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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달래 Jun 04. 2024

 오광 났어요 엄니!!! (시골살이 3탄)

 작은 엄니가 알츠하이머를 앓고 계시다




시골의 아침은 새소리로 시작된다..   이른 시간이라 좀 더 자고 싶은데 해가 창가로 들어비추이니 더 이상 깊은 잠은 못 든다.


서울에서는 억지로 무거운 눈꺼풀을 열어야 했는데 여기에 와서는 저절로 가볍게 눈이 떠진다.

털고 일어나 작은 엄니 기침하셨나 싶으면  단백질을 두유에 타드리고 나도 한 봉 털어 넣는다.

시골의 하루는 서둘러 시작하고 사부작거리며  하루가 간다.


정오쯤 되면 이웃에 사는 85세 오마담님이 등장하신다. 알록달록 핑크 무늬에  샛노랗게 파마를 하고 생글생글 웃으며 마당을 아장아장 가로질러 걸으셔서 오마담이라고 부른다.

영감님이 철도국에 다니시다가 먼저 가셔서 연금을 80이나 받는다고 입만 열면 자랑을 하신다. 처음엔 몰랐는데 이분도 했던 말 계속하시는 거보니 치매초기인 것 같다. 나중에 알고 보니 맞다 한다. 본인만 모르신다. 어르신들이 8090세가 되니 내가 가끔 건망증이 있는 것처럼 깜빡하고, 한 얘기 또 하고 또 하는 리피트현상이 생기는 것 같다.


나의 미래를 보는 듯하다.


"다 죽었어~~"

"개똥이네도 낭산댁도 금택이 엄마도..~"

이웃에 8,90세 되신 분들이 거의 죽어서 말동무할 친구들이 없어졌다고 하신다.

"개똥이네도 죽었어?"

깜빡거리시는지 누가 먼저 갔는지도 기억이 안나시는 것 같다. 두 분의 대화는 어제 한 대화인데도 처음 하는 것처럼 이어간다.

스무 살 나이에 이 동네로 시집와서 60년 70년을 사신 분들이니 옆집 숟가락 개수가 몇 갠지 다 아시는 처지다.



"이제 양로당에 가도 같이 고스톱도 안쳐줘. 그래서 안가"

"왜요?"

"젊은것들이 안 줘"

젊다는 건 70세 전후의 어르신을 말한다 하신다.

양로당에 가는 나이가 70대 정도 인가보다 90세 가까운 분들은 동작이 느리니 안쳐주나 보다.



소파밑에 돌돌 말려있는 국방색 담요를  끄집어내서 펼쳤고 오마담은 두고 간 볼록한 잔돈지갑을 만지며 흐뭇해하신다. 잘해야 1000원이야 들었을까 모두 10원짜리다. 간혹 서너 개 100원짜리가  섞여있다.

"요새도 이런 담요가 있네요!?"

"고스톱엔 이게 최고지! 딱딱 패기도 좋고!" 

탁탁 화투패를 치는 제스처를 하며  오마담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85세 90세 치매어르신 두 분이 8장 깔고 10장 갖고 화투를 치신다.  

'민화투를 칠 줄 알았는데 고스톱이라니

.. 점수는 어떻게 셀까?'

너무 궁금해서 바짝 다가가 앉았다.

'어랏 점수를 잘 세시네.'

걷다가 떨어져 있어도 안 주울 10원짜리가  왔다 갔다 누가 따도 몇 백 원일 듯.

어르신들은 시간을 타고 젊은 날들의 이야기를 나누며 화투짝을 두드리고 있다.


 다방 커피도 달달하게 타다 드리고 찐 고구마도 내놓았다. 래 둘이 칠 때는 7점부터 나는 건데 분은 3점 나면 무조건 stop이다.  

한 번은 "엄니~~7점 나야 해요"해도 

"그냥 쳐~~~10원 짜린데 뭐 암케나 쳐.~"

먹을 패가 없으면 오마담은

"암거나 숫거나 암거나 내야!!"(아무거나 얼른 내랏!)

입으로 중얼중얼거리며 화투판에 웃음을 준다.

역시 마담!!


"작은 엄니 오광 났네요!"

"아싸! 광박이여~~"

작은 엄니 계산도 잘하나 보고 있자니

" 방금 광박이여"라고 하시며 15점이라고 세더니

화투를 섞으며

"150원!!" 하신다.

광박이니 300원 받아야 하는데 엄니는  거기까지 기억을 못 하신다.




내가 거기다 대고

 "300원 받아야죠!" 하면 광박 쓴 오마담이 쪼께 안쓰럽고 해서 짐짓 모른 척한다. 오마담은 아는지 모르는지 10원짜리를 15개를 세서 건네주며

"광박까지 맞았네, 돈 다 따가네!"라고 하신다.



 두 분이 고스톱의 점수를 세는 것도 돈도 잘 세서 건네는 것도 신기하기만 하다. 1프로 부족하긴 하지만....


두 분은 돈을 따는 게 목적이 아니라 무료한 하루를 함께 할 말동무가 필요하신 것이다.

주위에 친구들이 하나둘씩 저세상으로 가는 걸 보며

어떤 마음이실지...

 

오늘도 오전에 엄니가 다듬어놓은 부추로 부추전을 노릇노룻하게해서 두 분께 해드렸다. 옆에서 내가 해드릴 일은 먹을 거 챙겨 드리는 일 말동무 해드리는 일이 전부다.





"낼 또올겨~젊은것이 있으니 재미나구먼!"

하며 활짝 웃으시는 오마담.

나보고 젊은것이라고 하니 그 말이 낯설었지만 어르신이 보기엔 그렇겠다 싶어 활짝 웃어드렸다.


 "낼은 더 일찍 오세요~"

하니

"눈뜨면 올게~"

하시며 오마담 좋아하신다.


"낼은 아침 먹고 와야지" 하며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며 텃밭을 가로질러 가신다.


'낼은 오늘 일을 기억이나 하실는지...'



르신들 웃을 일이 없는데 같이 있는 동안 많이 웃고 즐거워하시니  나도 덩달아 신이 나는 하루다.


오늘도 하루가  두 어르신 덕분에 즐거웠다.


많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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