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이 불안한 이유 1.
어린 시절, 아빠의 사업이 롤러코스트를 타면서 짧은 부유한 시기와 아주 긴 가난함이 계속 반복되었다. 가난한 기간에는, 지금처럼 급식이 없었던 시기라, 도시락을 나눠주는 친구가 없는 날은 운동장의 수돗물로 배를 채우곤 했다.
거주할 집이 없어 친척집들을 옮겨 다녀야 했고, 먹을 것이 없었던 학창 시절은 나에게 지옥 같았다. 나는 그런 상황을 견뎌냈다. ‘내가 노력하면 된다.’고 나를 세뇌시켰다. 부모님의 도움 없이 대학교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을 했다. 그렇게 스스로 자립 능력을 갖춘 나 자신에게 만족했다.
엄마가 되기 전까지 나는 ‘노력해서 안 되는 것은 없다’고 믿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양육해 가는 것. 그것도 노력하면 될 줄 알았다. 나는 나의 부모님처럼 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내 책임을 온전히 다 할 것이다. 그렇게 다짐했다. 엄마가 되기 전에는 내가 자존감이 무척 높은 사람인 줄 알았다.
그러나 아이와 단둘이 24시간을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매일 반복되자, 어린 시절의 아픔과 친정 엄마에 대한 원망이 끊임없이 솟아올랐다. 가끔은 내가 받지 못한 사랑을 온전히 받고 있는 나의 아들에 대한 질투와 비슷한 여러 가지 감정들의 홍수에서 깊은 우울 속으로 빠지기도 했다.
나는 우울에서 헤어 나오기 위해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나는 육아가, 엄마라는 그 사실 하나가 이렇게나 힘든데, 육아서를 보면 모두가 성공의 이야기뿐이었다. 엄마가 이렇게 해서 하버드를 보냈고, 어릴 때부터 '책육아'를 해서 영재학교에 입학했고, 빠른 '영어 노출'로 외고를 보냈다는 대단한 엄마들의 경험담이었다. 육아서 속의 엄마들은 심지어 태교부터 남달랐다. (나도 이런 친정엄마를 만났다면 하는 생각도 많이 했었다^^;)
그 시절 육아서들은 나를 더욱 불안하게 만들었다. 나는 태교는커녕 임신 중에도 늦게까지 자주 야근하고, 주말출근에 배달음식, 심지어 가끔 맥주도 한잔 마시고 커피는 매일 마셨다.
전문가들이 쓴 육아서는 3세 이전에 뇌가 형성된다고 강조하면서, 그때 해야 하는 건 또 왜 그렇게 많고 비싼지. 나는 그렇게 육아서를 보면서 주눅이 들었다. 그리고 점점 미리 공부하지 않고, 아무런 준비 없이 엄마가 된 나 자신을 비난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견뎌내었다. 이를 악물로 버텼다. ‘내가 더 노력하면 결국은 잘 될 거야!’ 매일 나를 채찍질했다. 더 많은 육아서를 찾아서 읽고 공부했다. 이미 과거에 못 했다고 앞으로의 미래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더 많이 노력해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이가 어느 기관에도 적응하지 못하며 5세를 넘어가고, 결국 심리치료 센터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나는 무너졌다. 혹시 내가 무언가 잘못해서 아이의 발달에 문제가 있는 걸까? 아이가 이토록이나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 하는 게 혹시 엄마인 내가 부족한 탓일까?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무언가 내가 잘못한 게 있는 걸까?
나의 자존감은 이때 바닥을 보였다. 엄마가 되면, 아이의 부족한 부분이 엄마 탓이라는 생각으로 자존감이 낮아지고, 거기서부터 엄마의 불안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 불안에는 엄마의 노력으로 아이가 성공한 내용의 육아서도 크게 한 몫을 한다. 그 많은 육아서들은 왜 이렇게 죄다 기승전 엄마 탓인지.
육아서 뿐인가, 많은 방송에서도 부모의 잘못된 방식으로 상처받는 아이들이 나온다. “잘못된 아이는 없다. 잘못된 양육만 있을 뿐” 이란 메시지를 가지고, 그 양육의 대부분이 엄마의 탓으로 그려진다. 그런 방송을 보면서 혹시 나도 잘못 된 방법으로 양육하고 있을까봐 걱정되고 불안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