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말 구멍과 결혼 생활
"여보. 나 옷 필요해. 옷 좀 사자."
나에게 이 말이 나왔다는 것은 정말 벌거벗고 다니기 직전이라는 뜻이다.
이상하리만치 나는 변화를 싫어한다.
그래서 깔끔하냐 하면 좀 깔끔한 편이긴 한데, 그 방식이 무척이나 특이하다.
원래 더러우면 더러운 대로 두려고 하고, 반대로 깔끔한 자리는 깔끔하게 유지하려 한다.
그래서 사무실에서는 전임자가 자리를 얼마나 치워놓고 갔는지에 따라 나는 깔끔한 사람일 때도, 지저분한 사람일 때도 있다.
물론 너무 심한 더러움은 나도 못 참지만, 보통 떠나는 자리는 최소한의 치움은 있기 때문에 그냥 '허용 가능한 더러움'이라면 굳이 고치지 않고 그대로 유지하는 이상한 습성이 있다.
이렇듯 현상유지가 최우선인 나에게 옷이란 오묘하고도 애매한 녀석이다.
마음 같아서는 잡스처럼 한 벌을 여러 장 사서 매일 입고 싶지만,
잡스니까 그런 괴짜 행동이 설득력이 있는 거지 내가 하면 그냥 옷 안 갈아입는 지저분한 아저씨가 될 뿐이다.
그래서 내 머릿속 '옷 규칙'은 단순하다.
첫째, 어제와 같은 옷을 입지 않는다.
둘째, 손에 자주 가는 애착 옷이어도 일주일에 여러 번 입은 인상을 주지 않는다.
셋째, 돌려 입기가 부족하면 옷을 산다.
이런 프로세스로 작동하고 있다.
그래서 일주일이 넘게 입을 수 있는 복장이 갖춰지면, 옷은 지독히도 잘 늘어나지 않는다.
결국 내가 옷을 사야 하는 순간은 두 가지다. 하나는 살이 쪄서 옷이 맞지 않을 때, 또 하나는 옷이 너무 훼손돼 도저히 입을 수 없을 때다.
문제는 나와 아내가 생각하는 '훼손'의 기준이 다르다는 것이다.
아내는 옷에 구멍이 나거나 올이 풀리면 못 입는 옷이라 하지만, 내 기준은 단순하다. '몸을 가릴 수 있으면 아직 현역'이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내가 패션에 전혀 관심이 없는 사람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속마음은 조금 다르다. 나도 사실은 패션에 관심이 있다.
다만 그 관심이 행동으로 잘 이어지지 않을 뿐이다.
내가 느낀 패션의 핵심은 결국 자기 체형에 어울리는 스타일을 찾는 것이다.
문제는 내 체형이 전형적인 30대 직장인 배 나온 아저씨라서, 이 몸을 위해 여러 벌을 시도해 보는 건 투자 대비 효율이 아쉽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그래서 그냥 슬랙스에 셔츠 또는 라운드 티 정도로 깔끔한 선에서 이번 생은 이렇게 살기로 결정했다.
그렇기에 패션 피플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래도 마음 한 켠엔 패션 피플이 되고 싶은 사람이기 때문에 나름 옷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아내는 결혼 후 늘 말한다.
"옷 사줄 테니까 제발 사러 가자."
하지만 나는 늘 같은 대답이다.
"아직 입을 옷이 있다. 필요하면 말할 테니 걱정 말라."
이건 우리 부부의 작은 불일치다.
옷을 제외하고는 아내는 내 습관을 꽤 마음에 들어 한다.
한 가지 물건을 굉장히 오래 쓰는 습관.
연식이 있는 차인데도 잘 관리된 듯한 모습.(사실은 차를 더럽히지 않아서 깔끔함을 유지 중이었다.)
거기서 무언가 정을 붙인 사람과 물건을 대하는 태도를 보고 아내는 '저 사람은 물건을 소모품으로 대하지 않고 오래 함께하는구나.'라는 인상을 받았고, 그 점이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지금도 옷만 빼고는 내 물건을 쓰는 태도가 마음에 들지만, 여전히 옷에서는 타협을 못하고 있는 지금이다.
"여보. 제발 양말 구멍 나면 좀 버려! 양말 사줄게!"
"안 보이는 데라 괜찮아~ 보이는 데 구멍 나면 버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