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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몸의 반란

by 인디라이터 호

마흔 하고 딱 절반의 숫자가 내 이름 옆에 새겨졌다. 마음이 아무리 젊어도 자연의 법칙이 정해주는 나의 마지막 젊음은 끝이 난 것 같았다. 어색하지 않은 이름으로 내가 ‘중년’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거울 속 얼굴은 생기를 잃어갔다. 마음의 생기는 이미 시든 터였다. 손가락 사이로 다 빠져 나가 버린 내 찬란한 젊음의 시간이 아쉽고 그리워 밤마다 침상을 적시며 울었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기분이었다. 늙는다는 것이 이제는 결코 남의 일이 아님을 자각할 수 있었다. 한번도 내 것이라 느낀 적 없었던 새로운 단어가 내 삶 가운데로 불쑥 들어와 있었다. 바로 ‘노화’였다.


당황한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해 이리저리 흔들렸다. 지나간 젊음의 모든 시절이 그리웠다. 그리고 그런 시간이 결코 지속되지 않는다고 아무도 말해주지 않아 섭섭했다. 텔레비전을 틀면 여전히 반짝이는 불멸의 여배우의 자태와 오늘날 마흔은 예전 서른과 같다는 말도 되지 않는 장사치들의 희망찬 문구에 실컷 놀아난 기분이었다. 주위를 둘러 보았다. 나를 비롯한 내 친구들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하나 둘씩 몸이 고장난 친구들이 많았다. 이른 갱년기로 식은 땀이 나는 친구, 건강 식품을 밥 반찬보다 더 많이 챙겨 먹는 친구, 머리가 흔들려 커피를 끊은 친구, 생존을 위해 PT를 받는 친구 등 아무도 스스로 젊다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없었다. 세상을 향한 배신감에 치가 떨려 왔다. 세상의 소리에 귀 기울이느라 아무 것도 제대로 챙기지 못한 나 자신에게 더 화가 났다. 긴 시간 노력해왔던 길에서 아무런 성과가 없다는 사실은 내 몸과 마음을 더 쇠하게 했다. 파스타며 샐러드 같은 주말 외식 메뉴는 잃어버린 원기를 되찾아 주기에는 턱 없이 부족해 닭백숙이나 장어 구이를 먹는 날이 더 많아졌다. 조금만 걸어 다녀도 쉽사리 피곤해졌다. 하루에 서너 가지 볼 일을 한 두 가지 밖에 소화할 수 없어 집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선택과 집중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선택 당하는 것 같았다.


코로나 확산세가 심상치 않아 삶이 더 무거워지던 지난 해 봄, 여느 때처럼 안방 보일러 온도를 맞추고 침대에 누웠다. 자는 순간 꿈이었는지 생시였는지 모르게 숨이 막혀 왔다. 호흡이 내 마음처럼 내쉬어지지 않자 잠결에서 ‘이렇게 죽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답답하고 두렵다는 생각을 하며 가까스로 잠에서 깨었다. 당황한 마음이 쉽사리 가라 앉지 않았다. 살려 달라는 기도를 했던 것 같다. 평소보다 길게 깊은 숨을 내쉬고 들이쉬기를 한참 반복했다. 난생 처음 하는 끔찍한 경험이었다. 몸을 일으켜 거실로 가 창문을 다 열어 젖히고는 차디찬 밤공기를 들이 마셨다.


‘도대체 뭐지?’


코 속으로 들어오는 밤바람이 어지러운 뇌 속을 틔워 주는 듯 했다. 그렇게 아침이 밝고 하루가 저물어 지난 밤의 공포를 가슴 한 켠에 접어둔 채 잠을 청했다. 새벽 한 시나 되어야 자던 잠을 열 한시 가량으로 당긴 건 벌써 지난 가을의 일이었다. 몸이 그 시간까지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 잠이 들고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게 호흡이 가빠지며 심장이 조여 왔다. 어제 밤의 공포가 다시 엄습해 왔다. 내 인생의 마지막은 정녕 이런 모습이란 말인가? 숨이 막혀 깨버린 잠을 뒤로 하고 욕실로 가 차가운 물로 연거푸 얼굴을 적셨다. 수돗물 속 산소가 코 속을 뚫고 심장으로 전해지는 듯 했다. 그리고는 생각이 들었다.


‘몸에 문제가 생겼구나……’


다시 일어나 꽉 닫힌 침실 창문을 바람이 들어오도록 조금 열어 두었다. 거실 옆 벽장에 처박힌 가습기를 헹궈 물을 담고 수증기를 방 안에 채운 채 다시 잠을 청했다. 그 후로도 간혹 드물게 그런 밤은 조금 더 이어졌다.

아침을 먹고 꽁꽁 언 매서운 겨울 바람을 가르며 산책에 나섰다. 심폐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듯싶었기 때문이다. 이대로 병 들거나 죽고 싶지는 않았다. 꿈을 이루지 못한 억울함이 채 가시기도 전 코로나를 맞았고 이번에는 몸마저 무너져 왔다. 억울함이란 단어조차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다. 아침 산책을 하며 마시던 커피는 머리를 더 어지럽게 했다. 수십 년 간 마셔오던 내 분신과도 같은 카푸치노를 단호히 끊어야 했다. 몸의 주요한 부위가 떨어져 나가는 듯 했다. 진정되지 않는 마음을 추스르고 검진 차 아버지를 모시고 간 병원에 나도 검사 의뢰를 했다.


먼저 폐 기능 검사를 했다. 약간의 폐쇄성 폐 질환의 기저가 있지만 다행히 지금은 정상 범위라고 했다. 그래도 불안은 가시지 않았다. 연이어 심장 검사를 하고 일주일 간 결과를 기다렸다. 심장 또한 이상이 없었다. 원인을 찾아 뿌리를 뽑고 싶었다. 동네 새로 생긴 준 종합 병원에 들러 전기 코드 같은 초음파 줄을 코 속으로 집어 넣고 끔찍한 순간을 참아 내며 이비인후과 검사를 했다. 또 이상이 없다고 했다. 답답한 마음이었다. 인터넷을 열심히 뒤지고 증상을 토대로 얼마 간의 생각의 시간을 거친 결과 이것이 몸의 기능이 차츰 떨어지고 있는 중년의 노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더 이상 이대로 두었다가는 마치 더 큰 경고음을 울릴 거라는 강력한 시그널을 주는 듯 했다. 겨울이 덜 가신 매서운 바람이 조금씩 잦아 들어 훈풍이 될 무렵까지도 폐와 심장이 더 온전해지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나의 산책은 계속 되었다.


주영 언니가 이사를 온 것은 1년 전이었다. 주요 학군지에 살고 있던 나는 이 동네에 살고 있는 언니를 만나러 왔었고 팔공산 주변 자연의 매력과 아담하고 호사스럽지 않은 동네 분위기에 반해 있던 집을 전세로 주고 남편과 함께 이사를 했다. 내가 이사 온 후 언니는 경찰 공무원인 남편의 새로운 근무지를 따라 안동으로 떠났고 근무 기한이 다 차자 아이들의 학업을 위해 내가 살고 있는, 아니 언니가 원래 살던 이 곳으로 다시 이사를 왔다. 모처럼 언니를 만나 반가운 마음에 집 근처 식당에서 비빔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언니의 지난 생일에 우리가 무얼 했는지를 두고 대화가 이어졌다. 머리가 새까매진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머리 속이 비어버린 것처럼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기억이 도통 나지가 않았다. 잠시 밥 숟가락을 놓은 언니가 곰곰히 생각하더니 들안길에 있는 유명한 해물탕 집에서 내가 맛있는 해물찜을 사주었다고 했다. 그제서야 생각이 나긴 했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고 보니 호흡이 조금씩 가빠지기 시작할 무렵부터 머리가 조금씩 어지러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는 집에 와 어제 무얼 했는지 떠올려 보았다. 바로 전 날의 일인데도 뭔가가 명확하게 떠오르지가 않았다. 그제의 일도, 그리고 일주일 전에도 무엇을 했는지도 기억해보려 애를 썼다. 간신히 몇 가지가 기억이 나긴 했지만, 뭔가 점점 흐릿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 다른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그리고는 노트북을 켜 미친 듯이 하루 일을 메모하고 잊지 않겠노라 다짐하며 하루의 날들을 마감해 나갔다. 일은 며칠 후에 벌어졌다.


머리 속이 멍한 느낌이 계속되었다. 이것이 노화임을 인정하면서도 이렇게 갑작스레 절벽처럼 늙어버린 나 자신을 쉽게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하루를 거르지 않고 하던 산책은 변덕스런 겨울 날씨가 계속되자 내 의지를 꺾어 버려 동네 일일 헬스를 등록해서 다닌 지 일주일쯤 되던 날이었다. 코로나가 전 세계적으로 많은 감염자와 사망자를 낳던 시기였음에도 내 건강 상태가 두려워 매일은 가지 못하고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사람이 없는 시간대를 틈타 일일권으로 등록을 하고 가벼운 운동을 이어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운동화를 갈아 신느라 탈의실 입구에 벗어 놓았던 신발이 운동이 끝나 돌아와 보니 사라져 버린 것이었다. 온 탈의실을 다 뒤지고 화장실과 계단까지 훑어 보았지만 내가 신고 온 신발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 생각을 하면 안되었었는데) 누군가가 내 신발을 탐내 가져 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카운터를 보던 여자 관장님에게 씨씨 티비를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다. 적지 않은 나이에도 탄탄한 몸이 돋보였던 헬스 클럽의 여자 관장님은 지금까지 이런 일이 일어난 적이 없노라며 벗어 둔 곳이 정확히 탈의실이 맞는지, 구석구석 잘 찾아 보았는지 묻고 또 되물었다. 그날이 지나고 월 회원권을 끊으려던 참이라 고이 벗어 둔 신발을 누가 가져갔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너무 기분 나쁘고 어이가 없었다. 화가 났지만 꼭 씨씨 티비를 확인해서 알아봐 주십사 부탁을 하고 집으로 돌아온 지 채 삼십 분이 채 지나지 않아 헬스 클럽에서 전화가 왔다. 운동화를 찾았다는 것이다. 도대체 어디서 발견하셨나고 되물은 나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여자 탈의실 가기 전 입구에 있는 남자 탈의실에 벗어 놓았다는 것이다. 신발만 갈아 신고 트레이닝 복을 입고 온 터라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았는데, 엉뚱한 곳에다 신발을 벗어 놓고는 생사람을 잡을 뻔 한 것이다. 정말로 쥐구멍에 숨고 싶었다. 다시 충격이 밀려 왔다. 기억력에 문제가 생긴 게 틀림 없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수건을 꺼내려던 욕실 수납장에서 사용 후 결코 넣어둔 적이 없는 (내 기억 어디에도 자리하지 않은) 손톱깎기가 발견되었다. 손톱깎기는 단 한번도 욕실에 있은 적이 없는 부엌 위 약통 옆이 제 자리였고, 거실과도 가까워 그곳 외의 장소에서는 단 한번도 발견된 적이 없었다. 놀란 가슴이 진정이 되지 않았다. 그것 또한 또 하나의 신호였다.


저녁 장을 보러 집 앞 마트를 지나 가끔 들르던 시장을 가는 길에 그 도로 앞 뒤 옆 길을 머리 속으로 그려 보았다. 원래 알고 있는 길이었는데, 그리고 또 그려 보아도 어는 지점에서 길이 계속 이어지지 않고 미끄러졌다.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충격이 공포와 함께 다가 왔다. 길 옆에 가만히 차를 세우고 쉬운 숫자 몇 개를 꺼내 암산을 해보았다. 끝자리가 10을 넘지 않는 두 자리 수 덧셈이었는데, 숫자가 머리 속에서 계속 미끄러지며 답을 구하는데 한참이 걸렸다. 그 즈음부터였다. 동네 앞 단산지를 걷는 숲길이 어지럽게 느껴졌다. 마치 좌우 다른 시력의 안경을 낀 것처럼 말이다. 차를 대고 들어와 충격을 진정 시키려 한참을 소파에 누웠다가 습관처럼 텔레비전을 켰다. 화면을 보는 눈이 아려 채 5분을 볼 수가 없었다. 핸드폰을 사용할 때는 더했다. 눈 알이 속부터 뱅글거리는 느낌이 들어 화면모드를 켜고 조도를 모두 낮췄다. 5분 아니 1분도 계속해서 볼 수 가 없었다. 왈칵 눈물이 났다. 심장을 주여 오던 밤공기도 모자라 머리 속이(정확히는 뇌 속이) 꾸덕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누워서 한참을 울었다. 살려달라는 외침이 절로 나왔고 어떻게 해야 할 지 몰라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기도를 부탁했다.


날이 밝고 주일이 되었다. 간신히 세례를 끝낸 남편과 아침밥을 먹고 식탁에 앉아 온라인으로 설교 말씀을 듣는 중 정보 스모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현대인들이 너무나 많은 불필요한 정보에 시달리며 살아가고 있다는 거였다. 무릎을 쳤다. 코로나가 시작되며 하루 종일 집에 틀어 박혀 짧은 목을 거북이처럼 빼고 끝도 없이 눈 앞에 화면을 대고 핸드폰에서 쏟아져 나오는 정보를 되는 대로 다 쓸어 담고 있었던 것이다. 전 세계 주식 시장이 미친 듯 날뛰며 너도 나도 들어오라 우리를 불러댈 때 지루한 시간을 다른 기쁨으로 채우려는 나의 욕망도 그 시간을 뿌리칠 수 없었다. 그 뿐 아니었다. 약간의 여유가 생기면 울적한 마음을 달래려 쉴새 없이 쇼핑몰 사이트를 들락 거리며 내가 찜한 물건들을 쇼핑백에 넣었다 뺐다 하기를 반복했다. 어디 그 뿐인가? SNS로 쏟아지는 수많은 정보와 광고들을 매 시간 머리 속에 집어 넣으며 머리 속을 쓰레기 하치장으로 만든 것이다. 쓸모 없는 정보들이 독소가 되어 내 머리 속 세포들을 공격하고 필요한 정보와 불필요한 정보를 구분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비정상 경고음을 울리며 위험 신호를 보내던 뇌 기능은 일상에 필요한 각종 정보들을 삭제하거나 머리 뒤 켠으로 치워 버리고 그 자리에 불필요한 쓰레기들을 가득 채워 내 머리 속에서 독소들을 생성해 내고 있었다. 당장 의사를 만나야 했다. 그리고 MRI를 찍고 현재 상태를 들여다 봐야 했다.


병원 예약이 있던 날 새벽, 잠든 몸을 뒤척이며 돌아 눕는데, 머리 전체가 흔들려 왔다. 정신을 차리고 몸을 바꿔 다시 누우니 방 안 전체가 뱅글거리며 물건의 위치가 이리저리 흩어졌다. 이석증이 도진 것이다. 엎친 데 덮치고 덮친 데 다시 엎치는 말도 안 되는 밤이었다. 남편을 깨워 내일 아침 병원에 동행에 줄 것을 부탁하고 속까지 뒤흔드는 어지러운 울림을 다시는 겪지 않으려 한 자세로 가만히 누워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동네 새로 생긴 준종합 병원 신경과 의사 선생님은 차분하고 젊은 여자 분이었다. 증상을 설명하고 환자용 간이 침대에 누워 간단한 문진 후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보는 진찰이 이어졌고 예상대로 이석증 재발이라는 진단이 내려졌다. 귀 속 전정 기관의 이상으로 작은 돌이 빠져 나와 뇌의 균형 감각에 이상이 생긴 거라고 했다. 분명했다. 뇌에 이상이 생긴 게 확실했다. 최근 내가 겪은 일련의 일들과 추가 증상들도 의사에게 이야기했다. 아무래도 MRI와 MRA 검사를 같이 해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서둘러 검사실을 예약하고는 눈을 뜨면 숨이 막힐 큰 굉음이 너무도 공포스럽던 기계에 들어가 30분간의 검사를 마쳤다. 근처 죽 집에서 점심을 먹고 결과를 들으러 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남편은 출근을 하고 없었다. 검사 결과 상으로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약간의 뇌동맥류 기저가 있지만 현재는 육안으로 보이는 이상은 없다고 했다. 그 때 나는 의술의 한계를 느꼈다. 왜냐하면 나에겐 분명 여러 증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를 마음을 추스르고 집으로 돌아왔다.


마치 도미노 게임 같았다. 아침 시간대 많은 정보 프로그램들이 중년의 여러 가지 건강 관리에 대해 끊임 없는 정보를 노출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설령 나의 일이 되리라고는 한번도 생각하지 못한 터였다. 앞만 보고 달리느라 무지한 인생을 살아 온 내 자신이 미워 견딜 수가 없었다. 텔레비전을 틀면 모두가 동안에 대해 예찬하고 아름다운 바디 라인으로 젊음을 유지한 이들을 향한 찬양 일색이 마치 그저 그런 제품에 대한 과대 포장 같이 느껴졌다. 무엇을 따라가며 무엇을 좇으며 산 것인가? 매일 실수하지 않겠노라 다짐하고 달려온 세월이지만 그 사이 놓쳐 버린 많은 것에 서러움이 치솟았다. 방법은 없었다. 건강을 내 삶의 목록 가운데 두지 않은 나의 불찰을 탓할 수 밖에.


그 후 삶의 우선 순위를 수정해 갔다. 양념 뒤범벅인 간편한 배달 음식을 시켜 먹으며 어디로 가는지도 모를 내 삶을 향한 무모한 질주는 잠시 멈추어야 했다. 아니 조절해야만 했다. ‘나를 챙김’이 우선 순위가 되었고 질주보다는 생존이 더 우선하는 가치로 다가왔다. 버리고 내리는 시간들이 계속되었다. 쓸 데 없던 나의 습관들이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쓰레기통으로 버려졌다. 숨 가쁜 호흡 대신 긴 호흡을 연습했다. 어릴 적 가까이서 텔레비전을 보지 말라던 엄마의 잔소리를 떠올리며 불필요한 시간을 끝도 없는 자질구레한 정보로 채우던 내 머리도 조금씩 비워갔다. 할 줄 아는 요리가 몇 가지 되지 않는 것도 중년에 어울리지 않는 큰 부끄러움으로 느껴졌다. 부지런히 요리책을 사 집 밥을 하고, 머리 속 먹먹한 모세혈관과 흔들리는 관절을 위한 보조 제품들이 식탁 위 한 켠을 가득 메웠다. 숨을 돌리기가 무섭게 들려온 몸의 위험 신호 때문이었다. 노화를 실감했다. 이제는 콜라겐이 조금 덜 빠진 간신히 올라 붙은 얼굴 껍데기로 승부할 수 없는 중년의 친구를 받아 들이기로 했다. 받아 들일 수 밖에 없었다.


아파트 앞으로 친구를 불러 술을 마셨다. 당황한 마음을 나눌 누군가가 필요했다. 몸에는 썩 좋지 않을 치킨과 맥주를 시켜놓고 영혼을 치유하기 위해 식당 바깥 모서리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주인이 문을 닫아야 할 시간이라고 말하기 직전까지 술을 마셨다. 치킨과 맥주가 뒤섞여 더부룩한 속과는 달리 밤바람이 알싸했다. 누구나 겪는 나이 듦의 서글픔을 이제 정면으로 마주하리라 마음 먹었다. 많은 얼굴들이 떠올랐다. IMF를 거쳐 모진 세월을 감당해 낸 부모님의 얼굴과 나보다 세월을 더 살아낸 주변 언니들, 지금도 젊음을 보냈음에도 묵묵히 제 자리를 고목처럼 지키는 많은 인생 선배들이 떠올랐다. 같은 시절을 겪고도 종이처럼 구겨지지 않은 그들을 향한 경외감이 솟구쳤다. 여전히 애송이 같은 나 자신을 좀 더 생각해보기로 했다.


‘이 길의 끝은 어디인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나?’


어디서 들어본 듯한 노래 가사가 마음 한 켠에 밀려 오며 내 마음과 밤공기를 적셨다.


‘이래도 길은 있을 테지.’

‘삶은 계속될 테지.’


무너진 건강에 지지 않고 약해진 몸과 함께 ‘그래도 가야지’라고 생각하며 현관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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