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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달래 Mar 12. 2024

고추 먹고 맴맴 담배 먹고 맴맴

EP1. 첫 번째 멍

아버지는 나귀 타고 장에 가시고

할머니는 건너 마을 아저씨 댁에

고추 먹고 맴맴 달래 먹고 맴맴


할머니가 돌떡 받아 머리에 이고

꼬불꼬불 산골길로 오실 때까지

고추 먹고 맴맴 달래 먹고 맴맴


아버지가 옷감 떠서 나귀에 싣고

딸랑딸랑 고개 넘어오실 때까지

고추 먹고 맴맴 달래 먹고 맴맴




이 노래를 한 번쯤 안 불러본 사람은 없을 듯합니다. 윤석중 님이 가사를 쓸 때는 달래가 아닌 담배였다고 합니다. 어린아이와 담배와 안 어울린다 해서 달래로 개사를 하게 되었는데 처음 의미가 더 나았다고 하는 분들도 계십니다.

제 브런치 스토리 필명이 김달래가 나온 전래 동요입니다.

막상 이름을 쓰자니 부끄럽고 해서 딸아이랑 뭐라 할까 궁리하다가

"엄마 무슨 글 쓰고 싶은데요?" 하길래

"살아온 이야기, 어릴 적 이야기 같은 거. 고추 먹고 맴맴 달래 먹고 맴맴.."

노래가 절로 나옵니다.

가만히 불러보았습니다.

"달래가 무슨 달래지? 진달랜가?"

딸아이가 묻습니다.

"아니 먹는 나물 달래 있잖아. 생으로 먹으면 쓴맛 나는 거.."



아버지 따라 장에 가고 싶은데 아버지는 집에 있으라고 해... 눈물이 나고

할머니 따라 아저씨 댁에 가고 싶은데 할머니는 집에 있으라고 해... 눈물이 나고

집에 혼자 남겨져서 엄마도 없는 상황이라 외로움이 서러움이 짙은 상황이라 생각됩니다.



고추 먹고 맴맴 달래 먹고 맴맴은

눈물이 나오는데 참으면서 핑계를 대는 아이의 하소연 같은 노래입니다.

매운 고추를 먹으면 눈물이 나고 마늘이나 달래를 먹어도 눈물이 납니다. 원본 가사에 나오는 담배연기에도 눈물이 나오죠. 가사에는 아이들의 눈에 눈물이 나오는 것들로 표현이 잘 되어 있습니다.

그래야 눈물이 매운 걸 먹어서 나온다고 이유를 댈 수 있습니다.

그 눈물은 언제까지 나올까요?

할머니가 따끈한 떡을 얻어 가지고 집에 오실 때까지

아버지가 장에서 고개 넘어오실 때까지입니다.



우리도 어린아이들 앞에서 눈물이 날 때

"눈에 뭐가 들어가서..."라고 할 때가 있죠. 이 동요에서도 아이의 우는 이유는

뭐가 들어가서가 아니라 고추랑 달래를 먹어서 (담배 연기를 맡아서) 이기에 어른들의 핑계보다 더 위트가 있습니다

'매워서 눈물이 난다'는 말을 '맴맴'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저도 혼자 남겨져 있을 때 눈물이 났습니다.

어릴 때 엄마 아빠가 오빠만 데리고 외출하고 유모언니한테 맡겨졌을 때

친한 친구라 생각했던 아이가 다른 친구랑 놀러 가고 남겨졌을 때

그리고 커서 엄마 아빠가 돌아가시고 완전 고아가 되었을 때...

이제는 맴맴 하지 않고 글을 쓰며 치유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달래가 많이 컸죠?




브런치를 하면서 어릴 때 생각이 많이 납니다. 마음으로 울고 싶었던 순간들이 상처가 되었던 때가 있었나 봅니다. 그 상처를 오래 간직하고만 살았습니다. 1편 연재를 마치고 마음이 무거웠어요. 소설 같은 삶을 주제로 글을 쓰다 보니 내용이 어두웠습니다.

2번째 연재는' 고추 먹고 맴맴 달래 먹고 맴맴'으로 어릴 때 맴맴하던 이야기를 생각나는 대로 풀어보려고 합니다.




엄마는 대학 4학년 때 소위 계급장을 단 아빠를 만나 열렬히 연애를 하다가 결혼을 했습니다. 아빠가 대학을 마치고 간부후보생 갑종 156기 헌병으로 근무를 하셨습니다.  주로 전방에서 근무를 하였기에 강원도 인제 원통 버스 터미널옆 파란 대문집에서 아빠가 27살 때 득남했습니다. 동네가 시끄러웠다 합니다.

아빠는 첫아들을 낳아 무척 기쁘셨나 봅니다. 두 돌즈음 되는 아이를 가까운 곳에 갈 때면( 근무가 아닌 사적인 외출) 늘 오빠를 데리고 다닐 만큼 첫아이를 이뻐하셨습니다. 아빠를 닮아 씩씩하게 크라고 그러셨을까요? 너무 이뻐하면 삼신할머니가 데리고 간다는 말을 아빠는 잊으셨던 것일까요? 아마 이 일은 경고를 주었던 것일까요?

그 마음도 이해가 조금은 가긴 합니다. 첫아이는 그만큼 소중하고 자랑하고 싶었던 걸로 하죠. 저도 그랬으니까요.


그러던 중 오빠가 두 돌즈음 지나 걸을 때 나는 엄마 뱃속에 있었고요 아빠는 오빠만 데리고 외출을 했다가 진부령 고개를 넘으며 S자로 굽어진 고갯길에서 운전병의 실수인지 길이 험악해서인지 차가 전복되어 낭떠러지 계곡으로 굴러 떨어지는 사고가 났습니다. 그때는 차도 많지 않았고 길도 지금처럼 잘 닦여진 때가 아니라 길이 위험했겠죠? 아빠랑 운전병 아저씨는 지프와 함께 여러 번 굴렀고 어린 오빠는 하늘의 도움인지 명이 길어서인지 지프창으로 튀겨나가 큰 소나무 위에 걸쳐져 바닥까진 구르지 않았다 합니다. 큰 소나무가지가 오빠를 살린 거죠.

솔가지에 이마와 입술 쪽이 찢어져 피로 엉망이 된 오빠는 살겠다고 구해달라고 큰 소리로 울어댔겠죠? 조금 더 늦게 발견이 되었다면 피가 너무 나서 아님 체온저하로 위험하였을 수도 있었을 것 같아요. 구사일생으로 지나가던 차에 의해 몇 시간 만에 구조가 되어서 춘천 육군병원으로 옮겨졌고 아빠랑 운전병 아저씨는 구조 후 의식불명으로 몇 시간인지 며칠인지 깨어나지 못했다 합니다.


엄마가 소식을 듣고 병원으로 뛰어갔을 땐 오빠는 얼굴과 온몸이 온통 피로 범벅이 되어 거의 죽은 줄 알았고 병원 복도에 주저앉았다고 합니다. 거의 기절직전이었죠. 아빠는 의식이 없으시고 갈비뼈고 어디고 성한 데가 하나도 없었다고 하셨습니다.

엄마의 심적 충격과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죠.

병원에 몇 달을 입원하고 엄마가 오빠를 안고 걸어서 나올 때 어른들은 천운이라 생각하셨어요.

아빠도 큰 수술 끝에 퇴원을 하셨죠. 만약 그때 아빠를 잃기라도 했으면 저는 세상에 없었을 거고요.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오빠는 이후로 대학생이 될 때까지 얼굴을 특히 눈옆과 입옆으로 수 십 바늘이 넘게 꿰맨 수술 자국에 현상 붙은 사나이로 지내야 했고 차차 성형과 피부 메이크업 제품으로 수술 자국을 복원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당시엔 피를 멈추기 위해 빠르게 꿰매서 두께가 0.3센티가 넘은 흉터를 지닌 채 학창 시절을 보냈고 대학생이 되었을 때 3차 수술로 실 같은 흉터를 가지게 되었답니다. 작은 체구에 얼굴까지 험악하니 신학기가 되어도 아무도 무서워서 가까이 다가가지 않았대요. 가족들은 늘 괜찮다고 했어도 본인은 스트레스였을 겁니다.



이 이야기는 엄마한테 들은 이야기입니다.

세월이 지나 들었을 땐 '위험했구나 무섭다' 이렇게 생각했는데

내가 아이를 낳고 키워보니 엄마의 그때의 심정은 조금은 헤아려집니다.

엄마가 75년을 살면서 얼마나 멍이 들었을지 제가 조금이라도 알아 드렸어야 했는데 살아계실 때 더 위로해 드렸으면 좋았을 것을 그때는 제가 엄마를 온전히 위로해 드리지 못했어요.

엄마의 속을 들여다보면 시커멓게 멍이 몇 군데는 있을 것입니다.

이게 첫 번째 멍입니다.



이후로도 이때 일을 잊으셨는지 아빠 엄마는 외출할 때 오빠만을 이쁘게 입혀서 데리고 다니기를 계속했답니다. 살아났다고 운이 좋았다고 알리고 싶었을까요? 아니면 잘 생긴 아들을 자랑하고 싶었을까요.  집에 남겨진 나는 고추 먹고 맴맴 달래 먹고 맴맴 하였죠.

그래도 이렇게 추억할 수 있는 어릴 때 기억이 있어서 참 다행입니다.

울고 싶을 때 그저 우는 것도 치유의 방법이라고 생각이 드는 아침입니다.

저는 글을 쓰면서 치유하고 있습니다. 조금은 아쉬운 것은 엄마가 계셨으면 어릴 때 일을 더 들려달라고 하였을 텐데 어릴 때 기억이 났다가 안 났다가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 순간만 기억을 하는 걸까요? 3살 때부터의 나의 기억은 시작이 됩니다. 동생 기저귀 빨래하던 그 순간 말이죠. 제 글방에 있는 '창곡리의 빨래터' 이야기입니다.


힘든 날 힘든 일 있으면 이 노래를 불러보세요. 어느덧 웃음이 입가에 번질 것입니다.




아버지는 나귀 타고 장에 가시고

할머니는 건너 마을 아저씨 댁에

고추 먹고 맴맴 달래 먹고 맴맴


할머니가 돌떡 받아 머리에 이고

꼬불꼬불 산골길로 오실 때까지

고추 먹고 맴맴 달래 먹고 맴맴


아버지가 옷감 떠서 나귀에 싣고

딸랑딸랑 고개 넘어오실 때까지

고추 먹고 맴맴 달래 먹고 맴맴



찬란한 봄이 오네요.



고추먹고 맴맴 달래먹고 맴맴 1편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다음주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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