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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달래 May 07. 2024

날라리가 늴리리

EP.9 춤춘 게 정학당할 일이라니요?


때는 바야흐로 학창 시절의 꽃 중2 때다.

완행열차로 여수 남해안으로 떠났다. 친구들과 집을 떠나 현장학습을 하는 수학여행!


그때는 술도 못 먹는 나이고 그저 친구들과 한 방에서 자고 수다 떨고 사진 찍는 게 다였지. 엄마가 싸주신 김밥과 계란을 친구들과 나눠먹고 얻어먹고 뺏어먹고 갈 때는 너무 신이 났다. 남녀공학인 우리 친구들은 설렘을 안고 기차여행에 한껏 들떠있었다.


즐거움도 잠시 그날 밤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진 말이다.

"반장 너도? 나왓!!"

구석에 쭈그리고 있으면 안들키려나 하고 친구 등짝뒤에 숨죽이고 있던 달래는

호랑이 체육선생님의 눈에 띄어 벌벌 기어 나온다.


"얘들이 그러면 너는 말렸어야지 이게 뭐 하는 거지? 반장?"

"그게....... 잘못했습니다."


불과 30분 전 밤 9시.

수학여행을 온 전교생은 각 방으로 모두 삼삼오오 모두 들어가서 잠을 자라는 엄명을 받았다.

반장인 달래는 모두 방으로 들어가는 걸 보고 103호실로 입실했다. 그리고 눈을 감고 내일 있을 장기자랑 시간에 누구를 내보낼지 잠시 궁리를 하며 잠을 청하고 있었다.

잠이 들려고 하는데 문이 살며시 열리며 누군가가 고개를 내민다. 여깡이었다. 남들이 들을까 개미만 한 소리로

"야~~ 나와봐 여기!!" 하며 손짓을 한다.

나는 츄리닝복을 허리까지 추스르고 여깡을 따라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여깡은 남자 애들이 붙여준 이름인데 덩치가 산만하고 전교생 통틀어 여자 중에 젤 싸움을 잘하는 아이다. 얼마 전 씨름장에서 같은 반 남학생하고 웃통 벗고 들어치고 메치기로 3분 안에 아작을 내서 구경꾼들을 기함하게 만든 , 어떤 남자애도 덤비질 못하는 아이고 어지간한 사내애들도 벌벌 기어서 선도부장을 맡고 있기도 했다.


" 어딜 가는 거야?" 손짓으로 퀘스천을 보냈다.

삐걱거리는 계단을 한 칸 올라가 몇 걸음 걸으니 2층 1호실에서 문사이로 새어 나오는 댄스뮤직이 귀에 들렸다. 펑키타운이었다.

여깡이 노크로 톡톡톡 암호를 넣자 잠긴 문이 열렸다. 문지기는 2반 꺽쇠였다.


'이게 뭔 난리부르스야?'달래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남녀공학인 우리 학교 300명 중 반에서 한가락씩 하는 춤쟁이 까불이들이 불 꺼진 방에서 춤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플래시 싸이키를 누군가가 흔들어대며 조명담당을 하고 있었고 남자여자 네댓 명은 가운데서 몸을 흔들어대고 있었고 여남은 명 아이들은 둘레에 모여서 좋아라 박수를 치며 끼리끼리 구경을 하고 있었다.

나를 데리고 와 이방에 동조자로 만든 여깡도 어느새 가운데 무리로 합류해 펑키타운에 몸을 비비고 있었다.

그 와중에 그 중심에 있던 여깡도, 문어같이 관절을 꺾어 대던 남자아이도 영웅으로 보였다.


"야 얘네들 뭐야?"

미리 와있던 3반 귀때기 귀애에게 눈인사를 하며 엉덩이를 밀어붙이고 앉긴 앉았는데 음악이 커서 밖으로 새어 나갈까 봐 걱정도 되고 심장이 쿵쾅쿵쾅 거려 터질 듯 뛰어댔다. 별난 춤을 춰가며 남학생 여학생이 배틀을 벌이듯 몸을 꼬아대는데 선생님들이 계신 바깥채 쪽으로는 들리지 않으려나 하는 걱정도 되고  또 소풍 때나 볼 수 있는 그들만의 댄스의 진면목을 보니 웃음도 나고 Tv에서 짝꿍들의 댄스를 따라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렇게 한 10분 앉아 있었나?

여깡이 다가와 내 귀에 속삭였다.

"어때? 오기 잘했지? 너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흐흐흐"

하며 눈짓을 찡긋 하는 순간

갑자기 문이 버럭 열리며 호랑이 선생님과 우리 담임 선생님이 문 앞에 서 있는 걸 내 눈으로 보아야만 했다.


"불 켜! 동작 그만! 제자리..!"

음악이 꺼지고 불이 켜지니 적나라한 아이들의 우스꽝스럽고 난리부르스인 광경이 '얼음!'을 외쳐 스톱한 동작으로 고스란히 시야에 가득 들어왔다. 아이들은 모두 체육복차림이었지만 남자아이 몇몇은 덥다고 웃통을 벗고 러닝셔츠바람인 애도 보였다. 방안엔 뜨거운 열기가 터져나갈 것 같고 땀냄새에 꼬랑꼬랑한 발냄새까지 숨쉬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 시끄럽게 하지 말고 다들 조용히 방으로 돌아가라. 반장, 선도부장은 따라오도록!"

"반장! 14명이나 되네! 명단 써서 따라왓!"두 선생님의 짧은 말 한마디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여 금세 쥐 죽은 듯이 여관은 조용해졌다.


다들 총총히  방으로 하나둘 들어가고  나는 잠깐 현란한 대를 구경한 죄로 선생님들 계시는 곳으로 끌려 걸어가고 있었다.

'이게 모야 난 잠깐 와서 본 것뿐인데.. 다 뒤집어쓰게 생겼네!'

벌렁거리는 심장을 움켜쥐고 여깡에게 억울함을 그에게 눈짓으로 퍼부었다.

"야 어떻게 된 거야? 뭐라고 선생님한테 말해야 해?"

여깡도 선도부장으로 아이들을 선도해야 할 판국에 이 일에 앞장을 섰으니 할 말이 없었다.

그 짧은 시간에 나는 머리를 굴렸다.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내 말대로 하자~

우리는 술을 먹은 것도 아니고 그저 춤을 춘 것뿐이잖아 그러니 춤을 춘 너는 입 다물고 있어."

선생님 세 분이 계시는 방으로 들어가서 무릎을 꿇고 앉았다.

"반장 얘기해 봐. 어떻게 된 거야~?"

"선생님 죄송합니다 밤에 이렇게 소란을 피웠습니다."

"생각해 봐라 뭘 잘못했는지.. 낼까지 반성문 한 장씩 제출하고 더 이상 이 말이 안 퍼지게 입단속들 해라."

"선생님, 알겠습니다. 5분만 제말 좀 들어주세요.

내일 장기자랑을 반별로 하기도 하지만 수학여행이기도 하고 추억을 남기려고 2학년 전체선별한 친구들이 단합으로 군무를 하기로 했습니다. 잠시 연습을 좀 하려고 모였는데 어떤 춤을 춰야 하나 각자 춤을 선보이려다가 늦은 시간 허락도 받지 않고 선생님께 걱정을 끼쳤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밤중에 한방에 남녀가 유별한데  모여서 불을 끄고 모여있는 작태가 선생님들 눈에는 위험천만이었겠지만 우리가 사정을 잘 말씀드리고 나니 화가 난 선생님은 어이가 없는 듯 표정을 지으셨고 조금은 가라앉은 듯 아까처럼 세상 놀란 얼굴은 아니었다.


"일단은 너희들 얘기를 믿겠고 다시는 학교밖에서 이런 행동은 하면 절대 안 된다."

옆에 계시던 체육선생님은

 "학교에 가서 교장선생님께 말씀은 드리고 어떻게 처분을 내릴지 정학을 시킬지는 돌아가서 결정하겠다."


'정학이라니 이게 무슨 날벼락?'


"선생님! 잘못했으니 용서해 주세요!"

여깡과 나는 손이 발이 되도록 빌고 들어가라는 마지막 말을 듣고 각자 방으로 돌아왔다.


간밤에 얼마나 걱정을 하고 잤던지 거의 뜬 눈으로 자는 듯 마는 듯하다가 아침에 우물가로 나와 세수를 하는데 코피가 흘렀다. 내생에 첫 코피였다.

대표 몇몇에게 이 사실을 통보했고 더 이상 경거망동하면 안 된다라고 엄포를 놓았다. 반성문 한 장씩을 받아서 그날 저녁을 기다렸다.


1반 대표가 이런 제안을 했다.

"선생님들 입을 막자~ 잘못을 인정하는 의미로 ~그러려면 우리가 맛있는 거 사서 선생님들께 대접하면 어때?"

듣고 있던 대표들이 모두 수긍을 하고 십시일반으로 얼마씩 걷어 근처 식당에 가서 회 두 접시를 살 수 있었다.

내일이면 집으로 돌아가는 날 저녁이다. 선생님들의 저녁식사 시간에 맞춰 냉장고에 넣어 둔 회접시를 들고 여깡이랑 둘이 나섰다.

"선생님 어제 죄송했어요. 내일이면 돌아가는데 선생님들 수고 많으셨으니 드시라고요."

반성문을 한쪽에 놓으며 혹시라도 도로 가져가라고 하실까 봐  종종걸음으로 얼른 도망쳐 나왔다.


그리고 어떻게 되었을까?

달래의 중2 수학여행은 그 추억 아니었으면 말할 게 없을 정도로 결말도 해피엔딩으로 끝났음을!

그 이후로 다행히 그 일에 대한 벌은 없었다. 얼토당토한 발상이었지만 다행인 일이다.

선생님들도 어디에도 발산할 데 없는 아이들의 아우성이었다고 더 이상 시끄럽게 하지 않으시려는 의중이었음을 무언으로 보여주셨다.


정학을 당할 위기에 놓은 13명의 아이들은 지금 그날일을 기억이나 할까?  어디에서 머리가 희끗해져서 세상에 잘 적응하고 살고 있을까


혼자 배시시 웃어본다. 지금도 몸치인 달래는 여중생이었던 그날이 그리워진다.

선생님들도 어디엔가 계시려나 계시다면 만나 회를 대접하고 싶다.





달래의 고추 먹고 맴맴은 다음회가 마지막입니다.

다시 연재를 시작한 제주에서의 혼자옵서예를 응원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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