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상대변경
첫 입원을 한지 하루가 지났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내 한 몸 뉘일 공간만 있다면 어디든 살만하다. 양팔에 꽂힌 주사 바늘만 아니라면 이곳도 꽤 편안하다.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몇 걸음 되지 않는 복도가 전부다. 그게 조금 답답하긴 하지만, 누워서 노는 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 아니던가. 병실 창문으론 한강 뷰도 보였다. 다음에 입원할 땐 창가 자리에 앉고 싶었다.
아침엔 교수님 회진이 있었다. 아침밥을 먹고 있는데, 간호사 분들이 병실 커튼을 모두 열었다. 맞은편 환자 분과 밥을 먹는 모습을 공유했다. 인사라도 해야 하는 건가, 아니면 그냥 계속 밥을 먹으면 되는 건가. 고민하는 순간 교수님과 다른 의사 선생님, 간호사님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의학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았다.
담당 교수님께서는 짧게 말했다.
“정확한 림프종 아형(종류)이 나왔습니다. 진료 땐 미만성거대 B세포림프종일 확률이 높다고 말씀드렸는데, 버킷림프종이네요.”
아내가 오래도록 찾아낸 정보에 의하면 미만성거대 B세포 림프종은 가장 흔한 림프종이다. 모든 암은 나쁘지만, 그나마 순한 놈이다. 반대로 버킷림프종은 공격성이 강한, 성격 더러운 놈이다. 조직 검사에선 미만성거대 B세포 림프종 혹은 버킷림프종 둘 중 하나라는 결과를 받았다. 처음 진료를 받을 때,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암이 목 부위에만 있고요. 환자 분이 그리 아파 보이지 않아요. 버킷림프종은 발견하는 순간 이미 온몸에 퍼진 경우가 많고, 굉장히 고통스러워하시거든요.”
그런데, 알고 보니 내 몸에 침투한 녀석이 그 지독하다는 버킷림프종이었다.
교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치료는 그대로 할 거예요. 항암제 몇 개 추가되고, 양이 좀 더 늘어나는 거예요.
잠시 후 간호사님께서 오셔서 몇 가지 설명을 더 해주셨다. 2박 3일 동안 입원하는 것으로 알고 왔는데, 버킷림프종 항암은 6박 7일 동안 해야 한다고 하셨다. 항암제의 종류도 양도 더 많아졌기 때문이란다. 2개밖에 챙겨 오지 않은 속옷이 걱정되었다. 국가 지원이 안 되는 약이 있어서, 치료비도 조금 더 많이 든다고 했다. 살 수만 있다면 빈털터리의 삶도 좋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소식은 아닌 것 같았다. 다른 사람에겐 굳이 말할 필요가 없었다. 말해도 어차피 알아듣지도 못할 것 같았다. 그래도 아내에겐 말해야 했다. 안 그러면 두 개의 속옷으로 6박 7일을 버텨야 한다. 일할 때 들으면 심란할 것 같아서 아내가 퇴근할 때까지 기다렸다. 퇴근했다는 메시지를 보고 고백했다.
“나 버킷림프종이래.”
그때부터 아내는 버킷림프종 연구에 들어갔다. 잠시 후 아내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버킷림프종은 희귀하다. 후기가 많지 않다.
-치료는 다들 잘 되더라
-너는 취향도 참 독특하더니
-병조차도 희귀한 병에 걸리냐
그 말을 듣자 조금은 심란하던 마음이 평화로워졌다. 고요한 마음으로 아내에게 꼭 하고 싶었던 말을 했다.
“나 속옷이 더 필요해. 한번 와줘야 할 것 같아.”
2025년 항암 치료를 마친 후 완전관해 되었습니다.
현재 회복 중입니다.
이제서야 지난 시간을 돌아볼 여유가 생겨
투병기를 잠깁니다.
제 투병기가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