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글을 꾸준히 읽어온 독자분들은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나는 추리소설 작가를 지망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추리력이 꽤 뛰어난 편이라고 자부한다.
물론 '셜록홈즈'처럼
"왼손에 잉크자국이 있는 것으로 보아 왼손잡이에 펜을 쓰는 직업인 사무직이겠군"같은 추리를 단번에 해내는 건 아니다.
다만, 남들보다 조금 더 관찰하고, 한번 더 생각하고,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라는 질문을 자주 던질 뿐이다.
궁극적으로는 홈즈처럼 탐정이 되기를 원하지만, 소설적 허용을 넘어서 현실에서 그렇게 살다가는 얼마나 피곤할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예전에 홈즈가 "밥을 먹으면 혈액의 80퍼센트가 소화하는데 쓰여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장면을 보고 감명받은 적이 있는, 그 때문인지 나도 정말 극한으로 머리를 써야 할 때는 식사를 거르는 습관이 생겼다.
서론이 길었는데 본론으로 들어가서, 내가 추리력(?)을 발휘했던 한 가지 사건을 소개하고자 한다.
아내와 결혼해 함께 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일이다.
우리는 압력밥솥으로 밥을 해 먹었는데, 분명 밥이 다 될 시간이 지났는데도 밥이 지어지지 않았다.
내가 계속 이상하다고 밥솥을 만지려 하자 아내는 "뚜껑이 올라와 '칙-칙' 소리 나야 하니까 그냥 두라"고 했다.
그렇게 계속 기다렸더니 이내 타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서둘러 불을 끄고 밥솥을 열어보니 쌀이 익지 않았고, 밥솥 바닥은 새까맣게 탄게 아닌가.
아내는 결혼하고 새로 산 밥솥인데 벌써 고장이 났다며 분개했고, 나름 비싸게 주고 산 제품인데 너무 빨리 고장이 났다며 AS접수를 알아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이게 어떻게 고장이 나야 밥이 안 되고 압력이 안 걸리는지 의아해서, 아내의 말을 듣지 않고 밥솥 뚜껑을 이리저리 관찰했다.
"고장이 어떻게 났는지 알아야 AS를 맡기지 않겠냐"는 변명을 하며 유심히 살펴보고 휴대폰으로 검색해 본 결과, 뚜껑 안쪽 가운데 고무 패킹이 찢어지면 압력이 걸리지 않아 이런 증상이 나타난다는 정보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런데 사진 속 밥솥은 검은색 고무 패킹이 보이는데, 우리 밥솥에는 은색 쇠 부분밖에 보이지 않았다.
예전 모델이라 구조가 다른가 싶어 그냥"아마 여기 부분이 문제일 거다"라며 아내에게 사진을 보여주고 AS를 접수하겠다고 이야기했다.
그 순간, 아내는 휴대폰을 보더니 갑자기 식기세척기를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찾았다!" 하며 고무패킹 부품을 손에 들어 보였다.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식기세척기를 돌리던 중 밥솥 뚜껑 부분에서 고무패킹이 빠져버렸고, 우리는 고무패킹이 찢어진 게 아니라 없는 상태로 밥을 한 것이었다.
그래서 당연히 압력이 걸리지 않아 밥이 되지 않았던 것이다.
밥솥을 세척하고 고무패킹을 다시 끼우자, 아무 문제 없이 밥솥이 정상적으로 잘 됐다.
지금도 내가 추리력이 좋다고 말을 하면,
아내는 "밥솥 고무패킹이 없어진 줄도 모르면서 무슨 추리력이냐"라고 나를 몇 년째 구박하고 있다.
사실 거의 다 맞췄는데, 고무패킹이 찢어진 게 아니라 빠진 거라는 마지막 한 끗을 놓쳐 아직도 구박을 받고 있다는 사실이 억울할 따름이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언젠가 반드시 내 추리력을 증명해 보일 날을 기다리면서.
"꼼짝 마! 범인은 지금 이 안에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