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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너를 추억해

by 인디라이터 호

오랜만에 만나 친구를 만나 더 이상은 회사를 다닐 여력이 남아 있지 않아 관두어야겠노라 친구에게 말했을 때 나의 가장 친한 여고 동창 유경은 결코 안 된다며 한사코 나를 말렸다. 그 나이에 딱히 특별한 계획이 있는 것도 아니고 회사를 다닌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스펙인데 이 서울 바닥에서 그런 끈하나 가지고 있지 않으면 소개팅을 하거나 맞선을 보기에도 쉽지 않다는 거였다. 내 지친 영혼 따위는 전혀 고려되지 않은 현실적인 조언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전혀 틀린 말도 아니긴 하다.


소위 말하는 지잡대 출신의 볼 꺼라곤 그닥 빠지지 않는 외모가 전부였던 나에게 그런대로 나쁘지 않은 회사를 다닌다는 건 실제로 내가 가진 하나의 스펙이었는지도 모른다. 처음부터 꿈을 좇을 몸과 마음의 여력이 없기도 했거니와 열정이나 패기도 부족했고 그래도 입에 풀칠은 하는 연봉을 받으며 서울에서 회사를 다닌다는 사실은 친척들이나 일반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쁘지 않은 이미지로 작용했던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사직을 해야 했던 이유는 꽉 끼는 청바지 같은 조직 문화가 견딜 수 없이 힘들었고 강한 자가 살아 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 남는 자가 강하다는 억센 레토릭이 살아 숨쉬는 그곳에서 나는 숨 쉬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물론 나도 그렇게 누군가를 숨막히게 했다는 사실 또한 부정할 수 없다.


특별한 일을 하지 않으며 그저 동네 까페를 어슬렁거리며 자아 치유와 프리 에이전트, 즉 프리랜서를 꿈꾸며 시간을 보내던 나에게 찾아 온 온라인 강사의 길은 그야말로 오아시스였다. EBS 온라인을 시작으로 유명한 학습지 회사, 유명한 수험생 사이트, 공무원 사이트, 그리고 강의를 제작하는 많은 신생 벤처 기업 그리고 교재 제작회사들과도 그 후로 사오 년을 함께 했는데 일 자체가 적성에도 잘 맞았을 뿐 아니라 대인 관계에 대한 스트레스가 거의 없었다.


어디 그 뿐이랴. 가장 좋았던 점은 내가 일한 것 이상의 보수를 아름답게 지급 받았다는 점이다. 일반 강의와 다르게 촬영 강의는 그 이후 소유권이 회사에 귀속되고 회사는 장기간 그 강의를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강의 촬영 시간에 준하는 비용을 포함해서 통상 적게는 십 반원 많게는 강당 삼사십 만원 까지도 지급을 받을 수가 있었다.


‘이거지!’


이게 바로 내가 원하는 거였다. 프리 에이전트 서적에서 읽었던 시간의 자유와 관계의 자유 그리고 금전의 자유까지 정말이지 내게 완벽한 자유로 큰 만족을 주는 그런 일이었다. 강의 촬영이 매일 있던 건 아니었지만 주 삼사 일은 촬영하는 날이 많아졌고 적게는 하루에 이십 만원 많게는 백 만원을 버는 날이 많아졌다.


촬영 후에는 대치동이며 선릉이며 공덕이며 강의가 끝난 인근 지역 레스토랑에 앉아 혼점(혼자 먹는 점심)을 하며 오후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그러다가 심심하면 미술관도 가고 삼청동 나들이도 가고 백화점도 다니며 나름 사는 것 같은 시간을 보낸 것 같다. 뭐 여기에 소개팅 건수까지 쏟아 졌으면 더 말할 나위 없었겠지만 특별한 누군가와 데이트를 한 기억이 없는 걸로 보아 그러지는 못한 것 같고 아등바등 서울 생존기를 치르느라 혹은 너무 고된 서울 살이로 지쳐 미뤄두고 즐기지 못했던 많은 일들을 누렸던 것 같다.


맞다. 마침내 자유가 선택되었고 인생의 다음 챕터로 넘어가기 전 그 시간을 온전히 누리면 되었다. 별 감흥은 없었지만 남들이 다하기에 한두 번 쭈뼛 동호회 모임에 나가 보기도 했고 스케줄이 없는 날에는 석촌 호수를 돌며 실컷 봄꽃 구경을 하다 까페로 향하기도 했다. 금방 둘째를 낳은 친구 집에 들러 점심을 먹기도 하고 정처 없이 이곳 저곳을 쏘다니며 지금은 남아 있지도 않은 싸구려 물건을 잔뜩 사기도 했다.


누군가 그 시절에 대해 백 퍼센트 만족하냐고 묻는다면 물론 나는 그 시절의 알곡 같던 시간을 조금 더 알차게 보내지 못해 후회하노라고 그렇게 답하겠지만, 이제는 기억과 사진으로만 남은 과거의 그 시절과 그 순간의 자유를 더 없이 사랑했노라고 아니 사랑하노라고 현재형으로 대답하고 싶다.


우연이었는지 아니면 우연이 아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나의 베스트 프렌드 조차 말리던 그 시절 무모했던 나의 선택은 나의 삶을 다른 방향으로 이끌어 주었다. 나이가 들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회의 문은 점점 좁아지지만 그래서 나는 어느 시절의 문이 닫혀도 결코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어려운 순간이 없는 건 아니지만, 보이지 않는 또 다른 기회의 문이 그 뒤에 자리하고 있기에 그리고 더 나이가 든 지금은 그럭저럭 자족하는 법을 힘들게 배웠기에, 나는 한 시절의 풍성했던 자유를 어느 한 색이라도 어둡게 덧입혀 퇴색하게 하고 싶지 않다. 찬란했던 순간은 그냥 그렇게 두어 빛을 발하게 해야 하므로.


지금도 여전히 아니 자주 내 인생이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다. 나 하나만 잘 하면 될 일인데 세월이 기회의 문을 닫아 버리기도 하고, 이제 나 좀 잘 해 보려고 하는데 주위에서 일어나는 만가지 일들을 신경쓰느라 할 수 없이 멈추어야 할 때도 있다. 시간이 가끔은 이제 너 하나가 아닌 너를 둘러싼 환경 전체가 너라고 말해 줄 때가 많아 속상하기도 하지만, 기억에서 꺼내보며 맘껏 추억할 수 있는 시절이 있는 건 정말 다행이다. 그리고 늦으나마 그 시간이 보석이었다는 걸 알아 볼 수 있게 되어 그것도 행운이다.


'반짝 반짝 반짝 반짝'

'모두의 시절이 나의 어제처럼 아니 나의 어제보다 더 빛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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