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저는 현직 영어 교사입니다.
❚ 영문법이 제일 중요합니닷~!!
며칠 전 우리 학교 일 년 계약직 선생님을 선발하기 위한 면접이 있었다. 나는 영어과 부장을 맡고 있었기에, 그 분 면접관으로 들어갔다. 맨 처음 자신의 소개 부분에서 그 분은 대학 편입 시험 영어와 공무원 시험 영어를 주로 가르쳤다고 하셨다. 교감 선생님의 몇 가지 질문이 이어진 후, 나는 영어 교육과 관련된 질문을 드렸다. “영어 교육에서 무엇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되시나요?” 그 분의 대답은 “문법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 합니다”이었다. 그 분의 이전 경력을 생각하면 어쩌면 그 대답은 너무 당연한 지도 모른다. 한 줄 세우기를 위한 영어 시험인 편입시험, 공무원 시험에서 최우선의 원칙은 변별력이다. 그것도 논란이 없이 지원자들을 한 줄로 세우는 것이 애초의 목적일 지 모른다. 치열한 경쟁이 있는 편입시험과 공무원 시험의 당락은 어쩌면 몇 몇 개의 어려운 문법 문제에서 판가름 날 지도 모른다. 당연히 그 수험생들은 문법에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실수를 최소화하는 게 그 수험생들의 최대 관심사일 것이다. 그런 수험생들을 지도하는 학원 강사들의 영업 비밀은 단연 전문가적인 문법 강의일 것이다.
❚ 한 줄 세우기엔 영문법이 최선?
그런 한 줄 세우기 모드는 일선 고등학교에서도 예외는 아닌 듯하다. 물론, 내가 근무하는 중학교에는 그렇게 심한 한 줄 세우기는 아니지만, 변별력이라는 미명아래, 무지막지한 시험 문제를 한두 개 넣는 일이 다반사다. 영어 문법 문제라 하기에는 대부분 시시콜콜한 걸 묻는 문제일 경우도 많다. 그런 사소한 문법 규칙에 연연해 하는 영어 공부는 이제 그만 시켜야 할 시대가 온 것 같다.
❚ 한국식 영어 문법 교육이 우리를 힘들게 해.
미국에서 5년 가량 지내면서, 마지막 3년 동안 사립학교를 다녔다, 그 학교에는 우리 아들이 유일한 외국인 이였고 학교에서 일상의 대화는 당연히 영어로 이루어졌다. 사립학교에서의 3년 동안 아들은 제법 수준 높은 문법 공부며 쓰기 교육을 받았다.
한국으로 귀국을 한 이후, 아들은 귀국자녀 특별 전형으로 인근 사립학교에 입학했다. 그 학교는 영어를 국제반/일반반(우열반) 수업을 하고 있었다. 입학 할 당시 원어민 선생님과의 인터뷰로 우리 아들은 국제반에 편성 되었다. 국제반은 원어민 수업이 더 많고 일반반은 한국인 수업이 더 많게 수업 과정을 운영했다.
그런데 외국어 중점학교라던 그 중학교 영어 중간/기말 시험 문제를 보고 기함을 했다. 한국식 영어 문법 문제로 가득했다. 여전히 '~적 용법', 문장의 5형식과 같은 고전적인 영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중학교 입학 후 첫 학기 교내 영어 글짓기에도 최우수상을 받은 아들이지만 결국, 한국식 영어 문법 위주의 문제로 가득한 지필 고사에는 성적이 좋지 않았다. 결국 한 학기를 지내고 2학기 시작 전에는 일반반으로 조정되었다.
아이러니 하게도, 2학기에 그 국제반으로 배정된 학생들은 대부분 의사소통 능력이 우수한 학생이라기보다는, 한국식 영어문법을 달달 암기한 학생을 선발한 셈이다. 학교에 문의를 하긴 했으나, 학교는 성적 순으로 반을 나누었으니 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2학기 반편성에는 원어민과의 인터뷰나 작문과 같은 영역은 치뤄지지 않았다. 반 편성을 결정짓는 요인은 한국식 영어 문법 지식 이었다. 그 학교가 기르고자 하는 영어 능력이 무엇이냐고 문의해도 별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그 학교는 소위 엘리트를 선발해 가는 학교로 소문이 나서 학부모들 사이에서 인기 만점인 학교이다. 하지만 소문과 달리 현실을 알게 된 후 도저히, 그런 한국식 영문법만을 추구하는 교육과정에 아들을 남겨 두고 싶지 않았다. 점점, 그 학교에 대한 전반적인 신뢰가 떨어졌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그 학교를 그만두게 하고 집 근처 일반 중학교로 아들을 전학시켰다.
❚ 영문법도 수학 공식처럼 깡그리 외우는 거?
나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중학교 영어 문법교육에 상당한 거부감과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다.
중학교 영문법에 대한 거부감은 나의 개인의 경험에서 강하게 비롯되었다. 예전 중학교 시절 그 이해불가의 영어 문법 시간은 내가 영어를 싫어가게 된 이유였다. 따뜻한 봄날, 점심을 맛있게 먹고, 식곤증이 몰려오는 오후 시간이었다. 여느 때처럼, 우리 영어 선생님은 알 수 없는 수학 공식 같은 걸 깔끔하게 판서를 하셨다.
주어 + 동사 + 목적어
= 목적어 (주격으로 변형) + be (동사의 p.p모양) by 주어 (목적격으로 변형)
아마도 대한민국 중학교 이상 학력을 가진 사람은 이것이 그 유명한 '능동태를 수동태로 변형하는 공식'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공식 자체는 뭐 그리 복잡해 보이진 않았다. 그래서 그냥 시키는 대로 외워서 시험에 이 패턴이 보이면 무조건 바꿔 넣기로 했다. 그런데, 영어 미아였던 나는 그 당시, 그 수학 공식 같은 영어 문법이라는 것을 도무지 왜 배워야하는 지 알 수 없었다. 수학 문제처럼, 그렇게 등식을 전개해 나가듯이 푸는 게 영어였던가? 나는 벌써 30년도 지난 지금도 그날의 갑갑함을 생생히 기억한다.
❚ 영문법이 법조항 같은 거?
우리는 문법을 마치 대한민국 헌법을 보듯이 그저 규칙인 듯이 암기 하도록 강요한다. 그리고 그 규칙에 입각한 오류 문장을 찾아내는 능력을 테스트 한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간과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그 먼 옛날, 무지한 영어 학습자인 내가 강하게 품은 의구심, '저걸 왜 배워?', '저게 우리 일상과 무슨 상관이 있어?' 라는 것에 대한 답을 학습자에게 제시하지 않는다. 얼핏 보면 무슨 법조항같은 긴 해설을 단다. 게다가 뜻 모를 영어 문법 용어를 마구 사용하면서 학습자들을 더욱 미궁으로 빠트린다. 그리고 수학 문제처럼 o,x의 절대 답을 요구한다.
❚쌤, 질문 있씀돠~
중학교에서 처음으로 ABC를 배운 산골 소녀인 내가 수능영어를 치고 TOEIC과 TOEFL을 치르고 미국 대학교 영어 교육 석사와 교육학 박사를 거친 나로서는 그 30년 전의 영어 선생님의 문법 시간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그때 그 두 가지 패턴의 문장이 어떤 쓰임의 차이가 있는지, 그리고 어떨 땐 수동으로 쓰고 어떨 땐 능동으로 써야하는 지, 그리고 꼭 그렇게 어려운 한자 문법 용어를 써야했는 지.
❚ 혹시 이런 방법은 어떨까?
능동/수동을 가르치기 전에, 두 가지 상황의 예를 먼저 들어주는 건 어떨까?
상황1. 한글날을 기념하여, 우리나라 한글에 대한 글을 영어로 써볼까요?
상황2. 많은 한국 사람들이 존경하는 세종대왕을 소개하는 글을 써볼까요?
(A) Hangul was invented by King Se-jong. (B) King Se-jong invented Hangul.
상황1의 글에는 (A)문장이 어울린다. 그리고 상황2에는 (B) 문장이 잘 맞아 들어간다.
이유는 바로 그 글의 초점과 관련 있기 때문이다. 결국, 영어는 말이고, 정확한 의도 전달이 제일 중요하다. 그러니, 상황에 따라 어떨 때는 능동으로 어떨 때는 수동으로 문장을 구성하는 것이다. 이런 점을 미리 알려주고 나면, 아마도 학습자들은 이제 그 구별의 필요성을 알았으니, 더 귀를 열고 각각의 문장 패턴에 대한 연습을 할 마음이 더 생길 것 같다.
결국, 문법 교육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그 규칙이 어떤 의미나 정보의 차이를 발생 시키는지를 알려 주는 것이다. 외국어로서 영어를 배우는 우리에게는 그 원어민의 직관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러니, 문법 규칙을 배우기 전에 많은 문맥에서 그 문법 규칙이 어떤 의미적 차이나 정보를 전달해주는 지를 아는 게 제일 관건인 듯하다. 그리고 어려운 문법 용어를 모르면 못 풀게 하는 그런 시험문제나 '~적 용법'을 묻는 그런 시험 문제들은 이제 그만 나와도 될 것 같다. 사실, 이런 문제는 미국 정규시간 문법 시간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것이다. 물론, 대학원 문법 시간에도 절대 나오지 않았다. 다만, 그들은 문장의 구조를 시각화 하는 훈련을 하면서 문장의 정확한 의미 파악과 정확한 의사 표현의 도구로 문법을 익히고 있었다.
❚ 달달 한국식 영문법 외워서 어디에 썼는고 하니.
중 고등학교 시절 수도 없이 본 영문법 책 때문에 나에게도 사실 긴 장문 독해보다 영문법 문제가 더 식은 죽 먹기이다. 미국 석사 시설, 전공 교수님조차 나와 일본인 친구에게 영어 문법 문제를 물어 볼 정도였다. 문장의 성분 분석하는 것과 문장 구조 파악하는 것에 나와 일본 그 친구는 도가 트였다. 미국인 현지 대학생들은 문장 다이어그래밍에 대해 교수님에게 일대일 나머지 공부를 받기도 했고, 나와 일본인 친구가 개인 지도를 해 준 적도 있었다. 그 미국인 원어민 친구들에게 우리는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난 그 친구들에게 '난 오히려 영어에 대한 직관이 있는 너희들이 부럽고, 너희는 규칙은 몰라도 유창하게 영어 문장을 말하니 얼마나 좋겠니?' 하고 말했다. 겸손을 떨려고 한 말이 아니다. 영문법에는 도가 트일 정도로 훈련을 받았지만 나머지 영역에는 소홀한 한국식 영어 교육의 맹점을 피부로 절실히 느꼈다. 원어민 미국 친구와 나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 한 채 그저 서로를 부러워 할 뿐 이였다.
달달 암기해서 얻은 한국식 영어 문법 지식이 도움이 된 적은 그 때 딱 한번 뿐인 듯하다. 수능영어에서도 TOEIC에서도 TOEFL에서도 그 지식은 큰 소용이 없었다. 소용이 없는 법조문을 우리는 너무 외운 거였다. 그 시간에 통문장이라도 더 외우고 영어 원서책을 더 읽었더라면 더 나았을 뻔했다. 최대한 많은 영어 문장과 글에 노출 되는 것이 그 원어민들이 가지는 직관을 그 나마 비슷하게 가지게 되는 지름길인데, 우리나라 아이들은 영어 문법을 달달 외우느라, 미처 그런 시간까지는 할애 받지 못 하고 있다.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하다. 참 가슴 아픈 일이다.
작년에 같은 학년을 맡은 두 분의 영어 선생님들 중 한 분은 경력이 많으신 분이고 한 분은 이제 발령을 받으신 새내기 선생님이셨다. 그런데, 두 분은 모두 그런 법조항처럼 영어 문법을 가르치시기를 희망하셨다. 결국 나와 그 두 분 사이의 간극은 결국 좁히지 못 한 채 우리는 매 단원 문법 활동지를 만들 때나 정기 고사 문제를 의논할 때 상당한 갈등을 경험했다. 미국 유학 갔다온 사람이라 별스레 군다고 오해를 받았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의 솔직한 이유는 중학교 시절 나의 영어 미아로서의 경험 때문에 나는 문법을 법조항처럼 가르치기를 거부할 뿐이다.
❚ 빼박으로 난 현직 영어교사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중학교 현직 영어 교사이다. 그리고 내 주위의 동 교과 선생님들 중에는 그런 한국식 영어 문법의 충실한 지킴이들이 많다. 초임의 교사이든, 중견 교사이든. 나는 그런 세대를 아우르는 철저한 한국식 영어 문법의 카르텔에 그만 무기력함을 느낀다. 그래서 이렇게 작은 네트워킹이지만, 이 곳에 유학 시절 얻게 된 문법에 관한 배움과 거의 평생 영어를 공부하고 가르치면서 가지게 된 나의 영문법에 대한 생각을 실어볼 계획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내가 한국에서 영어 교사가 되고, 미국 석사 박사가 되고, 원어민 친구와 삶을 나누는 데 필요했던 영문법, 그 알맹이만을 전하고 싶다. 그리고 문법 용어 없이도 그게 가능할 수 있으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문법을 가르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새로운 방향으로 문법을 바라보면 어떨까하는 것이다. 나는 이 공간에서 그 작은 시도를 해 보려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