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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달래 May 28. 2024

18세로 돌아 간 작은 엄니  (시골살이 2탄)

EP.2 알츠하이머라고?

"는 소세지하고 갈치 없으면 밥 잘 안 먹어요."


오빠가 입에  계란말이를 욱여넣으면서 말했다.


국민학교 2학년 때 작은댁이 전라도 나주였다. 작은 아버지는 나주에 호남비료라는 회사에 다니셨다.

방학 때 엄마는 오빠와 작은집에  보내셨고  딸만 넷인 나보다 어린 사촌여동생들이 있어서 자매가 없던 나는 그 집에 가는 걸 특히  좋아했다.

아니 작은 엄마가 해주시는 특별 간식이 더 끌렸던 게 아닐까..

방학이 오기를 기다렸다. 떡볶이 잡채 도나츠 탕수육 짜장 카레 못하는 게 없으셨다. 5성급 요리사라 해도 믿을 만큼 솜씨가 좋았다.


  작은 엄니는 23살에 결혼하시고 딸딸딸딸 내리 포볼을 치셨다 다행히 막내 작은 아버지라 아들을 더 낳지 않으셨지만 아들도 내심 낳고 싶으니 포볼까지 온 것이리라 생각된다.


일주일 정도의 방학을 작은댁에서 보내고

집에 가기 전에는 털실로 곱게 짠 호주머니 달린 망토와 꼬리가 긴 모자도 선물로 주셨는데 서울에 가서도 그 디자인과 색감은 완전 인기였다. 한국땅에서 하나밖에 없는 잇템이었다. 학교에 가면 이쁘다고 친구들이  한 번씩 탐애며 둘러보고 싸보고 했다. 그리고 나면 친구들도 비슷한 종류의 모자를 쓰고 오기도 했고 난 작은 엄니 덕분에 유행의 선두를 달렸다.


지금 생각하니 완전 민폐다. 더구나 오빠까지 갔으니 어머니가 더 힘드셨을 텐데 한 번도 싫은 내색을 안 하시고 반기고 잘해주셨다. 딸 넷을 키우느라 넉넉지 않으셨음에도 우리가 가면 밥과 간식을 더 맛나게 해 주셔서 더 작은집이 좋았다.


그날도 갈치와 소시지가 없다고 버르장머리 없이 집에서 하던 것처럼 밥상머리 투정을 하니 작은 엄니는

"달래가 좋아하는 거 장 봐다가 이따 해줄게."

하시며 토닥거려 주셨다. 참 따뜻한 분이시다.




렇게 맘 착한 작은 엄니가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으셨다. 올해 90세이시다. 했던 말 또 하고 방금 전 있던 얘길 또 하신다.

"오늘이 며칠이지"를? 하루에 열 번 스무 번 물으신다.

내가 누구인지를 이름을 말했다가도 10분 지나면  "이름이 뭐였지?" 하신다.



인공관절에 허리 협착수술을 받으시고 휠체어로 움직이시는 작은 엄마. 가끔은 젊었을 때 이야기도 생각이 나는지


 "어릴 때 네가 큰언니 노릇을 해서  맘이 놓였지. 어디 나가도 네가 애들을 봐주고 어려도 설거지도 하고 급할 땐 시장도 갔다 와주고 연탄도 안 꺼뜨리고 갈아주곤 했지."

이 말씀을 나만 보면 하신다.

야무졌다고 말씀하신다.

나는 기억이 잘 안 나는데 엄니는 그 몇몇의 만 지금 기억이 나시나 보다.

기억하고 싶은 것들만 수차례 말씀하신다.


이제 90되 작은 엄니가  일구워 놓은 채소밭을 나에게 맡기셨다. 내가 풀도 매고 상추도 뽑아야 한다.

사촌여동생들이 매일 전화가 온다. 외국에 나가있고 아이들과 서울에 있어서 자주 못 오는데 언니가 와계셔서 너무 든든하다고 한다.

"너네 엄마는 나에게도 엄마 같은  분이시다. 너희들 올 때까지 딸이 되어줄게 걱정 마라."

라고 사촌들에게 이야기했다.


작은 엄니가 약도 챙겨드셔 야하고 자꾸  한말 또 하고 또 해도 우리 엄마라 생각하고 대하고 있다. 50여 년 전에 내가 놀러 가면 마다하지 않고 소시지부침에  갈치를 노릇노릇하게 구워주시던 작은 엄니의 따뜻한 눈빛을 잊지 못한다.




지금보다 작은 엄니가 더 안 좋아지시면 요양병원으로 모셔야겠지만 지금은 시집와서 살던  이 집이 편하시다고 하신다.

"내 집이 젤 편하지 딜 가?" 하시며 병원은 마다하신다.



"작은어머니. 그때 고마움을 잊지 못해요 이제라도 조금이나마 제가 곁에서 함께 해드릴게요."


작은 엄니는 엄마 같은 분이시다.


100살까지 이렇게 이쁜 치매로 사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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