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식 영문법’에 사로잡힌 중학 영어
▮피해 갈 수 없는 중간고사 출제 기간
시원한 가을바람이 분다. 살랑거리는 교실의 달력에는 ‘중간고사’라는 메모와 커다란 두 개의 빨간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다. 학생들에게 시험은 세상 부담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교사에게도 역시 그러하다. 문제를 맞추지 못 할까봐 하는 두려움은 없지만 틀린 문제를 출제할 까봐 하는 두려움은 몇 배 더 크다. 게다가 새로운 문제를 창작해야 하는 그 고통은 글 쓰는 고통만큼이나 크다.
그 고통을 배가시키는 요인 하나가 더 있다. 대한민국의 내신성적이 가지는 위력이다. 매번 정기 고사를 출제하면서 교사들이 느끼는 심적 압박감과 스트레스는 엄청나다. 20년에 달하는 경력 교사에게도 절로 머릿속에서 문제가 바로바로 생각나는 법은 없다. 경력이 있든 없든 누구도 창작의 고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더군다나, 대한민국 공교육의 영어 교사는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자가 아니기에 영어 문제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그 출발선부터 만만한 일이 아니다.
▮영어 시험문제로 내기 좋은 꿀템?
<다음 밑줄 친 부분 중 그 쓰임이 다른 하나는?>
➀ The girl watering the plant is my sister.
➁ The boy talking to the teacher is Insu.
➂ Eating breakfast is good for your health.
➃ I like the player wearing a red T-shirt.
➄ Do you know the man walking a dog over there?
<다음 밑줄 친 to부정사 중 용법이 다른 하나는?>
➀ I need to water the plant.
➁ I like to wear a red T-shirt.
➂ I went to the park to walk my dog.
➃ To eat breakfast is good for your health.
➄ The boy wants to talk to the teacher is Insu.
대한민국 성인들이라면 학창 시절 위와 같은 문제를 많이 접했으리라 예상된다. 아마도 중학생 자녀들의 학교 시험에서도 여전히 볼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참 놀라운 일이다. 세월이 20년 아니 30년이 흘렀지만 여전하다.
내신성적은 학생들의 능력 우위를 가리는 시험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교사들은 출제하기 쉽고 학생들이 실수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문제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때문에 어떤 경우, 영어능력을 측정하기 보다는 소소한 실수를 유도하는 문제들을 출제하기도 한다. 그런 용도로 가장 오랫동안 그리고 널리 애용된 꿈의 아이템은 소위 “문법”문제이다.
문법이 영어 능력의 요소에서 필수 아이템인 것은 맞다. 하지만 영어 학습자에게 필요한 문법능력은 단락 글 안에서 내용 이해를 위해 필요한 문법적 이해력이다. 하지만 위의 예시 문제처럼 뚱딴지같이 맥락도 없는 단편적인 문법 사항을 테스트하는 문제는 영어 능력의 요소로서 문법적 이해력을 측정할 수 없다.
출제자는 “문법” 문제라 스스로 칭하고 싶겠지만 그건 착각이다. 위와 같은 예시 문제들은 독해를 하기 위해 필요한 진정한 문법적 이해력을 묻는 문제가 되지 못 한다. 우리가 평가해야할 부분은 바로 단락 글 안에서 내용 이해를 위해 필요한 문법적 이해력이다. 하지만 여전히 대한민국 영어 시험에는 위의 예시와 같은 문항이 굳건히 자리를 잡고 있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시중에 판매되는 문제집은 20년전이나 30년전이나 변함이 없다
중학교 졸업을 한 이후 중학교 영어 문제집을 거의 볼 일이 없었다. 교사가 된 이후에도 시중 문제집을 보고 정기고사를 출제하는 건 아니기에 전혀 참고할 일이 없었다. 그런데, 5년의 미국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중1 아들이 영어 부진아 취급을 받은 후부터 아들을 위해 내돈을 주고 중학교 내신대비 문제집을 늘 정기고사 마다 산다. 20년 전 아니 30년 전 내가 중학생이었을 때 문제와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여전히 00적 용법을 묻고 맥락없는 문법 문제로 가득하다.
어떠한 교사들은 평가 문제집에 나오는 문제 유형이니 학교의 정기고사에 출제해도 되겠지 믿을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교사에게 주어진 엄청난 권위를 스스로 내어 놓은 꼴 밖에 되지 않는다. 출판사는 엄밀히 말하면 국가 교육과정과 각 학교 교육과정을 따라 가야 할 하위 단계의 교육 콘텐츠 제작자이다. 국가 교육과정과 각 학교 교육과정이 먼저 그 방향성을 설정해주어야 할 일이지 반대로 흘러가게 해서는 안 된다.
출판사에서는 대량의 문제를 대학생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해서 문제를 만든다는 말도 있다. 같이 근무하고 있는 선생님의 언니가 대학생이었던 시절 그런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었다고 하셨다. 모든 출판사가 그러한 건 아니겠으나, 별달리 전문성이 느껴지지 않는 문제들이 수두룩한 걸 봐서는 전혀 사실무근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식 영문법’에 사로잡힌 이유
혹시 00적 용법을 모르면 독해를 못 하는 일이 생긴다고 믿는 걸까?
혹시 동명사와 현재분사를 구별하지 못하면 독해를 못 하는 일이 생긴다고 믿는 걸까?
원어민들은 to부정사의 명사적,형용사적,부사적 용법을 생각하지 않는다.
원어민들은 –ing가 붙는 말이 동명사인지 현재분사인지 구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단락 글의 의미 파악에 전혀 막힘이 없다.
왜일까?
반대로,
to부정사의 명사적,형용사적,부사적 용법을 늘 생각하는 한국식 영문법 추종자들,
동명사와 현재분사를 구별하느라 문장을 분석하느라 분주한 한국식 영문법 추종자들은 과연 단락 글의 의미 파악을 훨씬 더 쉽게 할까?
▮5년의 미국 초등학교 영어 교육을 받고 한국 영어 시험에서 부진아 취급받은 아들
한국에서 초등학교 1학년 겨울 방학을 마치고 미국에서 교육을 받은 우리 아들은 초등학교 6학년 2학기에 귀국했다. 아들은 한국식 영문법의 존재도 모른 채 미국 현지 학교에서 영어 교육을 받았다. 그런 아들이 대한민국 중학교 1학년 첫 중간고사를 치고 기함을 했다.
한국식 영문법 추종자들에게는 아주 아주 기쁠 만한 그런 문제들로 가득 찬 중간고사를 치렀다. 시골 작은 사립 중학교에 다녔던 아들은 졸지에 영어 부진아가 되어버렸다. 그 학교는 영어과목 우열반 운영을 하고 있었다. 아들은 3월 입학 후 원어민 선생님의 영어 면접을 통해 우반으로 편성이 되었다. 하지만 그 이후 우열반 편성은 정기고사 성적으로 한다고 했다. 한국식 영문법으로 가득한 중간고사에서 아들의 영어 성적은 곤두박질 쳤다. 결국 아들은 영어 열반으로 떨어졌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영어 교육의 현실이다. 최대한 예의를 차려 학교에 문의를 했으나 그들의 영어 반편성 기준과 영어 평가에는 이상이 없음을 알려왔다. 같은 영어 교사이지만, 도저히 이해 할 수 없었다. 과연 그들이 측정하려는 영어 능력은 무엇이었을까?
원어민 선생님과 주로 수업을 하는 우반은 한국식 영문법 귀신인 학생들로 점점 구성되었다. 그들은 원어민 선생님과 원활한 의사소통을 하지 못 했다. 반면, 열반으로 떨어진 우리 아들은 한국인 영어 선생님으로부터 00적 용법으로 가득한 한국식 영문법을 주구장창 듣게 되었다. 아들의 영어 노트에는 수많은 문법 용어로 가득했다.
어처구니 없는 학교 시험에 대해 항의를 한다고 해서 그 시험 형태가 바뀌지는 않는다. 설령 항의를 한다면 교사의 권위에 도전하는 학부모로 낙인이 찍힐 게 뻔한 일이다. 중1 첫 중간 고사 시험에서 폭망한 이후 아들은 어쩔 수 없이 한국식 영문법 공부를 해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그런 영어 교육의 문제점을 누구보다 알고 있는 영어 교사인 나 조차도 아들에게 한국식 영문법을 가르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을 떠날 수 없는 일이기에 아들에게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한국식 영문법을 꾸역꾸역 가르쳤다. 단지 학교 시험을 망치지 않게 하기 위한 이유 외에는 다른 의미가 없는 공부였다.
결국 우리는 아들을 다른 학교로 전학시키는 것으로 일단락했다. 다행히 새로이 옮긴 학교는 첫 중학교 만큼 한국식영문법 잔치인 그런 영어 시험은 아니라 천만다행이었다.
▮평가가 가지는 환류 효과(washback effect)
교사가 가진 권위는 교육의 거창한 방향을 정하는 것에 있지 않다. 교사는 그저 국가 교육과정이라는 큰 틀을 기반으로 각자의 철학대로 교육을 실천할 뿐이다. 하지만 교사는 평가에 대해서 만큼은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고 있다. 교사라는 직업에 나름 보람을 느끼는 이유는 이런 평가의 환류효과에 나의 영어 교육 철학이 반영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교사가 평가의 대상으로 무엇을 선정하느냐에 따라 학생들의 교육방향이 좌지우지된다. 이것이 이른바 평가의 환류 효과이다.
가르친 내용을 평가에 반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애초에 평가하려는 능력이 무엇인지를 먼저 명확히 해야 한다. 그것이 소소한 한국식영문법 지식인지 아니면 영어능력자체인지를 구별해야 한다. 대한민국 중학교 영어 교육은 학생들의 영어 의사소통능력을 키우는 것에 그 목적을 두고 있다. 교사는 학생들의 의사소통 능력 자체를 위해 필요한 지식과 기능을 가르치는 교육과정을 구성하도록 기대되고 있다. 평가는 그러한 영어 의시소통 능력을 측정하도록 되어 있다. 평가의 환류 효과로 학생들은 더더욱 영어 의사소통능력을 키우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영어 교육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소소한 한국식영문법 문제를 소위 킬러 문제로 삼을 경우, 우수한 학생이면 학생일수록 영어 의사소통능력을 키우기보다 그 어처구니없는 한국식영문법에 많은 시간과 비용을 지불할 것이다. 실제로 방학만 되면 한국식 영문법 특강으로 학부모를 현혹시키는 사설 학원이 넘치고 넘친다. 특히 초등학교 고학년의 학부모들에게 중학영어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하고 한국식영문법이 중학영어의 필수 아이템인양 광고를 한다.
▮대안을 찾고 싶은 영어 교사
동료 교사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평소 왠만한 일로는 별로 안티를 걸지 않는 설렁설렁 스타일인 나라도 00적 용법을 묻는 시험 문제만 보면 안티를 건다. 역시나 이번 중간고사 출제 기간에도 그러한 일이 있었다. 동료 교사가 출제한 시험 문제에 태클을 거는 것은 업계에서 해서는 안돼는 금기시되는 행동이다.
하지만 나는 쿵쾅거리는 심장박동을 부여잡으면서 태클을 걸었다.
그 문제를 허용해버리고 나면 내가 바로 아들의 첫 중학교 시험문제의 출제자가 되는 꼴이 된다.
그러면 우리 아이들은 분명 중간고사 이후 ‘이상한 영문법 나라, 이상한 영어 학원’에 등록할 것이다.
우리 학부모님들은 초등 영어 교육의 그 틀을 모두 버리고 이상한 영어문법 학원으로 아이들을 내몬다.
우리 아이들은 영문도 모른 채 그 교과서를 통째 달달 외우게 하는 학원에서 또 늦은 밤까지 포로로 잡혀있어야 한다.
‘그런 일은 막아야 한다’는 마음의 소리를 교사의 양심상 차마 무시할 수 없었다.
문법 용어가 가득한 영어 학습지
본문 각 문장을 조각조각 해부하는 영어 수업
00적 용법을 묻는 시험문제
이 세 가지에 대해 영어 교사인 나는 많은 반감을 가지고있다.
이 세 가지 때문에 학부모들은 제대로 시키던 초등 영어 공부를 하루아침에 그만두고 중학교 들어갈 무렵부터 ‘이상한 영문법 나라, 이상한 영어 학원’으로 아이들을 내몬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대한민국 영어 교육의 현실을 바로잡을 수 있는 대안은 없는 것일까?
학부모로서 영어 교사로서 늘 스스로에게 발문해 본다.
미약한 힘이지만 한국식영문법 없이도 영어 공부를 할 수 있는 방법을 나누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른 새벽 틈틈이 써내려간 브런치북 <한국식영문법말고 원어민식 그림문법>이라는 건 그런 나의 개인적인 포부로 시작한 프로젝트였다. 보다 많은 독자들이 생겨나서 나의 영어 교육에 관한 제안이 이해와 공감을 얻을 수 있었으면 한다.
https://brunch.co.kr/brunchbook/easygrammargrim
영어의 필수기본 패턴이 될 문장들을 입으로 익히고
그 문장 구조 그림을 눈으로 익히고
그러면 그 쓰임이 마음으로 익혀진답니다.
아래 링크에서 확인해보세요.
https://www.instagram.com/tv/CjLAEPzsl3r/?utm_source=ig_web_copy_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