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인디라이터 호 Nov 22. 2021

하루를 시작하는 가장 좋은 방법

나는 매일 집으로 출근한다

“제발 네 침대에 가서 작업해주길 바라.”

“왜 똑같은 네 침대를 두고 너는 맨날 내 침대에서 비비적거리냐?”

“미안, 여기가 편해.”


엎드렸다 앉았다 냉장고 문을 열었다 오후 두 시가 될 때까지 세탁소 아저씨와의 짧은 접견을 제외하고 아직까지 현관 밖을 나가지 않고 있다. 하루 활동량을 채울 길이 없어 식단 조절을 하며 주로 샐러드나 샌드위치로 간단히 점심을 때우고 있는데, 오늘은 속살마저 눅눅한 먹다 남은 치킨을 뜯으며 뒹굴거리다 보니 벌써 이 시간이다. 거울을 보니 꾀죄죄한 몰골이 지난밤의 흔적을 털어내지 못했다. 늘어진 바지춤을 추스르며 잠시 밖으로 나갈까 말까 짧게 고민해본다.


‘아뿔싸. 벌써 두 시라니.’


어제 작업해 둔 에세이의 도입 부분을 다시 읽으며 수정한 후 구상 중인 작업들에 대해 검토해보려 수첩을 펼친다. 뭔가 하긴 했는데, 특별히 일한 건 없는 것 같은 월요일 오후다. 째깍째깍 쉬지 않고 시계는 부지런히 초침을 움직인다. 쉴 새 없는 움직임이 나를 재촉하는 것 같아 마음 불편하다. 이런 날은 종일 리듬이 깨진다.


자유 기고가의 독립적인 하루는 우물쭈물하다 큰일 나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큰일이란, 실로 아무런 특별한 일을 만들어 내지 못한 채 생산도 하다못해 책 한 줄도 읽지 못한 아주 못난 하루를 의미한다. 나의 못난 하루는 주로 월요일인 경우가 많은데, 이런 날이 아예 없을 수는 없지만 어영부영하는 날들이 많아지면 허울만 멀쩡한 실로 한가하기 짝이 없는 말 그대로 프리한 사람이 되고 만다. 그래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하루의 첫머리, 특히 한주의 월요일을 어떻게 시작하는가는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그 하루가 그 날 뿐만 아니라 한 주의 밀도와 강도를 좌우하기 때문이다.


오늘처럼 망조의 기운의 느껴지는 날을 제외하면 내 경우 하루를 여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단연코 운동이다. 짧아도 좋고 길어도 괜찮다. 집 앞 강변 파크 골프장을 곁길 삼아 머리 희끗한 노인들과 함께 걸어도 좋고 동네 헬스장 일일 권을 끊어 후들거리는 근육에 긴장을 가해주어도 좋다. 형편이 된다면 일주일에 한두 번 트레이너를 만나 몸의 중심을 곧게 세우며 미세한 경련을 일으키는 것도 좋다. 그러면 찌뿌듯 수면으로 몽롱해진 뇌는 잠을 깨고 몸속 찌꺼기들은 상쾌한 아침 호흡과 함께 공기 중으로 사라진다. 몸 구석구석 곳곳의 세포들이 그날의 신선한 기포들로 채워지는 것이다. 그렇게 시작하는 날은 절반은 성공이다. 몸과 마음의 코어가 잡히듯 시간의 중심이 세워지며 하루의 에너지와 영감을 끌어내 순순히 나를 작업으로 인도해준다.


운동을 마치고 간단히 샤워 후 신선한 주스 한잔으로 다음 시간을 여는 것도 좋다. 나는 오랫동안 저녁형 인간으로 살아왔기에 아침형 인간으로 진화하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낮은 내게 큰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던 경우가 많아 예사 사람들과 어울려 커피숍을 전전하거나 영혼의 허기를 채우려 여기저기 의미 없이 기웃거리는 일이 잦았다. 물론 짧은 하루의 방랑들이 때로는 영감을 주며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 주기도 지만 결국 영감은 영감에 머물르며 소멸됐을 뿐 시간이 그 자체로 생산해내는 것은 많지 않았다. 시간을 일궈내는 법을 터득하지 않고는 잠재력은 숨죽인 생명일 뿐이요, 가능성은 늘 자체의 확률에 머무를 뿐이다.


그렇게 오랫동안 지루한 죽은 시간들을 경험하고 나서야 나는 스스로 진화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다행히 결심이 굳게 선 자리는 자연스레 다음의 행동을 좇아 스스로 움직여 주었다. 물론 첫 시작은 갖고 있던 것들을 두서없이 글로 쏟아 내는 단순한 작업일 뿐이었지만 엉클어진 것들에는 질서가 필요한 법. 그런 의미에서 시간을 주도적으로 사용하는가 아닌가 매우 요하다. 하루의 시작은 시간의 포문을 여는 일과도 같기 때문이다. 잠이 덜 깬 아침 시원한 생수 한 잔이 온몸을 깨워 주듯 산발한 하루의 에너지들은 운동을 통해 새롭게 정렬된다. 정렬된 에너지는 하루라는 시간 속에서 응축된 응어리를 풀어내며 내 손과 발을 움직인다. 어제의 선수는 가고 다시 오늘의 선수가 되어 새 하루의 레이스를 펼치는 것이다. 오늘 하루의 경사가 완만할지 아닐지는 알 수 없다. 매일의 레이스는 월, 화, 수, 목, 금, 토, 일, 요일처럼 다양하다. 오늘은 오늘의 색을 내면 그만이다.


하루의 종료 시점에 무엇이 있을지는 알 수 없다. 곧은 몸과 함께 매일 새롭게 시간을 정렬하는 나는 그저 걷고 달릴 뿐이다. 산뜻한 출발이 그 하루 속에 아무런 장애물이 없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겠지만 그럼에도 출발 구간의 긴장감은 의식적으로 유지해 다. 팽팽해진 시간과 단련된 근육을 통해 진화하고 싶기 때문이다. 시간과의 사투에서 승률은 점점 좋아질 것이다. 복잡한 하루의 패를 쥐는 날도 늘어날 것이다. 그러므로 결과는  보듯 뻔하다. 다음 발치의 어느 지점이 분명 미소를 띠며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뭐 그러다가 어영부영 우물쭈물 넘어지는 날도 있겠지만 또 그런들 어떠한가. 다시 하루를 세우면 될 일이다. 몸과 마음을 다시 정렬해 늘어진 하루와의 씨름에서 다시 이기면 될 일이다. 그러니 재미나지 아니한가! 하루하루 새롭게 나와 인생을 정렬해가는 일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