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오버 더 레인보우
Somewhere over the rainbow way up high……
There’s a land that I heard of once in a lullaby……
숙면을 하고 일어난 아침 귓 가에서 노래가 들려오는 듯 했다.
무지개 넘어 어딘가 높이
꿈결에 들은 곳이 있어
‘꿈결에 들은 곳, 꿈결에 들은 곳……’
꿈결 같은 삶의 시간 속에서 분명 희미하게 들은 어떤 곳이 있는 것 같았다.
‘어디로 갈까?’
‘무엇을 할까?’
‘무엇으로 남은 시간을 채울까?’
교보 문고로 달려가 각 층 서고를 뒤적거리며 읽지 않을 책을 몇 권 집어 들까 하다가 지하 핫트랙스로 내려 갔다. 딱히 살 것이 있는 것도 아니요, 어지럽게 널린 알록달록한 학용품들이 머리를 더 어지럽게 했지만, 돌아 다니면 한번도 써보지 않은 최신 만년필 하나는 건질 수 있을 것 같아 한 코너도 빠뜨리지 않고 구석구석 물건을 살폈다. 한 해의 허리춤이 꺾인 지는 이미 오래 지나 날씨는 이제 찬 기운을 내어주고 있었지만, 아직 하나도 시작되지 못한 내 시간의 이정표들은 남은 시간이라도 다시 재정비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책상 모서리에 매일의 주식 시황을 적어 놓은 하얀색 다이어리가 생각이 났다. 칸을 나누어 뭔가를 적으면 될 터였지만, 전혀 색이 다른 두 개의 동떨어진 개체를 하나로 묶어 뒤죽박죽하고 싶지 않았다.
‘해가 저물어 가는 가을에 다이어리라니……’
내년을 기약하기 위함이 아니었고, 오늘이 출발이 되어 내 시간을 다시 당겨줄 작은 방아쇠가 필요했다. 월마다 시간마다 구분된 빡빡한 스케줄러는 펴자마자 나를 더 숨막히게 했다. 이제 더는 빡빡한 스케줄러 인생을 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흰 종이만 엮인 도화지 같은 다이어리는 마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라고 말하는 듯 하여 내 부족한 상상력을 떠올리며 겉표지를 덮었다. 무언가를 정확히 찾는다는 목적성도 없이 무언가가 내 눈에 띄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샘플 다이어리의 속지를 열고 덮고를 반복하기를 몇 차례, 북유럽 디자이너의 벽면을 채울 듯한 단조로운 꽃 그림 하나가 눈에 들어 왔다. 누드 톤과 네이비에 가까운 블루가 어우러진 감 좋은 표지가 나를 고르라고 부르는 듯 했다. 맘에 들면 살 요량으로 겉면 비닐을 살짝 뜯어 속지를 열어 보았다.
년 월 일을 쓰는 곳으로 보이는 사 선 세 칸
번호도 이름도 없는 빈 줄 세 칸
그리고 공백
내가 너의 시간을 이끌 테니 너의 작은 아이디어를 이 곳에 채워 보라고 말을 거는 것 같았다. 망설임 없이 골라 값을 지불하고 소지품만 들어가는 작은 핸드백에 넣었다. 이제는 채우면 될 일이다.
청소기를 돌리다 산책을 하다 심지어 운전을 하다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으면 적었다. 하나 둘 셋을 넘기지 않게 매일의 아이디어들을 적어 나갔다. 하루 이틀 사흘 나흘이 지나자 아이디어들이 하나의 선이 되어 연결되어 가고 있었다. 뼈대가 만들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뼈대의 골자들은 ‘모두 나 혼자 하는 일’로 귀결됐다. 혼자 하는 일이 다시 가지를 내어 ‘하나 둘 셋’ 세 개의 프로젝트로 변신을 했다. 조각난 생각들이 트랜스포머가 되어 뼈대를 세우고 허물기를 반복했다. 몸이 하나라 한 꺼 번에 다 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예전의 에너지 넘치는 나도 아니었기에 몸을 살살 달래가며 조금씩 시작해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썼다. 최근 사람 만나는 일이 시큰둥해지며 삶에 대한 감정들이 복잡했음에도 적당히 풀어낼 출구가 없었는데, 이것을 출구 삼아 나를 시험해 보고 싶었다. 작품이 되면 좋겠지만, 시작이 굳이 완성일 필요는 없으니 기획한 대로 끝까지 쓸 수 있는지만 우선 테스트하면 되었다.
그리고는 교안을 폈다. 콘텐츠가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흔하고 개성이 없어 차별화를 지향하는 내 동기와 맞지 않아 저 멀리 밀쳐 두었던 오랜 나의 파트너인 영어를 다시 끄집어 내어, 이 아이들에 생명력을 불어 넣어 살아 숨쉬게 해주자고 다짐을 했다.
저녁이 되어 남편이 돌아 왔을 때,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나는 남편에게 허락을 구하며 물어 보았다. 제주도에서 가끔 내려가 내가 좀 살아도 되겠는지... 이유는 설명 해주어야 할 듯싶어 지친 내 인생에 얼마간의 변곡점을 갖고 싶다고 말했다(남편도 생이 자신을 흔들어 서있기가 힘들 때에는 가끔 나와 떨어져 제주도에서 며칠의 시간을 보내고 오기도 한다). 남편은 구체적인 사항들을 알아 보았는지 물으며 돈과 시간의 낭비가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지만, 원하면 왔다 갔다 하는 조건으로 몇 개월은 허용해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 대답이면 충분했다.
뭉근한 시간을 보내며 닫힌 문들을 탐험하고 이제는 열어 보고 싶은 문을 몇 개 찾았다. 그 문들을 열었을 때 그곳이 초원일 수도 있고 놀이 동산일 수도 있고 또 예상과 다른 황무지일 수도 있지만, 나는 이제 내 안의 있는 열쇠를 꺼내 용기를 내어 힘껏 꽂아 보려 한다. 그 문이 열리는 문일 지 닫히는 문일 지 알 수는 없지만, 그 문이 열리는 문이 아니더라도 다시 새로운 문을 찾으면 될 일 아닌가. 누군가는 이미 포장이 된 도로 위에서 달리던 길을 쉬이 달리면 될 것을 뭐하러 다시 내려 숲길로는 탐험을 하냐고 묻기도 하겠지만, 같은 장면 같은 노래 같은 시간을 견디지 못하고 한 시라도 새로운 숨을 쉬지 못하면 시들어 가는 것이 내 운명인 것을 어찌하랴.
중년의 출발은 그렇게 더뎠다. 자연의 섭리에 맡겨진 내 몸과 싸워야 했고 내 시들은 젊음에 합당한 이유를 붙여 주어야 했으며 내 뒤늦은 도전에도 용기를 주어야 했다. 그리고 뒤는 알 지 못하는 법이다. 시간이 나를 어디로 이끌지 오늘도 나는 알 지 못한다. 시간이 나의 계획을 순순히 따라와 줄 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나는 오늘을 숨 쉬며 살아야 하고 우주에 살아 숨쉬는 생명의 일부로써 내 존재의 목적성을 나는 믿는 수 밖에 없다.
삶은 때때로 또 다른 순진한 얼굴을 하고 내 앞에 와 내 뼈와 내 심장과 내가 선 땅을 흔들겠지만, 굽은 세월을 지난 나의 뿌리는 전보다 견고해졌다. 중력은 나를 삼켜 나는 매일 더 쇠하여질 테지만, 반생을 통해 이제는 더 단단한 근육을 얻었으니 이걸로 충분하다.
초가을을 시샘하듯 겨우 자리를 비킨 여름은 헤어지지 못하는 연인처럼 오랜 비를 선물해 주었다. 기지개를 켜고 시원한 바람을 쐬려 창문을 열었을 때 맘 속에 드리운 희미한 무지개를 본다.
‘너와의 약속을 잊지 않겠노라, 너와의 약속을 지키겠노라’ 무지개를 증표 삼은 신의 약속처럼 보일 듯 말 듯 희미하게 드리운 내 마음의 무지개를 보며 오늘도 나는 꿈을 꾼다. 무지개 넘어 어느 높은 곳에 나의 희망이 있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