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나를 멈춰 세우기 위해
4년 6개월을 다녔던 회사를 그만두던 날, 회사 앞 도로변에 있는 나무의 잎이 유난히 푸르게 보였다. 11월임에도 푸르렀던 그 잎은 바람에 흔들거리고 있었고, 나는 한껏 웃으며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나 어쩐지 잘 될 것 같아'
마음속에서 작은 희망의 속삭임이 들려왔다. 매번 지나다녔지만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것 같은 그 광경과 내 안의 속삭임을 간직한 채, 그렇게도 그만두고 싶었던 회사를 떠나왔다.
사실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다. 무엇을 할지 큰 뭉텅이 정도로 생각은 했지만, 내 인생이 어떻게 전개될지는 몰랐다. 그저 살고 싶었다. 나답게. 나답게 사는 게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어도 단 한 번만이라도 나라는 사람을 알아보고 싶었다. 그렇게 나와의 접점 찾기가 시작되었다.
*진자와 함정
회사를 다닐 때 나는 언제나 흔들렸다. 중심을 향해 가고자 하지만 결코 그 중심에 닿을 수 없이 왕복운동을 계속하는 진자의 추 같았다. 그 흔들림은 외부에서 시작되었다고 믿었다. 하고 싶었던 일에 실패하고 들어간 회사, 그 안에서 의미를 찾지 못한 채 억지로 하게 된 업무, 이상하리만치 수직적인 조직문화... 이 모든 것은 나를 흔들어대기에 충분한 요소였다. 나는 이것들이 흔드는 대로 이리저리 갈피를 못 잡고 흔들렸다. 그렇게 이십 대 후반에 찾아온 오춘기를 온몸으로 받아내며 심연 속으로 가라앉았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내가 그토록 세차게 흔들렸던 이유는 선택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에게는 두 가지의 선택지가 있었다. 하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회사와 사회란 원래 이런 거지’ 하면서 순응하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맞지 않는 업무와 회사 속에서 과감하게 탈출하여 내 세계 속으로 뛰어드는 것이었다. 나는 그 어떤 것도 선택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나는 다 가지고 싶었다. 조직 속에서 끊임없이 회의감을 느끼면서도 회사가 주는 급여와 안정감을 가지고 싶었고, 그럼에도 그 안에서 일의 의미와 자율성을 발견하기를 원했다. 모든 것을 원한 것이 결국 모든 것을 얻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 무력감과 절망감에 나는 극도로 흔들렸다. 흔들리는 진자의 추를 살짝 잡아 어느 한쪽에 고정시키면 될 것을,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
일이 끝나고 집에 갈 때면 문득 시린 공허감이 밀려왔다. 쿵, 하고 내 안에 있는 무엇이 묵직한 소리를 내며 밑으로 쑥 빠져나가는 느낌이었다. 분명 떨어져 나간 소리는 있는데 닿는 소리가 없었다. 나는 종종 내가 끝을 알 수 없는 심연 속에 빨려 들어가 그대로 지구의 내핵까지 뚫고 들어가는 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무언가가 빠져나간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공허했고 그럴 때면 비참한 기분이 들곤 했다. 하지만 이런 기분이 찾아와도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하늘 한번 쳐다보고 한숨 한번 푹 내쉰 채 집으로 걸어가는 것뿐이었다. 몸의 안식 외에 그 어떤 안식도 주지 않는 그저 말뿐인 내 방이 있는 그곳으로.
*에드거 앨런 포, <함정과 진자> 차용
어둠 속에 홀로 남아
지하 감옥 창살 아래
묶여 있어 무력하게
난 무죄야 죄가 없어 난
저기에 진자가 매달려 내 머리 위
날 향해 겨눠진 위태로운 칼
어서 빨리 심장을 꺼내 나를 죽여줘
커다란 진자가 매달려 내 머리 위
그 진자가 좀 더 아래로
움직인다 좀 더 빠르게
더 날카롭게 좀 더 느리게
좀 더 거칠게 좀 더 아래로
날 향해 진자가 춤춘다 머리 위로
매의 눈으로 나를 찢으려
화염 속에 불타올라 죽길 바란다
날 향해 진자가 춤춘다 내 머리 위
내 주위엔 함정들만
그 함정엔 어둠만이
그 어둠 속엔 공허함만
조여 오는 벽들만이
불타는 창 커져가고
강해져 가면 난 약해져
함정과 진자의 중간에 여전히 달려
종탑 위의 악마가 줄을 당긴다
모두 매달려 있지만 숨을 내쉰다
함정과 진자의 안에서 반드시 부딪히며 나오리라
빠져든다 어둠 속의 지옥 속으로
저 산이 무너진다 천둥소리 함께
거센 소용돌이가 날 삼켜버린다
온 우주가 날 버려도 반드시 거칠게 부딪히리라
거칠게 싸워가리라
거칠게 이겨내리라
뮤지컬 <에드거 앨런 포>의 넘버 "함정과 진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