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 수 없는 수치스러운 기억
고등학교 시절, 잊을 수 없는 수치스러운 기억이 있다. 35년이 넘도록 선명하게 남아 있는 그날, 나는 이유도 모른 채 따귀를 맞았다. 그것도 교실 한가운데서, 60명이 넘는 친구들 앞에서.
1987년, 고3 교실은 늘 시끄럽거나, 지나치게 조용하거나 둘 중 하나였다. 학력고사를 준비하느라 시험 과목이 아닌 수업 시간에는 대놓고 딴짓을 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나는 이과반이었고, 제2외국어로 일본어를 선택하지 않았기에, 일본어 시간이 되면 몰래 수학 문제를 풀거나 부족한 잠을 보충하는 게 자연스러웠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어 선생님이 들어오시고, 나는 출입문 바로 앞자리에 앉아 조용히 수학 연습장을 펼쳤다. 63명 중 일본어를 선택한 다섯 명만이 선생님의 말을 경청했고, 나머지 학생들은 각자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키가 작고 하늘하늘한 옷을 입은 여자 선생님은 매번 한숨을 쉬며 수업을 이어갔고, 그날도 힘겹게 한 시간을 마친 후 문을 열고 나가셨다.
바로 그 순간, 갑자기 출입문이 "쾅!" 하고 닫혔다. 강한 바람이 창문을 통해 들어오며 문을 세차게 밀어 닫은 것이었다. 나는 그 순간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서고 있었고, 바로 그때, 선생님이 다시 교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내 얼굴에 따귀를 날렸다.
"너,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내가 나가자마자 보란 듯이 문을 이렇게 쾅 닫아?"
순간적으로 머리가 띵했다. 볼이 화끈거렸고, 교실 안은 갑자기 숨소리마저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해졌다. 나는 손으로 따귀를 맞은 뺨을 감싸 쥐고 선생님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선생님은 분노로 몸을 떨며 소리를 높였다.
"너희는 학력고사만 중요하고, 나머지 과목은 무시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거야? 선생을 이렇게 무시해도 되는 거냐고!"
나는 억울했다. 정말로 억울했다.
그 문은 내가 닫은 게 아니었다. 바람 때문이었다. 그런데도 선생님은 나로 단정 짓고 길길이 날뛰셨다. 억울함에 입이 열릴 듯 말 듯했지만, 선생님의 불타는 눈빛에 그만 얼어붙고 말았다.
"교무실로 따라와."
나는 부모님께도 맞아본 적 없는 따귀를, 그것도 공개적인 자리에서 맞고서도 제대로 해명조차 할 수 없었다. 교무실로 끌려가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선생님은 담임에게 "1반 애들이 나를 대놓고 무시한다"며 울분을 토하셨고, 내의 말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게 아니에요. 문이 저절로 바람 때문에 닫힌 거예요."
몇 번이고 설명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냉랭한 시선뿐이었다.
억울했다. 정말 억울했다. 창피하고 모멸감이 들었다. 그날의 내 뺨처럼 마음도 붉게 달아올랐다.
복도에서는 옆 반 아이들이 창문 너머로 고개를 내밀어 무슨 일이냐며 수군거렸고, 친구들도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렇게 나는 결백을 증명하지 못한 채 수업이 끝나고 말았다.
지금이라면 CCTV라도 돌려서 오해를 풀 수 있을 텐데, 그땐 그럴 방법이 없었다. 단지 선생님이 그렇게 믿어버린 이상, 나는 반박할 수 없는 버르장머리 없는 싹수없는 아이가 되어버렸다.
세월이 지나, 나도 아이들을 가르치는 입장이 되었다. 이제야 선생님의 입장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가르치는 입장에서 학생들이 대놓고 딴짓을 하면, 그것만큼 속상한 일이 없다. 수업에 몰입하려고 해도 학생들의 태도가 그를 방해할 때, 회의감이 들고 좌절감이 찾아오는 것도 알 것 같다.
그렇지만, 그때의 나에게는 그 선생님은 너무나 가혹했다. 한순간의 오해로 나는 뺨을 맞았고, 해명조차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 창피함과 억울함은 지금까지도 가슴 한편에 남아 있다.
그날 이후, 일본어는 더더욱 싫어졌다. 일본어 책을 펼칠 때마다 그날의 사건이 떠올랐고, 억울했던 감정이 다시금 되살아났다.
어쩌면, 그 선생님도 지금쯤은 그 일을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그날을 기억한다. 그리고 여전히 억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