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
이 글은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했습니다. ‘읽고, 쓰고, 달리는 걸 좋아하는 초등교사’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읽지 못하고, 쓰지 못하고, 달리지 못하고, 가르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직업도, 취미도 내가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궁금해졌습니다.
‘언제나 나를 설명할 수 있는 변치 않는 한 문장은 없을까?’
그 문장을 마침내 찾았습니다.
나는 ‘사랑받는 사람’이었습니다.
건강한 게 제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효도였는데, 그마저도 저버린 저에게 부모님은 매일 같이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습니다. 머나먼 광주에서 제가 사는 인천까지 찾아왔습니다. 장모님과 장인어른께서는 매일같이 밥은 먹었는지, 먹고 싶은 것은 없는지 물어보셨습니다. 암 환자에게 좋다는 염소탕을 포장해서, 한 시간 넘게 지하철을 타고 가져다주셨습니다. 한동안 연락이 뜸했던 친구들도 소식을 듣고 밥을 사준다며 찾아왔습니다. 병원까지 면회를 와준 친구들도 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에게 안 좋은 소식을 전하게 되어 미안했지만, 먼 곳에서 벗이 찾아오니 기쁘지 아니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암에 걸린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제 옆을 지켜준 아내가 있었습니다. 안 그래도 하자가 많은 사람이 암까지 걸렸으니, 합리적인 인간이라면 버리는 게 마땅할 텐데, 아내는 오히려 자기의 모든 삶을 저에게 맞추는 비이성적인 행동을 보여줬습니다. 림프종 카페에 가입해서 모든 글을 다 읽으며 공부하고, 자기는 먹지도 않을 아침밥을 차리기 위해 평소보다 30분이나 일찍 일어나고, 인천에서 서울까지 매번 병원을 데려다주고, 퇴원하는 날엔 늘 저를 위해 맛있는 음식을 사주었습니다.
돈과 시간과 수고로움을 모두 감수하면서도 나를 찾아 준 모든 이들. 경제학적으로 완벽히 비합리적인 사람들이 저에게 사랑을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들 덕분에 림프종이라는 악독한 녀석과 싸워 이길 수 있었습니다. 가장 불행할 줄 알았던 한 해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한 해로 마무리되었습니다. 그들에게 받은 사랑을 어떻게 되돌려 줄 것인가? 제 남은 삶의 과제입니다.
앞으로도 우리에겐 수많은 절망이 찾아올 겁니다. 노력은 자주 우리를 배신하고, 시련은 언제나 예고 없이 다가옵니다. 우린 언제, 어디서 다시 한번 좌절할지 모릅니다. 그때마다 함께 떠올리면 좋겠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얼굴을.
나를 사랑해 주는 이들의 표정을.
그 얼굴과 표정이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울 겁니다. 절망을 이겨낼 힘을 줄 것입니다.
그러니, 그들을 믿어 봅시다.
당당히 절망과 맞서봅시다.
저도 함께 싸우겠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2025년 항암 치료를 마친 후 완전관해 되었습니다.
현재는 정기 검진을 받으며 회복 중입니다.
이제야 지난 시간을 돌아볼 여유가 생겨 투병기를 남깁니다.
제 투병기가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길 바랍니다.
드디어 제 브런치북
<춤을 추며 절망이랑 싸울 거야>가 완결되었습니다.
마지막 에필로그를 작성하고 나니,
항암 치료를 받던 작년 한 해와
몰입해서 글을 썼던 올해 초의 시간들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네요.
브런치를 시작하고 나서
이렇게 꾸준하게 글을 쓴 건 처음입니다.
반드시 남기고 싶은 이야기였고,
꼭 나누고픈 이야기였기에
이토록 열심히 썼던 것 같습니다.
또한 많은 분들이 읽어주시고,
응원과 격려의 댓글도 남겨주셔서
더 즐겁게 썼습니다.
브런치의 즐거움도 느끼게 되었고요.
그동안 읽어주셨던 많은 분들
정말 감사합니다.
워낙 애정을 담은 글이기도 하고,
브런치북 30편의 제한 속에
못 담은 이야기도 있어서
보태고 덜어내는 작업을 거쳐
투고를 해볼까도 생각 중입니다.
투고를 하게 되면 다시 한번 소식 전해드리겠습니다.
매일 평일 오전엔,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게 루틴이 되었는데,
끝나고 나니 조금 아쉽네요.
이 글을 마치고 나면
무슨 글을 써야 할지도 고민이 됩니다.
우선 일주일 정도는 스스로에게 휴가를 주려고 합니다.
그동안 다른 작가님들 글을 읽으며
푹 쉬면서 다음 글에 대한 방향성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동안 함께 울고 웃어주신 모든 작가님들
다시 한번 정말 감사드립니다.
금방 다시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