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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신저클레어 Aug 31. 2022

그날의 감정을 소환하여 달래주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된다

자기돌봄 방법 TREAT(트리트) #6

코로나와 퇴사로 자존감에 구멍이 났습니다.
단단한 마음을 가지려고 여러 도전을 했고요.
덕분에 자기돌봄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알았습니다.
현재 <자기돌봄> 주제로 강의하고 있습니다.



이전 글 <충분한 휴식이 왜 나에게는 사치스럽게 느껴질까 : 자기 돌봄 방법 TREAT(트리트) #5>에 이어...

https://brunch.co.kr/@m-claire/45



모 센터에서 중장년 세대 대상 자기돌봄 TREAT 모델을 강의하면서 그중 E(Emotion : 감정 관리) 영역에 대해 설명한 직후의 일이다.

60대 중후반 정도로 보이는 수강생 한 분이 조용히 손짓을 했다.

강의실 한편에서 나직한 목소리로 말씀을 시작하셨다.


"수업 내용처럼 나도 지나간 일을 정리해 보려고 별 걸 다해봤어요.

그런데 이 응어리는 쉽게 지워지지 않고 자꾸 불쑥 올라와서 아직도 나를 힘들게 하네.

이제는.. 그냥 죽을 때까지 해결 못하고 늙기만 할 것 같아요..."


보통 강의 쉬는 시간마다 수업 내용에 공감하신 한 두 분씩 살아오신 경험을 나눠주신다.

대부분 맞장구를 며 응원을 해드린다.

그러나 이번에는 마음이 너무 아팠다.

깊은 상처를 오픈해주신 것도 감사하지만, 한참 어린 내가 그 깊이를 헤아리기도 만무하거니와 자칫 가벼운 답변으로 그분께 더 큰 상처가 될까 봐 순간 걱정이 되었다.


"많이 아프셨을 것 같아요...

그리고 그 마음을 치유하려고 여러 시도를 하신 용기에 먼저 큰 박수를 드립니다.

저도 감정 관리를 이제 막 시작해서 경험이 짧아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아마 시도하신 여러 과정 중에 알게 모르게 조금씩 나아지는 효과가 있었을 거라 생각이 됩니다.

뚜렷하고 드라마틱한 치유가 된다면 정말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멈추지 않고 계속 여러 방법으로 그때의 감정을 만져주신다면 어느 순간 편안하게 느끼시는 때가 올 거라 확신해요.

기억하고 계속 응원하겠습니다..."






이번 감정 관리 내용은 결론부터 말한 것 같다.

감정 관리는 그 유명한 '마음 챙김'과 비슷한 맥락이다.

자기돌봄에 있어 내 감정을 (조절까지는 힘들더라도) 관리하는 것이 왜 중요한지 짚어보자.


먼저 마음 챙김과 TREAT의 E(감정 관리)는 같은 것인가?

마음 챙김(mindfulness)은 불교에서 말하는 용어로, '현재 순간을 있는 그대로 수용적인 태도로 자각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불교에서 시작되었지만 요즘 심리학적 의미로 많이 사용되는 마음 챙김은 '과거보다는 현재의 현상을 비(非)판단적으로 바라보는 것'으로서 '깨어있기'라고도 표현한다.

즉, 어떤 일이 생겼을 때 흔들리지 않고 객관적으로 관찰하는 능력을 말한다.

내 감정이 동요되는 걸 막기 위해 메타인지를 이용해 사물은 물론 나 자신마저도 객관화하여 바라본다는 뜻이다.


이런 능력을 갖추면 감정 조절이 확실히 쉬울 것 같다.

그러나 그 수준에 이르기도 전에, 나의 인간적인 모습에 자주 넘어지게 된다.

바로 자기돌봄 TREAT에서 말하는 E(감정 관리)는 결국, 이미 드러난 감정에 대한 후속 조치라 할 수 있다.


ShiftGraphiX@pixabay


성숙한 순간보다 미숙한 감정 처리가 더 많았던 나의 경우를 살펴보자.

열 살부터 중풍 할머니와 한 방을 사용하며 어린 간병인으로 20년을 살았다.

할머니를 위한다는 마음에 싫은 것도 좋다고 스스로 세뇌했고 그 습관은 청소년, 성인이 되어서도 일상에 영향을 미쳤다.


그 결과 좋고 싫음에 대한 경계가 애매해졌고, 그래서 그런지 늘 불만을 품었지만 드러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다고 표현했다.

그러다 가끔 내 안에 생각지 못한 감정이 엉뚱한 상황에 올라와서 당황한 적도 있다.

그 당황함은 나를 점점 불안하게 만들었다.


나중에 알았다.

'내면 아이'의 감정적 연령과 실제 '성인이 된 나'의 연령 차이가 그 이유였다.

내면 아이란 어린 시절 주관적인 경험을 설명하는 심리학적 용어다.

과거 억압된 정신세계 속에서 자란 유아기적 모습이 성인이 된 지금의 삶과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다시 돌아와 할머니의 대소변을 받으며 할머니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다고 했던 그 감정을 다시 떠올려본다.

그때는 그게 성숙한 행동인 줄 알았다.

그러나 솔직한 내 감정을 억눌렀던 게 잘못이었다.

그 감정 역시 나 혼자 있을 때라도 인정해줘야 했다.


할머니와 20년 룸메이트로 지내면서 사건사고도 많았다.

그 상황마다 떠오르는 감정을 세탁하기에 바빴던 나는 결국 40대에 사춘기를 겪고 만다.

내 감정적 자아, 즉 내면 아이가 성장을 멈춘 열 살로 다시 돌아가 글을 썼다.

숱하게 촘촘한 감정의 응어리를, 어떤 건 되게 아프지만 하나씩 열어보며 하나하나 인정해줬다.


저 깊숙이 고개 파묻고 숨어있던 내면 아이가 조심스레 고개를 들었다.

너무 오랜만이라 아직도 의심스러운 눈치지만 그래도 잊지 않고 찾아와 인정해주니 어리둥절한 모습이다.


내 삶에 있어 좋았던 일, 안 좋았던 일을 점찍고 인생 곡선을 그리는 작업을 누구나 한 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나는 더 나아가 인생 감정 곡선을 그렸다.


기뻤던 혹은 슬프거나 화가 났던 내 감정이 억눌렸던 그 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 점을 찍었다.

그리고 그 사건을 회고하며 그때 느꼈던 감정을 다시 느끼려고 노력했다.

어려웠지만 그 감정 상태를 다시 소환했고, 잊지 않고 다독여줬다.


"괜찮아. 그럴 수 있어."


브런치북 한 권이 발행될 정도로 인생 감정 곡선에 살을 붙였고 그 결과 나도 놀라고 내면 아이도 놀랄 정도로 많이 치유되며 성장했다.

그 경험담을 위주로 강의하고 있다.



반백을 바라보는 내가 세상을 좀 더 편안하게 바라보게 된 이유다.

열 살로 되돌아가 미숙하지만 지난 감정을 소환하여 하나씩 인정해주고 다독여준 결과가 이렇게 효과적일 줄 몰랐다.


그때의 감정을 달래주니 내면 아이가 다음부터는 이렇게 해야겠다며 의외로 대견한 대안도 낸다.

그게 바로 성장이다.


<스물다섯 스물하나>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을 기억하는가?

주인공은 그때 그 기억으로 돌아가 자신의 감정을 정리한다.

그리고 마음이 편안해지며 더 이상 그 일로 인해 고통받지 않는다.

감정 관리를 통한 자기돌봄의 멋진 사례다.


감정을 소환하여 인정해주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혼자 머릿속에 떠올려 괜찮다고 목소리로 크게 지를 수도 있고, 그게 힘들면 상담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경험상 가장 효과가 높았던 글쓰기를 추천한다.

남겨지는 글을 통해 좀 더 깊은 감정 상태에 닿을 수 있고, 여유를 가지고 충분히 달래줄 수 있다.

의도치 않게 멋진 '나의 이른 회고집'이 탄생할 수도 있다.


누구나 생물학적 나이에 해당하는 인생 곡선상 그 점에 놓여있다.

어린 나이도 좋고 황혼을 즐기는 나이도 늦지 않다.

현시점이 인생 곡선상 어디든 간에 과거 아팠던 감정에 더 이상 휘둘리지 않고, 현재를 온전히 즐길 수 있는 여유를 가지기 위해 '감정 관리'라는 자기돌봄 기술을 한 번 사용해보자.


강의 후 글쓰기가 너무 어렵다고 피드백을 많이 받지만 그저 한 줄만 써보는 것도 좋은 출발이다.

그냥 해보자.


취업 준비, 결혼 준비, 육아 교육 승진 은퇴 노후 준비를 거쳐 어디 병원 그럴듯한 일인실에서 사망하기 위한 준비에 산만해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무례와 혐오와 경쟁과 분열과 비교와 나태와 허무의 달콤함에 길들지 말길, 의미와 무의미의 온갖 폭력을 이겨내고 하루하루를 온전히 경험하길, 그 끝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는 낯선 나를 아무 아쉬움 없이 맞이하길 바랍니다.

- 허준이 교수 -



한국인 최초로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교수의 서울대 졸업식 축사의 일부를 공유하며 마친다.

자기돌봄을 통해 하루하루를 온전히 경험하고, 그 끝에서 오래 기다리고 있는 낯선 나를 아무 아쉬움 없이 맞이할 수 있을지도...


다음에는 자아 성장의 욕구를 충족하면서 자기를 돌보는 '성취감'에 대해 나눠보겠다.

자기돌봄 목적은 분명하다.

좀 더 풍요롭고 행복한 나를 만나기 위함이다.



... <자기돌봄 TREAT(트리트) #7>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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