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각을 글이나 영상 매체로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햇볕 좋은 창가 커피 한잔 그리고 젊은 기운들이 가득 찬 도서관
드넓은 도서관에 각자 토론을 하든, 혼자 숙제를 하든, 자유롭게 자기의 스타일대로 공부하는 미국 대학교 도서관은 나에게 작은 쉼터였다. 오전 전공 수업을 하기 전 이른 아침, 점심시간, 오후 수업 기다리는 시간 동안 나는 늘 그곳에 머물렀다. 거기서 점심을 먹고 늦은 오후 수업을 기다리며 과제도 하고 삶의 여유도 즐겼다. 정신없는 워킹 맘으로 살던 한국에서의 생활을 뒤로 하고 이렇게 한가로이 평일 낮에 도서관에서 젊은 기운들과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난 황홀했다. 비록 즐거운 취미 독서가 아니라 수업에 제출할 과제들을 준비했지만, 햇볕 좋은 창가에 앉아서 커피 한잔과 하는 그 시간적 여유로움과 공간의 자유로움은 나를 황홀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미국 대학교 첫 아르바이트: 쓰기 센터
두 번째 학기 시작과 동시에 나는 그 도서관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나의 아지트인 도서관 2층에는 쓰기 센터가 있었다. 그 쓰기 센터에서 쓰기 코치 아르바이트생들 중에는 외국인 유학생들도 참 많았다. 심지어 유학 온 공대생들도 라이터(Writer: 교정 봐주는 아르바이트생)로 일하고 있었다. 그곳에 쓰기 교정 서비스를 찾는 학생들은 비단 외국 유학생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절반은 현지 미국인 대학생들이었다.
지도 교수님은 내가 한국에서 영어 교사를 했으니, 쓰기 센터에서 라이터로 학생들의 원고를 봐주는 일을 하기를 권했고, 그 자리에 나를 추천해줬다. 하지만, 현지에 도착한 지 몇 개월간은 영어 원어민이 대부분인 미국에서 영어 자신감을 갖기는 참 힘들었다. 나는 나의 영어수준이 남의 글을 고쳐줄 만큼 우수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프런트 데스크스케줄 관리자 (Front Desk Representative: 신청학생의 스케줄 관리 및 전반적 운영 관리) 일을 하면서 현지 젊은 학생들과 소통할 기회가 많을 거 같았다. 그래서 남의 글을 교정해주는 대신, 스케줄 관리 일을 시작했다.
❚쓰기 센터의 미션: 그곳은 외국 유학생들을 위한 곳이 아니다.
매주 수요일 아침 그 쓰기 센터의 미팅에는 모든 라이터뿐 아니라 나와 같은 스케줄 관리자들도 참가하도록 되어 있었다. 그 회의를 통해 나는 글쓰기 교정 작업에 대한 그들의 생각과 운영 방향을 알 수 있게 되었다. 그 회의는 나에게 아주 흥미로운 자리였다. 평생 영어 학습자인 나로서는 그 알량한 영어 하나만 잘 하면 왠지 영어로 작문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일 것 같았다. 그런데, 영어가 모국어인 그들에게도 영어로 글을 쓰는 것이 그토록 힘이 드는 일인가? 그 글쓰기 센터의 미팅은 주로 좋은 글을 쓰는 능력을 길러주려면 어떻게 해줘야 할지에 대한 아이디어 공유가 주목적이었다. 영어로 글을 잘 쓴다는 건 비단 영어를 원어민처럼 말할 수 있는 것과는 다른 스킬이다. 학생들의 글에 대한 코칭은 단순 번역을 넘어서서 글의 구조와 짜임새 그리고 글의 전반적 흐름을 잘 잡아 주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늘 입을 모았다.
글을 교정본다는 것은 글의 줄별 표현의 정확성만을 보는 게 아니다. 그건 사실 빅데이터의 힘을 빌려 쉽게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Grammarly 라는 앱은 문장의 문법적 오류를 아주 아주 간단하게 잡아준다. 진정으로 교정을 보려면 글의 전반적 구조와 흐름을 볼 줄 알아야 한다. 결국 영어 원어민이면 영어 글을 잘 쓴다는 나의 선입견이나, 영어 원어민이어야 남이 쓴 영어 글을 교정볼 자격이 된다는 나의 생각은 정확히 잘못된 거였다. 그걸 나중에 깨닫고 좀 더 시급이 높은 Writer로 지원할 껄 하며 살짝 후회가 되긴 했다.
❚영어 원어민들은 영어로 글을 잘 쓸까?
영어로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영어 원어민이든 영어 학습자이든 누구에게도 쉽게 여겨지는 스킬이 아니다. 미국의 교육대학원 수업은 대체로, 요약하기, 발표하기, 온라인 그룹 토론방 참여하기, 그룹프로젝트 수행하기, 온라인 시험, 개인 과제 제출로 구성되어 있다. 이 모든 것은 하나의 스킬을 공통적으로 요구한다. 바로 생각을 글이나 영상 매체로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능력이다. 그래서 미국 대학교는 쓰기 능력을 아주 중요시하고 대학교 도서관에 쓰기 센터를 따로 운영하는 것이다. 그건 외국 유학생들의 단순 언어적 기능을 위한 게 아니다. 현지 학생들이든 유학생이든, 효과적 글쓰기 힘을 기르는 데 주 목적이 있었다.
❚미국 대학원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No. 1 Skill
석사 과정 두 번째 학기에 수강한 과목 중에는 교육심리학이 있었다. 그 교수님은 ‘요약하기’를 세상 중요하게 생각하셨다. 숙제는 매 챕터를 한 쪽 분량으로 요약해오는 것이 과제였다. 매 챕터를 그렇게 읽고 압축해서 요약 글을 썼다. 그리고 수업 중에 그걸 근거로 토론을 했다. 그런 수업은 그 이후 박사과정에서도 계속 진행되었다. 읽고 쓰고 발표하고 토론하고 기록하고 이런 일련의 훈련은 4년 반 동안 끊임이 없었다. 마지막 박사 논문까지 생각하면 그간 영어 작문의 양은 어마어마하다. 한국에서 나름 모범생으로 공부한 사람이고, 영어 교사였지만, 정작 나는 영어로 글을 쓰는 시험이나 과제를 별로 해본 적이 없었다. 미국으로 유학 오기 전 까지 나의 진로에서 영어로 작문하는 능력이 거의 요구 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영어로 작문을 하는 것은 언제나 두려운 과제였다.
❚영어 원어민이 아닌 영어 학습자의 한계 해결
나는 계속 쓰고 또 쓰고 했다. 단순 문법은 Grammarly 앱을 통해 도움을 받았다. 그리고 약간의 연회비를 내고 Grammarly 프리미엄회원으로 가입했다. 프리미엄 회원에게는 단순 문법을 넘어서 좀 더 나은 영어 표현까지도 도움을 얻을 수 있기에 그 앱을 많이 활용했다. 그리고 언제나 온라인 영영사전과 온라인 Corpus (영어 예문 리스트), 동의어 사전(thesaurus.com)은 즐겨찾기로 해두었다. 원어민이 아닌 영어 학습자로서 최대한 온라인의 도움 사이트를 최대한 활용해서 원어민의 영어 문장에 대한 직관을 보충했다.
❚글쓰기의 기본이 되는 습관: 먼저 지도를 그리기
그런 과제를 계속해 가면서 확실히 자리 잡은 영어 글쓰기에 관한 습관이 하나 있다. 바로 첫 단락 첫줄을 쓰기 전에 글의 흐름과 글의 구성을 먼저 곰곰이 고민하는 습관이다. 쓰기의 성패는 우리의 생각을 정리하고 잘 짜임새를 구성하는 일에 달려있다. 이는 마치 낯선 곳을 가기 전에 우리가 구글 맵이든 카카오 맵이든 지도로 먼저 가는 경로를 파악하고 길을 나서야 하는 것과 같다. 우리가 이전에 가보지 않은 유명한 음식점에 간다고 생각해보자. 누구도 그 식당 위치를 지도로 검색도 안 해보고 대뜸 아무 버스나 타고 일단 출발부터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길을 나서기 전에 우리는 출발지와 도착지를 선택한다. 그리고 그 중간 가는 길을 확인하다. 그런 후 길을 나선다. 그래야 우리는 헤매지 않고 도착지에 정확히 갈 수 있다. 글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나의 출발지(Topic)에서 나의 도착지(전하고자 하는 Message) 사이의 전개 과정(도착지에 가는 방법)을 먼저 그려놓고 글을 써내려가야 한다. 정말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우리는 영어로 작문할 때, 이 일들이 절대적으로 중요함을 자주 간과한다. 그저 우리말의 단어들이 영어로 무엇인지 하는 질문과 문장의 문법적 오류에 지나치게 에너지를 편중시킨다.
❚ 우리나라 영어 교육에 대한 희망 사항
우리나라 영어 교육을 성실히 받은 사람일수록 위와 같은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우리의 학창 시절을 떠올려 보자.
1). 다음 문장 중 문법적으로 틀린 문장의 갯수는?
2). 위 글의 내용을 생각하면서 아래 주어진 질문에 영어로 답 하시오.
두 개 중 어느 질문에 우리는 익숙해져 있을까? 아직까지도 1번 문제가 전국 모든 중 고등학교 영어 정기 고사에는 등장한다. 동료 교사의 교육 철학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나 또한 그런 시험의 출제위원으로 이름이 올라간다. 그럴 때마다 나는 참 마음이 무거워 진다. 객관성의 미명아래 엉뚱한 기능을 측정하는 우리의 영어 시험은 언제 측정해야할 기능을 제대로 측정하는 그런 타당한 평가를 할 수 있게 될지 염려스럽긴 하다.
우린 언제 1)번 과 같은 문제가 학교 영어 시험에서 사라질까?
우린 언제 2)번 과 같은 문제로만 이뤄진 학교 지필 시험을 칠 수 있을까?
한국의 영어 교육도 언제 그런 생각의 표현이 중요시 되는 날이 올지, 참으로 요원해 보인다. 그런 날이 올 수는 있을까?
미국 유학을 하면서 비로소 관심을 가지게 된 영어 글쓰기는 나의 영어 공부 및 영어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꾸었다. 영어든 우리 말로든 생각을 글이나 영상 매체로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힘은 이제 어느 시대보다 중요해지기 시작한 듯하다. 나를 포함한 브런치 앱의 수 많은 작가들 이미 그 사실을 깨닫고 그 기술을 연마 중이다. 우리의 영어 교육도 그런 시대의 흐름에 맞게 영어 학습자들을 교육시킬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