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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달래 Sep 21. 2024

만두소에 핀 꽃

만두가 터지든 말든!

엄마가 돌아가시고 집에서 거창한 명절 음식은 만들지 않았다.

엄마 생각이 나서 될 수 있으면 하지 않으려 했다.

이번 명절에도 마찬가지다.

부모님이 계실 때는 아침 상을 차려서 함께 오붓하게 식사를 했는데 그런 식사를 한지가 10여 년이 다되어간다.

아빠가 좋아하시는 메뉴는 병어, 산적, 특히 명태전과 육전인데 시장에 가서 넓적한 병어새끼만 봐도 아빠 생각에 힘들었다.


이번 명절에는 크게 올 손님도 없고 해서 큰 딸의 남자친구랑 셋이 먹을 음식만 준비하면 되었다.


"무엇을 만들어서 먹어볼까나?"

"난 엄마표 잡채면 끝!"

큰아이가 우쭈쭈 내 솜씨를 추켜준다.

그렇게 잘하는 도 아닌데 뚝딱뚝딱 금방 해내는데도 간이 딱 맞는다고 그리고 조미료 없는 엄마 음식을  특히 좋아했다.  막내가 비건이라 고기대신 우엉. 가지, 버섯, 가끔은 콩나물도 함께 곁들이면 한두 끼는 거뜬히 맛나게 드셔준다.


" 그럼 저는 만두랑 갈비찜을 한번 해볼까요?"

혁이가 나를 위해서 요리를 한단다.

엄마 계실 때 가끔 빚던 김치만두 고기만두를 추석 때 맛보게 생겼다.

"손이 많이 갈 텐데 그냥 사 먹자~"

걱정이 돼서 그냥 사 먹자 했다.

"어머니 제가 또 해 본 경험이 있어서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래서 난 잡채만 하면 끝.

5일이나 쉬는데 나머지는 그동안 여름 나느라 고생했으니 저녁은 외식하기로 하고 집에서 요리 몇 개만 만들어보자 했다.


만두를 빚어 본다. 준비는 혁이가 다 했다.

오랜만에 만두피를 만져본다.

더 얇았으면 좋겠지만 그러면 터지겠지?

고기로 만든 속과  김치 속을 한 수저 푹 떠서 얼기설기 만두를 봉한다.

삐쭉빼죽 모양이 그리 수제만두 같진 않지만 여하튼 옆구리만 터지지 않음 된다 아아~~!!



딸아이가 오랜만에 같이 식탁에 앉아서 옆에서 하는 걸 따라 한다.

" 오호! 이쁘게 만드네 우리 딸! 이쁜 딸 낳겠다!"

"이렇게 만들면 이쁜 건가? 할머니 돌아가시고 잘 안 했더니 감 다 떨어졌네!"

"어머니가 이쁘게 빚으셔서 이쁜 딸을 낳으셨군요!"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한쪽에서는 찌고 한쪽에서는 만들다 보니 시간도 걸리지 않고 한 접시 가득 채워졌다.

딸아이는 넓적하게도 동그랗게도 만들고 또 호떡같이 왕만두도 만들었다.



만두를 쪄서 내보니 속이 터져 삐쭉 나온 것도 있고 가지각색이다.

만두 빚는 일에 열심인 딸아이의 입에 좋아하는 고기만두를 넣어 먹여주었다.

"우리 딸 많이 컸네! 추운 겨울 성탄절, 눈이 펑펑 내리는 날 널 낳았는데....

금세 세월이 이렇게 30여 년이 훌쩍 흘렀네..!"





큰아이 사춘기 때를 혼자 키우다 보니  헤어진 남편과의 소통이 안될 때 딸아이를 내세워 대화를 시도하기도 했고 그러다 보니 어린 마음에 그 과정이 스트레스가 되어 쌓였고 정서적인 안정감이 떨어진 큰 아이.... 성장하면서 우울감이 찾아와 불면증도 있고 힘들어하는 걸 알게 되며 씻을 수 없는 잘못을 딸에게 했구나를 깨달았다.


'딸~ 엄마가 너에게 큰 짐을 주고 빚을 졌어. 정말 미안해. 엄마도 네가 이렇게 심하게 상처가 될 줄은 몰랐어...'



마음속으로 미안했고 사랑으로 감싸주고 도닥거려 주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살고 있다.

완벽주의인 딸에게

"그 정도만 하면 돼! 더 잘하지 않아도 돼~"라고 하는데도 아이는 엄마의 칭찬을 받고 싶어서인지 더 더 더 하다 보니 그게 또한 스트레스가 되었던 것 같다.



그래도 밝은 모습으로 만두 빚는 상에 앉아서 여러 모양으로 뽐을 내는 보니 마음이 편해졌다.



올해 디자인 공모에서 금상도 받고 프로젝트에서 맡은 바 일을 해내고 꾸준히 자기 할 일을 하는 걸 보니 대견하고 이제 조금씩  웃는 모습을 보여주니 딸아이에게 고맙고 자랑스러운 마음이 든다.


오늘은 벌어진 만두소에서 꽃이 피는 것 같다.


부모는 자식입으로 뭐 들어갈 때 그리고 웃음소리에 가장 행복하다고 했던가?

나도 부모님 계실 때 저렇게 웃음을 더 드렸던 딸이었을까? 더 웃게 해 드렸으면 좋았을 텐데 관심 가지고 하는 게 별게 아니었는데 그땐 왜 몰랐을까?


이번 명절엔  막내가 오지 않아서 가슴 한켠 보고 싶지만은 못난이 만두라도 만들면서 웃음꽃을 보게 해주는 가족들 덕분에 내겐 소중한 시간으로 기억된다.


엄마를 위해 세세하게 이것저것 챙겨주는 딸아이가 있어 이제는 보호자같이 든든해진다. 옆에 듬직한 남자친구도 버티고 있고 그녀를 위해주는 모습을 보니 함박 미소가 지어졌다.


저녁엔 가까운 공원으로 밤마실도 나가서  휴일 편안함 속에 보냈다.


전세사기로 3년 동안 애먹었고 올초에 기적같이 보증금 받은 일로부터 한여름 시골에서 보냈던 뜨거운 경험도, 장마 때 빗속을 뚫고 서울로 아이들 보러 올라온 일도 모두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어떤 일에도 포기하지 않고 선한 마음으로 견뎌내면 이렇게 웃을 날도 오는구나 하는 기쁨이 솟아났다.



내 앞에서 배드민턴 라켓을 휘두르는 딸아이와 남자친구의 모습이 사랑스럽다.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모든 걸 감사하며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다.

즐거운 추석 보내셨죠?


부족한 글 읽어주신 독자님들~환절기에 건강 유의하세요. 가을을 재촉하는 비에 아침 공기가 확 달라졌어요.

주말 편안하게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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