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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디라이터 호 Nov 29. 2021

재택 출근러의 비애(feat. 정신승리)

나는 매일 집으로 출근한다

“요즘 모해?”

“나 바쁘게 잘 지내고 있어.”

“뭐 따로 하는 일은 없고?”

“음... 이것저것 하는 중. 개인 프로젝트 두어 개 진행 중이야.”


가끔 이런저런 이야기를 글로 쓸 수 있음에 찡한 감사가 솟구치다가도 오늘처럼 누가 이런 따위의 글을 읽어 줄까 싶은 생각이 들 때면 풀이 죽고 힘이 빠지는 날이 있다. 뭔가를 시도할 자격에 대해서는 스스로에게 충분한 당위성을 주었다고 생각하는데, 그럼에도 가끔은 모든 이윤 창출 작업을 배제하고 지금처럼 순수하게 나의 창작 작업에만 몰두하는 일이 옳은가에 대해 고민이 들기도 한다. 특히나 오늘처럼 나의 안부를 세밀하게 물으며 넘치는 친절을 보이는 누군가를 만난 날은 더욱 그렇다. 내 상황에 대한 기대와 궁금증에 보답할 만한 특별한 꺼리를 전혀 제공해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타인으로부터 별다른 인정 욕구를 갖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스스로를 잘 모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지나간 과거의 시간에는 나도 성취에 있어 뒤지지않는 부류의 인간이었다. 경쟁 자체를 썩 좋아하지 않았지만, 해야 한다면 뒤지지 말 것, 이라는 생존적 마인드셋으로 타인과 나를 주기적으로 저울질해가며 뼈와 사을 갈아내던 시절이 내게도 있었다. 무엇이 동기가 되어 지금과 같은 존재적 탈바꿈을 이루어냈는지 정확히 말하기는 어렵지만 변화된 시간과 환경 속에서 내가 감당해야 하는 역할과 주업의 성격이 조금씩 달라지며 자연스레 현재의 모습이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다. 환경의 변화가 타의적이라면 그 사이 내가 했던 수많은 선택은 자의적이므로 내외부적 동기 모두 이유라고 할 수도 있겠다. 복잡한 이야기는 이쯤에서 줄이고.


그저께 오랜만에 만난 후배는 지난 2년간 일구었던 자신의 성취를 일장 연설처럼 들려주었다. 중간중간, 그래 맞아, 맞장구 쳐주기도 하고, 그녀의 눈물겨운 도전과 노력에 가슴이 찡해오기도 했지만 아직은 내게서 돌려줄 특별한 이야기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마음이 금세 씁쓸해져 왔다. 나의 시간은 드러나는 성과가 없을 뿐 나름 치열하게 흘러가고 있는데, 뭐가 잘못된 것일까, 라는 생각이 스물 거리며 올라와 애써 부인하려 해도 돌아오는 길 마음이 한 풀 꺾이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오늘처럼 누군가의 성취를 정면으로 마주하는 날은 나름의 감정 정리가 필요하다. 시기나 질투에서 나오는 부정적인 감정만은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내 인생의 속도와 관련해 내가 선 지점을 자꾸 돌아보며 갖게 되는 일종의 반문 어린 감정이다. 어떤 의미에서 재택 출근러의 모든 작업은 자신만의 속도에 기반을 둔 것이기 때문에 한없이 자유롭지만 그럼에도 모든 외부 자극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는 없다. 각자가 담긴 환경을 차치하고서라도(그럼에도 환경은 중요하다) 서로가 가진 역량이나 개개인의 빛나는 시간이 다른 것뿐인데, 이렇게 실의에 빠지는 날에는 그런 점들은 간과되고 오직 결과만 두 눈에 들어와 이런 혼란스런 감정을 남기곤 한다. 부적절한 감정에서 스스로 자유하고자 나와의 불필요한 신경전을 끊어 버리려고 여러 번 마음 추스르기를 시도해보지만 그럼에도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며칠 나와의 소모전은 이어진다.


‘그간 무엇을 했나?’

‘나는 어디로 가고 있나?’


더러는 소모적인 시간들이 통찰력을 주며 나를 성숙시키기도 한다. 그럼에도 소모전은 말 그대로 소모전이다. 승패 없이 버려지고 생채기를 내는 그런 류의 시간들이다. 골머리를 앓으며 스스로를 해부하고 작업을 해부하고 꿈을 해부하고 미래를 난도질하는 시간이다. 물론 그 시간의 끝이 가끔은 깊은 해답을 줄 때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전투의 끝은 그냥 있던 자리, 다시 가야 할 자리, 즉 원점, 겨우 몇 발자국 나아온 원래의 지점으귀결되곤 한다. 그냥 가던 길을 다시 가라고 조용히 스스로 부추기면서 말이다.


그럼에도 가끔은 이번처럼 깨닫는 것이 있다. 앞으로도 종종 만나게 될 이 구간. 즉 누가 보아도 딱히 이루어지거나 성취된 것이 없는 존재감 없는 구간에서 매번 이러한 신경전을 거치지 않고 어떻게 하면 성공적으로 버텨낼 것인가에 대한 나름의 해답이다. 상황이 어찌 되었건  동일한 자리에 머물러 있는  바람직하지도 않을뿐더러 설령 눈에 보이지 않을지라도 앞을 향한 발걸음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보이지 않는 조용한 구간을 나는 ‘성숙의 구간’ 혹은 ‘내실의 구간’이라 명명하기로 는데 말하자면 실제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표면적으로는 '침묵 같은 구간'이다. 한마디로 남들이 보기에는 전혀 발전이 없어 보이는 별 볼일 없는 구간인 것이다. 그럼에도 안을 들여다보면 내적 자아와의 치열한 전투나 앞을 향한 도전은 계속되고 있어서 실은 느리되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꽤나 '발전적인 구간'이다. 흥미롭지 않은가! 비단 이런 류의 감정을 느끼는 사람이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 즉 그 누구에게도 분명 조용한 고군분투의 간은 동일하게 존재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구간에서 승기를 잃지 않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정신승리’다. ‘정신승리!’ 너무 비겁해 보이지 않는가! 맞는 말이다. 우리는 통상적으로 뭔가와 겨뤄 결코 이길 수 없을 때 그러나 마음마저 패배하지는 말아야 할 때 이 단어를 사용한다. 비겁한 들을 위한 조롱에 가까운 표현이다.

그러나 조금 더 곰곰이 생각해보니 결코 그런 뜻만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승리란 결코 비겁함만을 무게로 다루는 단어가 아니다. 존재적 위안과 자기 확신을 내포한 단어이다. 인생에서 결코 피할 수 없는 터널과 같은 이 정신승리의 구간에서 실제로 정신이 이기지 못하면 나머지 구간에서의 싸움은 패배로 끝날 가능성 높기 때문이다. 밝은 에너지로 무장해 이 어둠의 구간을 뚫고 나아가지 못하면 이후로는 무한 루프럼 동일한 터널 속에서 반복을 거듭하며 제자리만 돌다 끝날 확률이 높다. 무를 수도 없고 나아갈 수도 없는 혼조한 상황에 계속 머물러야 한다. 왜냐하면 정신은 사고를 지배하고 사고는 행동을 결정하며 행동은 더 나아가 습관을 형성해 인생의 모습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정신이 승리하지 못하는 모든 영역에서의 분투는 자체로써의 의미만 있을 뿐 실제 승률은 없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마음의 긴장이 탁하고 풀어졌다. 말로는 각자 다른 출발선에서 다른 지점을 보며 달리는 레이스가 인생이고 모두의 시간대는 같지 않다고 이야기하면서도, 자꾸 자리에 줄을 그어 목적지마저 다른 타인과의 구간을 비교하며 말도 되지 않는 승부로 스스로를 괴롭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의 성취는 박수의 대상이며 자극 점은 될지 언정 전혀 다른 서로 간의 레이스에서 잦은 구간 기록을 비교하지는 말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이미 시작된 그러나 아무것도 드러나는 게 없는 이 구간에서 적어도 정신만은 승리하며 가야겠다는 다짐이 들었다.


나와 같이 한량하기 그지없는 재택 출근러는 그럴듯한 회사의 명함도 내보일 직책도 가지고 있지 않다. 더구나 이 조용하기 짝이 없는 시도의 구간에서는 결과물이 나오기 전까지 내가 무엇을 하는지, 어디까지 왔는지, 그리고 어디로 갈 것인지, 아무것도 명확하게 설명해 줄 수가 없다. 그러므로 타인의 인정에 목이 마르면 허기진 갈증은 점점 더해질 것이므로 오늘도 나는 정신승리를 택하겠다고 굳게 마음먹었다. 내 정신의 승리를 이 조용한 시간에 더해 아무것도 빼앗기거나 강탈당하는 것 없이 꾸준히 작업을 잇고 생애 시간들을 잇겠다고 다짐했다. 이유인즉, 정신승리야 말로 소리 없이 조용한 내 전쟁의 모든 것일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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