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출근의 긴장은 시간이 지난 지금도 선명하다.
같은 층에 배치된 인원 중 다행히 동갑인 남자 셋이 있었다.
우리는 부서와 업무는 달랐지만, 같은 층에서 마주친다는 동질감으로 서로에게 의지하며 빠르게 친해질 수 있었다.
동기들끼리 친했기는 했지만, '같은 성별에 같은 나이, 거기에 같은 층'에 근무한다는 사실은 낯선 회사생활에서 큰 버팀목이 되었다.
서로 잘 알지도 못하는 업무를 알려주고, 밥 먹을 사람 없으면 눈짓으로 챙겨주고, 때로는 회사 욕을 나누며 버틴 그 시절, 우리는 말 그대로 전우였다.
입사 1년 차라면 누구나 한번쯤 하는 고민, '이게 맞는 길일까, 때려치워야 하나'하는 기로에서 한 친구가 리프레시를 제안했고, 우리는 여행을 가기로 했다.
주말에도 출근하는 일정이라 1박 2일 여행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었고, 겨우 하루 비는 날을 맞춰 1월 초에 당일치기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고민한 끝에 여행지는 '통영'으로 정해졌고, 우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차를 타고 출발했다.
20대 후반의 남자 넷이서 떠나는 여행.
그것도 시간에 쫓겨 당일치기로 짬 내어 겨우 가는 일정이지만,
힘든 회사 생활 속 동료들과 함께 여행 간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속에 큰 위안이 되었다.
가서 짬뽕으로 배를 채우고 우리는 루지를 타러 갔다.
나는 싱가포르에서 루지를 타본 경험이 있어 나름 자신감이 있었고, 또 한 명은 놀이기구를 잘 탄다고 했다.
나머지 두 명은 루지를 조금 무서워했고 우리는 올라가서 루지를 탔다.
막상 타보니 상황은 반전이었다.
오히려 루지가 무섭다고 한 둘이 앞에 있는 초등학생들을 거침없이 추월하며 내려가는 게 아닌가.
질 수 없기에 나도 열심히 따라 내려갔지만 결과는 완패였다.
내려온 뒤 모두 어린애처럼 깔깔거리며 웃었다.
무섭다던 둘이 "너무 재밌다"며 좋아했고, 우리는 동심으로 돌아간 듯 신나 했다.
"이제 뭐 하지?" 고민하던 찰나, 눈에 들어온 건 바닥에 놓인 전동 킥보드 대여 전단지였다.
문제는 내 복장이었다. 나만 코트였고, 나머지 셋은 패딩을 입고 있었다.
낮에는 햇빛이 있어서 괜찮았지만, 해가 질 무렵 바닷바람을 맞으며 킥보드를 타다 보니 겨울멋쟁이답게 폼은 좀 났을지 몰라도, 몸은 꽁꽁 얼어붙고 말았다.
그렇게 해안가를 따라서 2시간 가까이 재미있게 킥보드를 탔다.
바람을 가르며 달리던 순간만큼은 어떠한 고민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는 "내년에도 반드시 놀라가자"라고 다짐하며 헤어졌다.
그 다짐이 곧 회사생활을 버티게 해 준 힘이 되었다.
그날 이후 우리는 매년 정기적으로 여행을 갔다. 제주도, 일본, 대만까지.
지금은 모두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느라 잠시 멈췄지만,
언젠가 아이들이 크면 부부동반으로 다시금 여행을 가자는 계획을 하고 있다.
앞으로의 20년도 그런 약속과 기억들로 버텨내지 않을까 싶다.
결국, 우리는 킥보드로 10년을 버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