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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달래 May 03. 2024

가거들랑 혼조옵서예(살이 1)

 Ep.1 얽힌 매듭이 풀어질라나


"진도까지 차로 간다고요? 몇 시간?"

"그럼 를 데리고 갈려면 그 방법밖에 없지.. 대략 6시간~7시간 정도."

거실에서 늘어지게 자고 있는 반려견 뚱디를 눈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딸아이는 눈을 크게 뜨고 그게 가능한 일인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완도도 있고 목포도 가까운데 왜 하필 진도냐고요?"

묻길래

"엄마가 진도는 못 가봤거든 그래서 그곳을 디뎌보려고.. 그리고 팽목항에 가보고 싶어.."


진도 하니 떠오르는 팽목항.

살다 보니 세월호 이후로 그곳을 다녀가보지 못했다. 그래서 마음으로 왠지 고 싶었다.

4월의 어느 날

우리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세월호 사고의 흔적이 있는 그곳으로 우리는 새벽 6시에 출발을 했다.

안개가 자욱한 새벽에 차를 끌고 진도까지 고고! 제주를 향한 몸부림이었다.

서해안을 타고 갑자기 안개지역이 나타난다. 한 시간가량 지나는데 갑자기 영화 'The Mist'가 생각이 나며 속도를 10으로 줄이고 기어서 갔다.


우리에게도 영화의 결말처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바닷길을 통과하길 바라면서 말이다. 안개는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우리의 미래 같았다.



서울 목동에서 서해안길로 진도항까지 423km.


해가 뜨니

하늘은 맑고 바다는 푸르렀다.


  



진도땅에 발을 디디니 알게 모르게 진한 아픔이 밀려오는데 사고현장은 416 팽목기억관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어 있었고 그게 다였다.

눈물이 왈칵 났다.

다시는 이 나라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마음속으로 바라며 기도를 드렸다.


오래 운전을 하였더니 무릎도 빡빡하고 출출하기도 하고 한 시간 전엔 차를 선적해야 하므로 마음이 조급해졌다. 우리가 타고 가야 할 산타모니카(진도에서 제주) 배를 탈 진도군 임회면 진도항길 90번지를 내비게이션에 의존해서 도착을 했다.


피노의 비행기 트라우마로 우리는 이 먼 길을 장장 7시간 가까이 걸려 달려야만 했다.


배를 탈 때 약간의 떨림으로 차를 선적시키고 우리는 바로 승선하였는데 딸아이가 피노를 캐리어에 담아 끌고 1시간 반 가량 걸려 제주항에 도착하였다.





드디어 제주!

첫날부터 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바람 부는 제주에는 돌도 많지만~

감수광 감수광 날 어떡 허랜 감수광  ~가거들랑 혼저옵소예 ~라는 노랫말이 절로 나왔다.

'가려거든 도로 오시옵소서'라는 뜻이라는데 어릴 땐 혼자 오라고 하지? 하고 의아했다.


비즈니스석 오션뷰석 패밀리석 이코노미석 4종류의 펫존
드디어 제주

너 출세했다. 제주에 왔어. 쫌만 기다려.



막내딸과 제주살이를 시작한 이유가 있다.

아이는 이제 30이 넘었고 외국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한번 나가면 1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하는 바쁜 딸이라 엄마의 퇴직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의견에 전적으로 동의를 하게 된 것이다.

물론 내가 떠나려면 함께 사는 반려견도 동반되어야 하는 여행이기에 우리는 일정을 반려견에게 맞춰야만 했다.


딸아이는 엄마를 위해 숙소랑 배 운항 시간 반려견 동반가능 비건식당 등을 알아보았다.

딸은 비건을 시작한 지 3년 정도 되어서 나는 비건은 아니지만 딸아이와 함께 있는 동안은 아이의 식단에 맞춰 주기로 했다.


살이를 시작한 또 하나의 이유는 작년에 집주인의 전세사기로 온통 가족이 법원으로 여기저기로 다니며 힘든 해를 보냈다. 살면서 가장 고된 1년이었다. 더구나 집주인의 사망으로 보증금을 날리느냐 마느냐에 집안 식구들이 신경을 써야만 했다. 다행히 올해 3월에 해결이 잘 되어서 보상차원으로 휴식을 하자 싶은 거였다.


큰아이도 이제 며칠 뒤에 합류를 할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독수리 3형제처럼 합체가 되겠지.

아들이라면 어떨지 모르겠는데 딸아이들과의 여행은 친구처럼 아기자기하다.

그런데 어떤 때는

"얘네들이 왜 이러지? 왜 엄마한테 투정을 이렇게 부리지? 나가서는 예의 바른 아이면서 집에서는 곰살맞게 굴지 않는 거지?"라고 생각할 때가 종종 있다.

엄마는 한다고 하는데 아이들 눈치를 볼 때가 있다. 큰아이는 마음에 우울감이 있어서 내가 눈치를 보게 되고

작은 아이는 비건이라 식단을 짤 때 어떻게 해야 할지 눈치를 보고 또 언니와 나 사이에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구를 품고 사는 걸 난 안다. 그나마 내 앞에 대놓고 화는 내지 않는다. 가끔 나는 누구인가 하는 생각이 든다.


모녀사이에는 평생 뭔가 풀어지지 않는 게 있다고 하던데 라이벌의식인가?

내가 30대 때 저희들 허락도 받지 않고 이혼하고 아버지와 떨어져 살게 하면서 아버지의 정을 못 받아서 나한테 원망을 하는 건가 하는 마음도 들었다.

생각해 보니 큰아이는 엄마에게 불만이 있다.

자라면서 온전한 가정을 이루지 못했고 다른 집과는 다르게 엄마밑에서 크게 한 거 어떻게 보면 내 잘못도 있다. 그런데 어떡하겠니 엄마도 엄마가 처음이고 맞지 않는 남자랑 어떻게 한평생을 살겠니?

제발 엄마를 좀 이해해 주렴...


그렇게 뭔가 한 바가지 뱉어 내고 나서는 미안한지 언제 그랬냐 하면서 "엄마 이거 엄마피부에 좋은 것 같아서 샀다!"

하며 수분크림을 슬면서 내놓고 가는 큰 딸.

"엄마 싼 거 사지 말고 좋은 거 사서 써요 엄마 피부는 이제 건성이자누~" 하며...


휴대폰 최고의 사양으로 사라고 했는데 중저가로 샀다고 난리바가지를 하는 작은딸,

"요즘 누가 이런 거 쓴다고?"

엄마는 사진 화질도 안 보고 사는가?"

하며 저랑 같이 가서 샀어야 하는데 라며 "우리 엄마 어쩌지" 하고 한탄을 해댄다.

"이 정도면 됐지 스마트폰이면 됐지 뭐 전문가도 아니고..."

라며 나는 얼버무린다. 백만 원도 넘는 폰을 매달 요금을 내며 사는 건 사치라고 생각했다.

뭐든지 최고로 하라고 나에게 말하지만 나는 60년 70년대를 살아온 사람으로 그렇게까지 뭐 할 필요가 있나 싶어 먼저 스피드하게 일을 저지르는 스타일이다. 아이들이 봤을 때는 이해가 가지 않을 고리타분한 엄마일 수도 있겠지..

"너희를 이렇게 절약해서 다 유학시키고 키운 거다 요놈들아~~"


나는 여행 중에 이런저런 가슴속에 담아있는 이야기들을 하며 풀어내기로 했다. 너희를 이해시키려고가 아니고 엄마가 살아 온 세월을 나누려 하는 것이다.

고리타분이 아니라 절약이 몸에 밴 걸 어쩌겠니? 엄마란 것이 그렇단다. 아이들 입에 들어가는 거 입히는 거 좋은 걸로 하고 내 몸에 걸치고 먹는 거 다 생각하고는 아이들 못 키운다.


일을 하는 동안은 시간이라는 데에 매여 있어서 글 쓰는데도 집중이 안되고 그랬는데 이제는 자유롭게 뭐든지 할 수 있어서 마음이 편안하다.

막내딸은

"엄마, 이제 아무 걱정 말고 엄마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쇼! 제바알!!

엄마가 혹시 병에 들거나 치매가 걸려도 엄마 혼자 두지 않고 내가 요양사를 집에 두어서라도 엄마를 케어할 테니 언니랑 나만 믿어요. 우리 키우느라고 애썼으니 이제 우리가 한다고!"

라고 한다.


"오호라!! 딸과 같이 여행도 할만하네 요것들이 나이만 먹고 철이 없나 했더니 혼자된 엄마를 생각하고 있었네!"


여행을 이제 시작했지만 이제 남은 시간 동안 아이들과 많은 풀지 못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살이를 해보려 한다.

좌충우돌 엘리펀트가족의 여행기 기대해 주세요~(우리는 코끼리 가족입니다. 달래 다리가 튼튼해서 지어진 이름입니다.)


 첫날 먹은 제주의 밥상

'청귤소바' 비건밥상으로 맛깔나죠?

우리 뚱디 얌전한 거 보소~~


다음글엔 딸과의 어떤 에피소드가 있을지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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