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이 되었다. 학교에서 영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영어 교과서에 가족의 직업을 쓰는 내용이 있었는데, 아들은 엄마 소개에 “nothing”이라고 썼다. 충격. 아들이 잘 몰라서 그런가 보다 하고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다. 엄마의 직업은 “주부야, 영어로 homemaker라고 해.”
아들의 대답은 나를 더 큰 충격에 빠지게 했다. “엄마가 집에서 무엇을 만드는데? 음식은 배달 오고, 다른 집안일 하는 거 못 봤는데? 엄마가 늘 그랬잖아. 집안일은 가족이 나눠서 함께 하는 거라고. 엄마가 하는 일은 없어. 엄마는 낫씽(nothing)이 맞아.” 무언가 억울한데, 딱히 반박할 수가 없었다. 돌아보니 딱히 집안일을 별로 안 하는 게 사실이긴 했다.
내가 주부가 아니라면, 그럼 도대체 나의 직업은 무엇이지? 나는 하는 일이 없는데 왜 이렇게 힘겨울까? 내 직업이 ‘주부’가 아니라면, 그럼 ‘엄마’를 직업이라고 생각을 해 볼까? 내 직업이 엄마라면, 아이가 잘 크고 있는데 도대체 나는 왜 불안할까? 나는 왜 이렇게 엄마인 내가 힘들까? 왜 지금의 삶에 만족할 수가 없을까? 남편이 ‘애 수학은 도대체 언제 시키려는 거지?’라고 크게 속삭이는 한 마디에 왜 이렇게나 상처받을까? 자꾸 별일 없이 우울하고 불안해질까? 그냥 갱년기라서 그런 걸까?
무엇을 해야 하나,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내 나이 지천명이라는 50이 다가오는데, 다시 직장에 다녀야 할까? 전단지에 붙어 있던 계단청소 일을 해볼까? 그러다가 문득 세상 억울하였다. 나도 직장을 계속 다닐 수 있었는데, 나름 능력을 인정받던 시절이 있었는데, 육아가 중요하다고 그렇게 직장인에서 전업주부라는 무급 노동직으로 강제 전환된 것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라는 그 타이틀에 10년간 나의 최선을 다했는데, 이제와 갑자기 너의 정체성을 밝히라니.
그뿐인가? 아이는 언어가 느려서 초등학교 1학년 내내, 받아쓰기가 0점이었다. 그리고 그런 아이는 반에서 나의 아들 한 명이었다. 그렇게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이 되자, 이제 영어가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나의 아이는 영어를 전혀 못 하는데, 주변에는 이미 해리포터를 편하게 읽고 수학 선행을 시작하는 아이들이 가득하였다. 아이의 초등학교 3학년, 완전하게 부모에서 학부모가 되었다. 그리고 엄마인 나는 다시 불안에 빠지고 여기저기 상처받기 시작했다.
엄마인 내가 무지해서, 아이가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학습을 따라가지 못하게 될까 봐 무서웠다. 두려움과 불안이 가득해진 나는 매일 도서관에 갔다. 낯선 장소를 극도로 싫어하는 아들을 학원에 보낼 수가 없으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책 읽기 말고는 없었다.
유아기 시절, 나의 아이는 어떤 기관에도 적응 하지 못 했다. 결국 7세까지 가정보육을 했다. 그 당시의 불안과 힘겨움을 나는 책으로 견뎌 냈다. 도서관에 있는 육아 관련 책을 모두 봤다. 약 1,000권을 읽고 나자, 불안이 조금 진정되었다. “왜 유치원에 안 다니느냐?”라는 주변 시선에 더 이상 상처받지 않게 되었다.
이제 도서관에서 육아서 대신 학습서를 계속 빌려보고 있다. 아이가 3학년이 되던 시기부터 지금 5학년까지, 2년 동안 공부법에 대한 100권의 도서를 읽었다. 그래서 학습에 성공했느냐고? 아니다. 성공하지 못했다. 아이는 여전히 맞춤법을 많이 틀리고, 학교의 영어와 사회 시험에서 항상 유일하게 재시험 대상자이다. 담임선생님은 상담전화를 통해, 집에서 어머니가 공부를 좀더 봐달라고, 더 많이 시켜야 한다고 당부 하신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나는 계속 책을 읽는다. 그리고 그 기록을 블로그에 남겨둔다. 그런 반복을 통해 나는 아이의 성공을 위해서 엄마가 공부하는 게 아님을 깨달았다.
그저 계속 공부를 하고 있으면 엄마가 덜 불안해진다. 다른 친구들보다 느린 아이의 발달에 조급함을 진정시킬 수 있다. 인터넷에 넘치는 선행과 각종 학원정보에 조금 덜 흔들릴 수 있다. 조금 덜 해질 뿐, 여전히 나는 불안하고 흔들린다.
그렇게 불안하고 흔들리면서 아이를 위한 공부를 계속하다 보니, 그 공부가 결국은 엄마를 위한 공부임을 깨닫게 된 저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이 책이 오늘도 불안하고 상처받으며 육아 중인 엄마들에게 책 읽기와 글쓰기를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