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속 상처

엄마들이 불안한 이유 2.

by 김혜주 비올라

나의 친정엄마는 노는 것을 좋아했다. 아침에 밥통 가득 밥 해놓고, 국 가득 끓여 놓고 하루 종일 동네 아줌마들 집을 돌면서 놀다가, 저녁에 아빠 올 시간에 맞춰서 들어왔다.


30년 전인, 학창 시절은 도시락을 싸가야 하는 시대였다. 우리 집에서 동네 아줌마들이 와서 놀거나 한 다음 날은 도시락이 없었다. 계속 친구들의 도시락을 나눠먹어야 하는 게 눈치가 보인 나는, 아침에 밥을 해서 도시락 통에 밥만 퍼 갔다. 그리고 그날 엄마에게 야단을 맞았다.


엄마의 말. "아이고 가스나야. 네가 누나인데, 당연히 남동생을 챙겨야지. 이기적인 년이 어떻게 딱 니거만 챙겨가니? 도시락 싸는 김에 같이 한 개 더 싸면 될 것을..."


중학생일 때는, 가끔 친구의 엄마가 부러웠다. 늘 계란 반찬에, 숙제도 도와주고, 학원에 데려다주고, 과외도 알아봐 주고 그렇게 공부에 관심을 보여주는 모습이 가끔 아주 가끔 정말 부러웠다.


나는 '공부해라', '숙제했니?' 이런 말을 엄마에게 한 번도 들어본 적 없었다. 오히려 "공부하지 마라. 여자는 시집가면 그만이다. 대학 나오나 여상 나오나 결국 결혼하면 다 똑같이 산다. 그러니 굳이 공부한다고 돈 쓰게 하지 마라. 너 대학 보내줄 돈 없다"라고 선을 그었다.


물론 내가 고등학교 때는, 아빠 사업이 부도나서 정말 집에 돈이 없기도 했었다. 여자인 나에게는 공부를 하지 말라고 했지만, 남자인 남동생은 공부를 잘하기를 원했다. 엄마는 나에게 남동생 숙제와 공부를 봐주라고 했다. 남동생에게 무슨 일이 있으면 누나가 남동생을 챙기기를 요구했다. 나는 왜 엄마가 자신의 아들을 직접 키우지 않고, 나에게 양육의 책임을 떠넘기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딱히 불만은 없었다. 부모들은 대체로 그런 줄 알았다. 텔레비전에서 보던 ‘없는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자식을 위해서 헌신하는 부모’는 무척 희귀하고 그러니 텔레비전에 나오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부모님에게 서운하지 않았다. 나에게 지원해준 게 없는 만큼 나의 인생에 간섭하지도 않았다. 덕분에 내가 하고 싶은 데로 자유롭게 살았다.


그런데 내가 엄마가 되고 나니, 친정 엄마에게 서운해지기 시작했다. 친정엄마는 '태어났으니 알아서 크겠지. 아프지 않으면 됐지'라는 생각으로 아플 때만 조금 관심을 보이고, 그 외에는 그저 내버려 두었다. 지금 와 생각해 보니, 아플 때도 곁에 없어서 병원에 혼자 가고 입원해 있을 때도 친구들이 병실을 지켜주고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렇게 내가 엄마가 되고 나서 친정엄마를 다시 보니, 나의 친정엄마는 즐겁게 노는 것에 집중하면서 자식보다는 자신의 인생을 더 신경 썼다는 것을 나는 아이를 키우면서 깨달았다.


아마 시댁 부모님도 비슷한 스타일이었다면 별다른 고민 없이 또 살아갔을 텐데, 시댁 부모님은 자식을 지극히 챙기시는 스타일이었다. 그렇게 결혼을 하고 나서 친정 부모님과는 다른 스타일의 시댁 부모님을 만나는 시간이 길어지자, 나는 점점 양가 부모님을 비교하기 시작했다.


내 생일에 친정 부모님으로부터 생일선물은커녕 축하한다는 전화 한번 받아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당신들 생일은 1주일 전부터 계속 기념일이다. ‘부모 생일을 자식이 챙기는 건 당연하다. 생일인데 언제 올 거냐, 미리 와서 준비해라. 선물은 용돈이 최고다.’ 당당하게 요구하셨다. 나는 그게 그냥 당연한 건 줄 알면서 살아왔다.


결혼을 하고 나니, 시댁에서는 며느리라고 내 생일에 미역국도 끓여주시고 용돈도 주셨다. 정작 시아버님 생신에 용돈 드리니, 너무나 당황하시면서 자식이 부모에게 용돈을 왜 주냐고, 너희 사는데 돈을 모으라고 하시는 모습에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아이가 태어나니, 양가의 차이는 더욱 확연히 드러났다. 시댁에서는 계속 경제적인 지원도 해 주시고, 가끔이라도 계속 아이를 봐주시려고 노력하셨다. 항상 무언가 하나라도 더 주시려고 애쓰시는 모습이 강했다. 그러나 친정은 전혀 관심이 없었다. 아이 좀 봐달라고 하면 겨우 애 하나 키우면서 머가 힘들다고 그러냐고 오히려 짜증만 내셨다. 당신의 딸이 낳은 그 손주를 봐주기엔 허리가 아픈데, 늘 등산을 가거나 어딘가 여행을 가 있거나 그랬다.


아이를 낳고 양육을 하면서 내가 엄마가 되고 나면, 나를 낳아준 엄마가 더 애틋하고 뭉클하고 그럴 줄 알았는데, 나는 오히려 더 배신감이 들었다. 내가 정말 어린 시절에 사랑을 하나도 못 받고 자랐구나 싶은 생각에 자존감이 바닥을 쳤다.


내가 이상한 건가? 나만 이런 생각이 드는 건가? 내가 너무 이기적인 건가? 내가 친정에 기대가 너무 큰 것일까?


엄마가 되면, 친정엄마와의 비교에서 자존감이 낮아지고 거기서 엄마의 불안이 시작된다. 친정엄마의 사랑을 듬뿍 받은 사람들은 나는 엄마만큼 못한다는 열등감에 자존감이 낮아지고, 나처럼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나의 존재가치에 의문이 생기면서 자존감이 낮아진다. 이러나저러나 엄마가 되면 자존감이 낮아진다, 그리고 그렇게 엄마의 불안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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