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보통사람 Sep 03. 2024

공무원은 성과 내기가 싫다

성과를 내면, 그것대로 문제가 되거든요

신임 공무원을 제외하고, 몇 년 정도 공직에서 굴러온 적정 연차의 공무원은 대게 성과를 내는 것을 경계한다. 왜 그럴까?


어떤 지자체의 신생 유튜브를 담당하는 공무원 A가 있다고 하자, 이 공무원에게 있어 ‘우수한 성과’는 무엇을 의미할까?


가. 1년간, 유튜브 구독자 수 0명 -> 15만 명


나. 1년간, 유튜브 구독자 수 0명 -> 150명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 선택지를 고를 것이다. 그리고 우수한 성과도 맞다. 구독자 수가 10만 명을 달성하게 된다면 지자체 홍보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다음이다. 공무원 A는 올해도,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유튜브를 담당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만약, 공무원 A가 매일 야근하고, 죽어라 노력하여 ‘가‘ 선택지와 같은 성과를 내게 된다고 하자. 처음에는 기분도 좋고 뿌듯할지는 몰라도, 그다음부터 여러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먼저, 상급자는 내년에는 더 많은 구독자 수를 늘리기를 기대하고, 요구할 것이다. 구독자를 0명에서 10만 명으로 만든 것을 당연하게 생각한다. 주변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공무원 조직은 늘 일 잘하는 개인에게, 업무에 과부하가 올 때까지 일을 준다. 그리고 과부하가 와서, 결국 못하겠다고 하면 “초심을 잃었다”며 가스라이팅한다.


그리고 그렇게 성과를 냈다 하더라도, 돌아오는 물질적 보상은 없다. 구독자를 150명을 늘리던, 150,000명을 늘리던 받는 돈은 똑같다.


https://brunch.co.kr/@8175b7bc63fe4a5/71


승진에서 이득을 볼 수 있지 않냐고? 천만의 말씀, 공무원 조직에서 승진이 되는 자리는 따로 정해져 있다. 본인이 그 자리에 앉아있지 않는 이상은 승진은 어렵다.


결국, 공무원 A는 실적에 대한 기준치만 엄청나게 높여놓은 꼴이 된다. 돌아오는 보상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그것마저도 없다. 내년에도 아무 보상 없이 올해와 같이 굴러야 한다는 것은 덤이다. 스스로를 사지로 몰아넣은 꼴이다.


그래서 보통, 고연차의 공무원들은 의도적으로 실적을 조절한다. 올해 구독자를 100면을 늘렸으면, 내년엔 200을 늘리고, 그다음 해는 300을 늘리는 식이다.


이런 방식으로 실적을 낸다면, 상사는 점점 더 발전하는 실적에 만족할 것이고, 개인의 워라밸 또한 챙길 수 있다. 초심을 잃었냐는 둥, 왜 이리 실적이 부진해졌냐는 둥의 소리도 들을 필요가 없다.


죽어라 일해서 기준치를 높여놓아 봤자, 돌아오는 것은 없다. 그래서 열심히 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고연차의 공무원들은 너무도 잘 안다.


https://brunch.co.kr/magazine/yuldiary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