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제 나의 모든 기량을 총출동시켜야 할 실전이다.
❚그냥 악몽을 꾼 거겠지?
드넓은 초원을 따라 속 시원히 펼쳐진 미국 고속도로를 운전하고 있었다. 그날도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미국 현지 대학교로 기분 좋게 출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멀리서 뭔가 꺼림직한 기운이 느껴졌다. 경찰차가 바짝 내 차 뒤를 따라붙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떨리는 마음으로 갓길에 차를 세웠다. 총을 든 어메리칸 폴리스가 엄청 화가 난 얼굴로 나에게로 성큼 성큼 다가오고 있었다.
이건 깨어나면 없어질 악몽이 아닌 현실 100% 실화다!!!
❚연습과는 전혀 다른 실전
어제 아들의 3대3 농구 대회가 있었다. 평소 실력으로 하면 충분히 이기고도 남을 팀에게 어이없게 지고 말았다. 아들 팀은 멤버 4명 중 한 명이 경기 이틀 전 코로나에 걸리는 바람에 출전할 수 없게 되었다. 아들 팀은 교체 선수도 없이 3명 뿐인 팀으로 출전했다. 상대 팀은 5명의 멤버가 서로 돌아가며 체력 배분을 잘 했다. 게다가 상대 팀에는 전문 코치까지 있었고, 아들 팀의 코치는 현장에서 급조된 고등학생 형이었다. 아들 팀의 전력을 파악한 상대 팀 코치는 선수들에게 압박 수비를 하도록 주문했다. 그런 압박 수비 속에 아들 팀은 기량을 펼칠 틈도 없었다. 결국 아무런 득점 없이 상대에게 3점을 내어주고 10분간의 경기는 패배로 끝났다.
나름 농구에 진심이 남편의 말로는 상대 팀 선수들의 기량은 별로 좋은 편이 아니라 말했다. 아들 팀의 평소 실력이면 그 팀을 거뜬히 이기고도 남는다고 한다. 그런데, 왜 우리 아들 팀이 졌을까? 우선은 예상치 못한 상황 때문이다. 통제할 수 없는 요인- 코로나로 인한 한 명의 팀원 결원, 코치의 부재, 상대팀의 압박 수비 작전-이 그러한 결과로 이어지게 만들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장 근본적인 패배의 원인은 평소 연습 때와는 사뭇 다른 상황에 대해 유연한 대처를 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 자신의 팀에게 불리한 상황 특히 압박 수비 및 코칭의 부재로 인한 심리적 위축감, 교체 선수없이 10분을 계속 뛰며 발생한 급작스런 에너지의 소진 등을 적절히 대처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
❚미국 현지에서의 현실 영어
아들은 농구 대회를 앞두고 3점 슛과 드리블을 열심히 연습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전 경기에서의 갑작스런 변수로 고전을 면치 못 했다. 나 또한 미국 유학을 꿈도 못 꾸던 고등학교 시절부터 거의 20년간 영어 공부에 아주 열심이었다. 나는 영어에 미쳐있었다. 덕분에 영어 학원, 그리고 원어민 강사의 연수 프로그램에서 영어로 하는 대부분의 의사소통에서는 큰 불편함이 없을 만큼 영어 수준을 만들었다. 미국 유학을 가기 전까지 나름 한국에서는 영어를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발음도 괜찮고 영어로 대화하는 기술 역시 나쁘지 않다고도 들었다.
하지만 나의 영어 자신감은 미국 현지 생활이 시작되면서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그들은 내가 외국인임을 아랑곳하지 않고 나에게 막무가내 영어를 하염없이 해버렸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들이 영어 원어민이라는 사실이 나를 작게 만들었다. ‘그들에게 나의 영어는 모자라도 한참 모자라는 수준일 것 같다’라는 자의식이 나를 괴롭혔다.
❚좌충우돌 미국 현지 생활
친절한 영어 강사 선생님들과 교실 영어만 해보던 나는 현실 영어를 정면으로 마주하면서 충격을 제대로 받았다. 5년간 미국 생활을 하면서 일련의 크고 작은 사건 사고를 처리하면서 현실 영어의 다이나믹을 제대로 체험했다.
✈결국 과속하던 나를 목격한 경찰은 파랑 불빛의 사이렌등을 켰다. 상황 파악을 하지 못 한 나는 계속 달렸다. 경찰의 신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달리는 나는 괘씸죄가 추가되어 법원에 까지 회부되었다. 법정에서 내 차례를 기다리며 앉아 있었다. 무섭게 생긴 사람이 판사로부터 꾸지람 비슷한 말을 듣더니 이내 수갑이 채워지며 정면에 있는 어떤 문으로 끌려 들어갔다. 나는 숨죽이며 내 차례를 기다렸다.
✈대형 할인점에 갔다. 멤버십 카드를 만들기 위해 내 운전면허증을 건네 주었다. 마트를 한 바퀴 돌고 와서 내 운전면허증을 돌려달라고 하니 분실했다고 한다. 누군가가 잘못 가져간 것 같다면서 내 운전면허증은 없단다. 그런데 자기들은 내 신분증 분실에 책임이 없다고 한다.
✈자동차 바데리를 교체하고 나서 집으로 가는 데 차의 엔진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고 브레이크가 오작동을 한다. 참 놔~ 이건 또 무선 일이고???
✈내가 가입하지도 않은 생전 처음 본 웹사이트에서 멤버십으로 내 계좌에서 돈을 거의 1년간 매달 30불 정도를 인출한 것을 우연히 발견했다. 금쪽같은 내돈!!!~
✈아이들을 픽업하고 집으로 가려고 하는 데 차의 시동이 걸리지 않는다. 초등학교 앞 주차장에서 자동차가 방전되어 버렸다. 보험사에 전화를 했다. 그 순간 난데없이 잔디 깎는 사람이 굉음을 내며 잔디를 깎기 시작한다. 보험사 직원의 목소리는 알아들을 수 없는 상황이다. 최선을 다해 귀를 쫑긋하며 입술에 힘을 주며 내 위치를 일러줬다. 더운 여름날 땡볕에서 벌써 3시간째 기다리고 있다. 보험사는 올 기미가 없다.
✈월마트 계산원이 나에게 미국 남부의 진한 사투리로 뭐라 뭐라 한다. 뭐라구요? 내 귀에 ‘영어가 맞아?’라고 할 정도다.
❚좌충우돌 현실 속 실전 영어를 위한 능력들
교실에서 키워진 순수 언어능력으로는 미국 현지에서 겪게 되는 다양한 상황들을 잘 헤쳐나갈 수는 없다. 현지에서 살며 겪을 여러 종류의 상황들은 평소 예상했거나 경험하지 못 한 것들이었다. 생전 처음으로 겪는 상황에서 자신이 할 말을 단순히 영어 문장으로 옮길 수 있다고 해서 그런 상황을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응용언어학자 바흐만(Bachman, 1990)에 따르면 우리가 어떤 현실적 사건이나 상황에 놓여서 언어로 의사소통을 할 때 다섯 가지 요소가 수반된다고 한다.
<Components of communicative language ability in communicative language use> (Bachman, 1990, p. 85)
1) 지식 구조: 세상에 대한 크고 작은 지식들
2) 언어능력: 특정 상황 맥락에 국한되지 않은 일반적인 언어적 능력
3) 전략적 능력: 모든 능력을 통합하여 주어진 상황에서 가장 적합한 아웃풋을 최종 결정
4) 정신생리학적 메카니즘: 언어사용과 관련된 정신 생리학적 (심리적) 기재
5) 상황 맥락: 의사소통이 일어나고 있는 상황과 전반적 맥락
예를 들어 속도위반으로 경찰에게 적발된 나의 악몽과 같은 사건을 다시 떠올려보자. 그 위기 일발의 순간 내 머릿 속에는 아래 다섯 가지 사항이 동시에 일어났다.
➤ (상황 맥락) 아주 심각한 상황임을 파악한다.
➤ (정신생리학적 메카니즘) 불안, 초조한 마음을 최대한 가라앉힌다.
➤ (지식 구조) 절대 손을 운전대 아래로 내려놓지 말아야 한다는 상식을 기억해낸다.
➤ (언어능력) 경찰이 묻는 말에 존칭을 붙혀 “Yes, sir”라 말할 수 있어야 한다.
➤ (전략적 능력) 최대한 공손한 모드로 상황에 대처할려는 전략을 세운다.
결국, 위와 같이 실제로 고속 단속 위반에 적발되는 상황이 펼쳐질 때 우리는 짧은 순간이지만 머릿 속에서 많은 생각의 과정을 거쳐 비로소 “Yes, sir”라는 말을 한다.
그런 여러 가지 기재들 중 무엇이 중요하게 작용하고 그것을 어떻게 연마해야 실전에도 강한 영어 스피커가 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