서 얼어붙은 채 나를 기다리고 있을 내 자식아.
참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