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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가스와 연탄가스

그때 그 시절의 맛과 생존기

by 작가 앨리스

고등학교 시절, 가장 맛있던 음식과 가장 무서웠던 순간을 꼽으라면 단연 돈가스와 연탄가스가 떠오른다.


돈가스는 내 인생 최고의 음식이었고, 연탄가스는 죽을 뻔한 순간이었다.
둘 다, 지금은 추억이 되었지만 그때 그 시절의 추억은 새록새록하다.


큰언니와 나는 나이차이가 무려 8살이나 난다. 작은 언니와도 5살 차이다. 내가 고등학생 때 큰언니는 이미 직장 생활을 하고 있어서, 내가 필요한 옷을 사주고, 좋아하는 페리카나 치킨도 사주셨다. 고등학교 때, 내 생일이면 언니가 특별한 외식을 시켜줬다. 경양식집에서의 돈가스를 사주셨다.


그 시절 경양식집은 어쩌다 일 년에 한 번 생일이나 가볼까 말까 한 아주 특별한 곳이었다. 그날은 중간고사가 끝나는 신나는 날이었고, 큰언니가 월급탄 기념으로 수고했다고 친구와 나에게 돈가스를 사주다고 경양식집으로 나오라고 했다.

나의 고등학생 절친 미옥이와 나는 한껏 흥분하여 레스토랑에 도착해서는 언니를 따라서 돈가스를 주문했다.
빵과 밥 둘 다 달라고 하고, 크림색 수프가 곁들여졌으며, 가장 중요한 건 접시를 가득 채운 도톰한 돈가스였다. 물론 양배추와 노란 옥수수와 완두콩 같은 것도 점시에 함께 나왔다.

노릇노릇한 돈가스에서 아주 고소한 냄새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서, 자르지도 않고, 포크로 꾹 찔러서 먹으려다 언니한테 딱 걸렸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얌전히 언니를 따라서 나이프로 썰어서, 돈가스 소스에 찍어서 한입 먹으니, ㅎㅎ 그 맛이 홀딱 반할 맛이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한 고기가 입안 가득 퍼졌다.

소스는 달콤하면서도 진했고, 뭔가 굉장히 멋진, 우아한 맛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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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가 시험 끝난 기념으로 친구까지 데리고 오라고 해서, 나는 절친 미옥이와 함께 갔는데,

그 친구는 평소에도 내 도시락을 탐내던 녀석이었다.
경양식집에 들어서자마자 자기 몫은 물론, 내 돈가스까지 노리는 기세였다.


"언니 한 개 더 먹어도 돼요?"


"응, 먹고 싶으면 더 주문해."


그 말을 듣자마자 친구의 눈이 반짝였다.
그렇게 친구는 돈가스 2인분을 폭풍 흡입했다.


언니는 그런 친구의 먹성을 보며 한동안 멍하니 있다가, 결국 박수를 치며 웃었다.


"대단하다, 대단해. 이럴 거면 세 개 시킬걸!"


친구는 입안 가득 돈가스를 오물거리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그 모습이 어찌나 우스웠던지, 나는 깔깔거리며 웃다가 눈물이 찔끔 나왔다.


그날의 돈가스는 그냥 돈가스가 아니라, 행복 그 자체였다.


하지만 고등학교 시절이 늘 이렇게 즐거운 날만 있었던 건 아니다.


내가 언니들과 친척 교감선생님댁에서 자취할 때 또 한 번 죽다 살아난 일이 있었다.
그 시절은 모두 연탄으로 난방을 했다. 겨울에 가장 싫은 일이 새벽에 일어나 연탄을 갈아야 하는 일이었다.

언니들과 나는 이 일을 서로 미루다가, 결국은 가이바위보로 순번을 정해서 연탄을 갈았다.


그날도 나는 10시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와서는 주인집 딸(친구)과 함께 남은 밥을 반찬에 비벼 먹으며 허기진 배를 채우고 숙제를 하다가 피곤함에 스르르 잠이 들었다.


그런데... 꿈속에서


숨이 턱 막혔다.


머리가 깨질 듯 아팠고, 온몸이 무거웠다.
숨을 쉬려고 해도, 폐 안으로 공기가 들어오지 않는 느낌.


그때 희미하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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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들아, 이러다 죽는다! 어서 일어나!!"


주인아주머니가 급하게 문을 열어젖혔다.
찬 공기가 확 들어오며, 나는 그제야 살아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작은 언니는 연탄가스를 심하게 마셨는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나와 큰언니도 머리를 부여잡으며 겨우 정신을 차렸다.


주인아주머니는 동치미를 가져다주며 한 사발씩 들이키라고 했다.
나는 정신없이 동치미를 들이켰다. 시큼하고 살짝 얼기까지 한 차가운 국물이 목을 타고 내려가면서 겨우
숨이 쉬어졌다.


눈을 반쯤 감고 있는 작은 언니에게 아주머니는 소리를 질렀다.


"정신 차려! 얼른 마셔!!"


그제야 언니도 동치미 국물을 받아 마셨다.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던 우리는 그렇게 겨우 목숨을 건졌다.


다음 날, 엄마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
엄마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더니 바로 주인집에 전화를 걸었다.


"제발 우리 애들 좀 잘 봐주세요. 시멘트로 새는 곳 꼭 막아주시고요."


엄마의 다급한 목소리를 들으니, 나는 그제야 깨달았다.
이 일이 얼마나 큰일이 될 뻔했는지.


그 후 주인아주머니는 아궁이 새는 곳을 시멘트로 막았고, 우리는 다시 평소처럼 지냈다.
하지만 그날 이후 우리 세 자매는 연탄가스 냄새에 극도로 예민해졌다.
조금만 냄새가 나도 숨이 막히는 것 같았고, 창문을 활짝 열어야 했다.


그렇게 몇 주가 지나고, 겨울이 끝나갈 무렵.
나는 주말에 집에 갔다가, 엄마가 슬며시 다녀오시는 걸 보았다.


"엄마, 어디 갔다 와?"


"응, 주인집 아주머니한테 고맙다고 인사하고 왔어."


그제야 나는 알았다.
엄마는 우리를 돌봐준 주인집에 따로 이것저것 챙겨드리고 계셨다는 걸.


고등학교 시절, 내 인생에서 가장 맛있었던 음식이 돈가스였다면,
가장 무서웠던 순간은 연탄가스였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돈가스를 먹을 때면 그 친구의 ‘엄지 척’을 떠올리며 웃고, 캐나다 남자 만나서

몬트리올로 이사 가서 만난 지 너무 오래된 친구가 보고 싶다.


그렇게 우리는,
돌아서면 배가 고프던 그 시절 배를 채우고,
목숨이 위태로웠던 순간에도 따뜻한 손길로 다시 숨을 쉬며,
그 시절을 살아냈다.

그때는 몰랐다. 돌아보니 아련하고,

시간이 지나니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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