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은 제도의 영향을 받는다
우리의 행동은 제도의 영향을 받는다. 북한에 사는 사람에게 보다 자유롭게 살지 왜 남의 눈치를 보며 사느냐고 충고해도 그의 자유는 제도에 의해 상당히 제한을 받는다. 학생의 절반 이상이 수업 시간에 잠을 자는 우리나라 고등학교 현실을 왜 문제 삼지 않는지 답답할 때가 많았다. 선생님들도 수업을 듣지 않고 잠을 자는 것은 괜찮지만, 떠들지는 말라고 하신다고 한다. 아이들이 잠을 자도 되는 그 시간에 도서관에서 읽고 싶은 책이라도 읽을 수 있게 해주면 좋지 않을까. 공부가 길이 아니라면 작가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자신의 인생의 길을 찾아 낼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아이들은 모두 다 소중하지만, 교육에서는 점수 경쟁만 있을 뿐 아이들 개개인의 개성과 잠재력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부의 아이들은 열등감과 무기력을 갖게 된다.
"선생님, 김동훈 숙제 안 했대요! 숙제 검사하세요!"
"야우, 정말.... 선생님, 서진영도 안 했어요! 쟤도 점수 깎아야 돼요!"
이런 대화가 고2 남학교 수업 시간에 있었다 한다. 우리의 교육 시스템은 친구들 점수보다 내 점수가 높아지게 하기 위한 다양한 고심을 하게 한다. 점수에 예민해서 친구가 언제 갑자기 경쟁 상대로 돌변할지 모르니, 믿을만한 친구 사귀기가 힘들다. 친구 점수가 낮아져야 내 점수가 높아질 여지를 만들기 때문이다. 믿을 사람은 자신밖에 없는 학교는 우리 입시 제도가 경쟁을 기반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만들어진 퐁조다. 해마다 입시제도가 변경될 때마다 이런 경쟁은 더욱 심해지고 있다. 심지어 생활기록부에 인성이 좋다는 평가를 기록하기 위해 친척의 지갑을 길에 일부러 떨어뜨리고 주운 척해서 경찰에 가져다주고 선행상을 받았다는 소식도 들었다. 인성은 인간성을 말한다기 보다 나의 점수를 높일 수 있는 또 하나의 스펙이 되어 버렸다.
다른 고1 여학생의 이야기도 들어보자.
"선생님, 어떡하죠? 오늘 제 한문 노트가 갑자기 없어졌어요."
"어머, 어떡하냐? 바로 다음 주에 한문 시험이잖아?"
"네. 분명히 자리 뜨기 전에 책상에서 보고 있었거든요. 근데 아무리 찾아도 없어요. 누가 가져갔는지 진짜 짜증 나요. 수업시간에 제가 필기를 진짜 열심히 했거든요. 어쩔 수 없어서 친구 노트 필기 빌려서 복사해 왔어요."
"......"
시험 기간이 끝나고 그 여학생은 그다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선생님, 오늘 정말 황당했어요. 제가 급식 먹고 교실에 왔는데요, 누가 제 한문 노트를 제 책상 위에 가져다 논 거 있죠. 완전 소름 돋았어요...."
"우와, 누가 가져다 놨지?"
"그걸 모르겠어요. CCTV가 교실 안에는 없으니까 누군지 알 수가 없어요."
"그런 얘기 나도 자주 들어. 얼마 전엔 다른 남학교에선 시험 전에 사라진 프린트가 시험 끝나고 보니 쓰레기통에 찢겨져 있더래. 갈수록 이런 현상이 심해지니 참 걱정이다...."
지난 15년간 아이들의 영어를 지도하면서 시험 기간만 되면 흔하게 듣던 유형의 사건이다. 경쟁 시스템 안에서 벌어지는 아이들의 이기적인 행동은 점점 강화되고 있다. 서로 협력하고 위하는 경험을 배워야 할 시기에, 학교는 우정과 화합을 믿지 못하게 만드는 공간이 되었다. 아이들이 원래 그렇게 태어난 것이 아니라, 그런 환경에 아이들을 밀어 넣었다고 봐야 하지 않겠나. 앞으로 제도가 획기적으로 다른 방향을 찾지 않는 이상 점점 더 심각해질 것이다.
학교는 다음 년도 학사일정을 전년도에 미리 확정 짓고 교사 수급이나 기타 준비를 한다. 그러나 교육 개혁은 연말이나 특정 이슈를 빌미로 갑작스레 발표된다. 변경된 정책에 맞춰 환경을 갖출 시간을 주지 않고 곧바로 실행을 하게 만드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2018학년도 수능부터 국어 문,이과 통합이 실시되었다. 개정 이유는 언제나처럼 사교육을 줄이고 공교육을 정상화한다는 것이었다. 학교들은 당황했다. 문과와 이과 학생들이 동일한 국어 수업을 받게 하려면 미리 계획한 커리큘럼과 교사를 배정해야 하는데, 준비할 시간을 주지 않고 곧바로 시행되었기 때문이다. 문과생은 여전히 주 4회 국어 수업을 받고 있었고, 이과는 주 3시간씩 수업을 받고 있는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수업 시수만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배우는 국어 과목도 달랐다. 수능에서는 문,이과 아이들이 같은 국어 시험지로 시험을 볼 예정이라는데 말이다. 교육 당국에서는 어떤 생각을 하며 실행을 먼저 하는지 궁금증이 생겨 어느 날 서울교육청에 전화를 걸어봤다.
"사무관님, 올해부터 문이과 국어가 통합됐잖아요. 문, 이과 아이들이 같은 시험을 보게 되는 게 맞습니까?”
“네 그렇게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학교는 문과는 주 4시간 국어수업을 하고요, 이과는 3시간을 하고 있어요. 주변 학교들이 대체로 그렇게 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사교육을 줄이려면 문, 이과 수업 시수는 최소한 동일하게 맞추고 같은 시험을 치게 해야 할 텐데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이, 어머니 그건 뭐 어쩔 수 없습니다. 정책이 하도 자주 바뀌니까 서류 처리할 일만 산더미처럼 쌓이고요.저희도 그 뒤치다꺼리하느라 정신이 없어요. 저희 아이도 고3인데요. 어쩔 수 없이 학원 보내요. 어머니도 속 편하게 국어학원 보내세요. 이과 아이들이 학원에서 공부하면 절대 떨어지지는 않아요."
"...... 정책을 변경할 때는 항상 사교육을 줄이고자 한다는 주장을 하지 않나요?"
"그러게 말이에요. 교육부가 우리랑 상의하고 정책을 변경하는 것도 아니고 저희도 이렇게 당하는 상황이다 보니 참 난감합니다."
학교는 미리 정해둔 학사일정과 교사 수급을 변경할 여지가 없어 불공평하지만 기존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교육부에서 요구하는 서류만 응대할 수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교육청도 명령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이 잦은 교육 개정은 과연 누가 누구를 위해 하는 것일까? 수능 시험을 출제하는 평가원에 전화를 걸어 같은 질문을 했다. 평가원도 정책을 결정하는 기관이 아니므로 하라는 대로 하고 있을 뿐이라 답했다.
교사들은 자주 변하는 정책과 입시 용어를 따라잡을 수 없어 교사들이 오히려 교육 정보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여러 학급을 가르치고 나서 서류 작업을 할 시간도 복잡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육 정책 개정 뉴스가 발표될 때마다 사교육은 민첩하다. 바로 다음 날부터 '교육 정책 변화에 따른 학부모 전략 설명회'를 개최한다. 학교는 모르는 정보니 학부모가 직접 달라지는 내용을 듣고 대처해야 하기 때문이다. 조급해진 부모는 학원에서 제시하는 수업으로 부족한 부분을 해결할 수밖에 없다. 정확한 정보가 없이 방향을 정한다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 매년 이어지면서, 사교육을 줄이려 한다는 개정의 명분과는 정반대로 교육 개정은 결국 사교육을 점점 더 키워주는 역할을 앞장서서 결과를 낳는다.
독서가 가장 효율적인 공부법인 것을 모르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아이들의 시간을 좌우하는 교육 시스템이 독서할 시간과 환경을 갖춰주지 않는다면 독서하지 않는 아이들은 학교가 만드는 것이다. 모든 학교에 갖춰진 도서관을 아이들의 독서 장소로 이용할 수 있도록, '독서'라는 과목을 가르치는 대신 도서관에서 각자 보고 싶은 책을 읽을 수 있도록 시간을 배정해주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