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없는 곳으로, 아무 걱정 없는 곳으로, 무거운 마음 하나 없이, 또다시 시작되는 한 주가 없는 곳으로 떠나버리고 싶어요.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간다는 것이 이런 건가요. 그렇게 많은 것을 하고 있는 거 같지도 않은데 왜 이렇게 다 내려놓고 싶은 것인지. 어른이 되면 생각할 것도, 짊어지고 가야 하는 것들도, 책임져야 하는 것들도 많아진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 모든 것들을 다 이리저리 들고 다니는 게 너무 무거워요. 며칠간 잠도 밥도 쉼도 없이 냉장고에는 상해 가는 음식들로 가득해져 가요. 난 내가 힘들고 스트레스받을 때 아무 생각 없이 먹는 줄 알았는데 그건 힘든 것도 아니었나 봐요. 먹을 힘이라도 있었지만 정말 힘들면 아무것도 안 하고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고 챙겨 먹을 힘도 없어요.
도대체 멈출 수 없는 걱정들은 어떻게 다뤄야 할까요. 잠을 자려 누우면 끝없이 쏟아지는 걱정들 때문에 무엇이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한 내가 되었어요. 그 새벽에 일어나 뭐라도 해야 할 거 같은 불안함. 악보를 한 번이라도 더 봐야 할 거 같고, 준비하고 있는 것들을 한 번이라도 더 훑어보고 확인해야 마음이 편한 내가 너무 불쌍해요. 이런 걱정들은 누구와도 나눌 수 없어요. 내 걱정을 얘기하면 상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거든요. 특히 부모님께는 더더욱 말 못 해요. 잘 안 먹어도 잘 먹고 있다고, 잘 못 자도 잘 잔다고, 잘 못살고 있어도 잘 살고 있다고 해야 그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편안할 테니까요.
세상에는 왜 이렇게 상처를 주는 사람들이 많을까요? 이렇게 생각해보면 나도 누군가에게는 상처를 주는 사람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항상 또 조심 또 조심하게 돼요. 할게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생각할 것이 많아지고 노력할 것이 많아지고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럴수록 너무너무 지쳐가는 나에게 너무 미안해요. 우리는 절대 누구의 삶도 가늠할 수 없어요. 그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 말하지 않으면 모르거든요 그러니 내 맘대로 판단하고 생각해서는 안돼요. 얼마나 많은 시간들을 힘들게 보냈는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지, 얼마나 고된 시간들을 보냈는지 모르거든요.
나를 충분히 믿는다는 건 어떻게 하는 걸까요. 요즘은 나를 믿는 연습을 하고 있어요. 나는 나를 충분히 믿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무엇을 성취해 얻었지만 그 후의 모습에 나는 자신감이 하나 없는 불안한 눈빛만을 가지고 있는 연약한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어요. 남에게 상처받아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는 나는 언제쯤 찾을 수 있을까요? 이럴 때는 어디 폭 안겨 실컷 울고 싶어요. 집으로 돌아가 아무 걱정 없이 맛있는 밥을 먹고, 잠도 푹 자고, 건강한 마음을 회복하고 싶지만 지금은 그렇게 할 수 있는 시간도, 기회도 없어요.
세상을 살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는 요즘이에요. 상처받았던 내 마음을 조금이라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가 있어 참 다행이에요. 항상 마음에 새기고 있는 것은 ‘내가 얼마나 노력하고 얼마나 최선을 다하고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내도 그것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그냥 이유 없이 내가 싫은 사람도 있을 거라는 것’ 거기에 너무 마음을 쓰지 않아야 한다는 것.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고, 내 인생에는 수많은 일들이 일어날 것이고,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들이 더 많을 텐데 너무 지금 일어나고 있는 모든 것에 초점을 두지 않고 나의 미래에는 어떤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를 기대하는 것이 더 가치 있는 마음이고 시간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어요.
내일 자고 일어나 눈을 뜨면 내일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들을 잘 해낼 수 있을지의 걱정을 제일 먼저 해요.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싶어요. 용기와 응원 같은 것들은 별로 도움되는 거 같지 않아요. 그냥 이 답답한 마음을 큰 들판 위에 훨훨 흘려보내고 싶어요. 그리고 내가 잘하고 있다는 것을 믿는 내가 되고 싶어요. 뭐 이렇게 인정받으려 애쓰는지. 인정받아서 뭐하려고 이렇게 애쓰나 싶어요. 내 인생은 내가 쥐고 있는 것인데 누군가에게 인정을 받는다고 내 인생이 달라지고 더 좋아지는 것은 아니잖아요. 나에게 충실하며 살고 싶어요. 아빠는 참 대단해요. 나는 내 인생에서 하루를 겨우 버티며 사는데 아빠는 아빠 인생, 그리고 가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짊어지고 있잖아요. 아빠는 이렇게 많은 것들을 어떻게 다 짊어지고 살 수 있을까. 엄마와 아빠가 참 존경스러워요.
도망가고 싶은 것보다는 조금 쉬고 싶다는 말이 맞을 것 같아요. 내년에 졸업을 앞두고 있는 막 학년이 이렇게 힘들 줄은 몰랐어요. 해야 하는 것들이 수두룩 하지만 그 와중에 조금의 여유도 갖고 싶은 내가 너무 욕심내고 있는 걸까요? 어떻게 해야 할지, 내 일 년은 어떨지, 내가 준비하고 있는 이 모든 것들은 어떻게 흘러갈지 걱정이 돼요. 그래서 너무 떠나고 싶어요.
글 이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