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수업

by 비둘기

초등학교 4학년 때, 담임 선생님께서 <천국의 아이들>이라는 영화를 보여주셨다. 초등학생 알리는 여동생의 하나뿐인 구두를 잃어버린다. 엄마에게 혼나지 않기 위해, 알리는 자기 신발을 동생과 함께 신는다. 다행히 동생은 오전반 수업을 듣고, 알리는 오후반 수업을 들어서 하나의 신발로 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대신 지각하지 않기 위해 알리는 미친 듯이 달려야 했다. 남매는 매일 처절한 이어달리기를 했다.



어느 날 알리는 달리기 대회 광고지를 보게 된다. 3등 상품은 운동화다. 1,2등 상품이 뭐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운동화보다 훨씬 비싼 물건이었던 건 확실하다. 알리의 눈에 들어온 건 비싼 상품이 아니었다. 오직 운동화였다. 본의 아니게 매일 달리기 훈련을 했던 알리는 3등을 할 자신이 있었다. 알리는 동생에게 약속한다.

“오빠가 꼭 3등 해서 새 운동화를 선물해 줄게.”



워낙 오래전에 봤던 영화라서 기억이 희미하다. 결말도 잘 생각나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선명하게 떠오르는 장면이 하나 있다. 영화가 끝날 때쯤 우리 반 교실은 눈물바다가 되었다. 남녀 가릴 것 없이 대부분의 친구들이 울었다. 선생님도 눈물을 참지 못하셨다. 영화가 끝나고 울지 않은 친구들은 한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중에 내가 있었다.



나에게도 감동의 순간은 많았다. 책을 읽으면 인상 깊었던 부분을 기록했다. 좋아하는 영화는 대사를 외울 정도로 보고 또 봤다. 좋아하는 밴드의 라이브 콘서트도 참 많이 갔다. 하지만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음악을 들으며 펑펑 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감동이 눈물로 연결되진 않았다.



아내는 나와 반대다. 감정이 풍부하다. 짧은 감동 영상을 보고도 눈물 흘린다. 같이 영화를 볼 때 아내는 나에게 묻는다.

“너는 이걸 보고도 눈물이 안나?”

가끔은 좀 더 심한 말도 한다.

“너 사이코패스 아니야?”

가끔 나도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내가 어딘가 고장 난 게 아닐까? 감정과 눈물을 연결하는 신경이 손상되어서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림프종 진단을 받은 날, 펑펑 울었다. 성인이 되고 이렇게 울어본 적은 없었다. 며칠간 자다 깨서도 울고, 밥을 먹다가도 울고,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다가도 울었다. 그동안 흘리지 않았던 눈물을 한 번에 쏟아내고 나니, 감정이 깨어났다. 울고 있는 나를 보며 울음을 참는 아내. 아무렇지 않은 척 위로하던 아빠와 오히려 더 밝은 목소리를 들려주던 엄마. 학교는 걱정하지 말고 치료 잘 받으라며 나를 안심시키던 동료 선생님들. 먼 거리를 개의치 않고 찾아와 밥을 사주던 친구들. 이들과 함께할 시간이 어쩌면 그리 길지 않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니,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이젠 책을 읽을 때도, 영화를 볼 때도, 노래를 들을 때도 전에 느끼지 못했던 다양한 감정들이 생생하게 느껴진다. <노인과 바다>를 읽으며 노인의 처절한 사투에 눈물이 나고, 노라조의 <형>을 들으며 코 끝이 찡해졌다. 영화 속 인물들의 이야기도 내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이제야 진정으로 문학을, 음악을, 예술을 제대로 즐길 수 있게 되었다.



<천국의 아이들>도 다시 한번 봐야겠다.

그날 교실에서 눈물 흘리던 친구들을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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