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시장의 아나운서

도슨트 근무기

by 수인

또각또각

평일의 전시장에는 내 발소리만 이따금씩 울려 퍼졌다. 아무도 없는 전시장에서 조용히 그림을 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순간. 그 순간을 만끽하며 1층 전시를 여유롭게 둘러봤다. 그러나 2층으로 올라서자 이 미술관에 나 말고도 다른 관람객들이 더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소규모 관람객들 앞에는 한 여성이 있었고 열심히 전시를 설명하고 있었다. 나는 이 광경을 보자마자 아주 강렬하게 ‘나 저거 하고 싶어!’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저거’란 바로 도슨트(docent)였다.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에서 관람객들에게 전시물을 설명하는 안내인.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갑자기 도슨트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끓어올랐다.


직감적으로 미술계 쪽 일이 내 일이라는 것을 알아챈 것인지 혹은 단순히 도슨트가 멋있어 보였던 것인지 아니면 그저 새로운 일을 하고 싶었던 것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우연히 마주친 ‘큐레이터 학교’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나에게도 운명이 다가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운명이 자신의 꼬리를 조금이나마 보여줬을 때 나는 그걸 지나치지 않고 잡기로 했다.


꿈도 사람 사이의 관계처럼 ‘연(緣)’이란 게 있다고 믿는 나는, 꿈이 나에게 보여준 조그마한 힌트를 놓치지 않았다. 그리고 그 힌트는 ‘마음’을 통해 나에게 다가왔다.


미술 전공도 아니고, 나이도 있어서 미술계에서 어떻게 제 미래가 펼쳐질지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이 프로그램을 계기로 조금씩 탐색해 보려 합니다. 큐레이터가 된다면 대중들이 좀 더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지만, 사회와 인생의 가치, 제 철학이 담긴 전시를 기획하고 싶어요. 미술이나 미술관을 어렵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 평소에 항상 아쉬웠어요. 제가 미술을 통해 느끼는 인생의 가치, 얻게 되는 감정과 새로운 생각을 많은 사람들도 얻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한 달여의 큐레이터 학교를 마치고 나서 나는 이렇게 소감을 적었다. 그때는 몰랐는데 이제 보니 이미 이 프로그램을 통해 나는 큐레이터라는 직업에 매력을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사뭇 진지하게 전시와 큐레이터에 관해 생각하고 있어서 조금 놀랍다. 이런 진지한 관심과 강렬한 열망이 맞아떨어진 걸까. 나도 모르게 미술계 구직 사이트를 어느 순간 들락날락하며 보고 있었고 마침 올라온 도슨트 구인 공모에 지원해서 합격했다.


나는 총 두 곳의 미술관에서 도슨트로 활동했는데, 그중 한 곳이 바로 ‘도슨트하고 싶어!’ 하고 바랐던 곳이었다. 관람객으로 오던 곳에서 도슨트로 일하게 되다니! 이런 우연이 참 신기했다. 이곳은 도슨트 교육 프로그램이 잘 정비된 곳은 아니어서 도슨팅을 스스로 깨쳐야 했지만 큰 불만 없이 받아들이고 혼자 공부했다. 일단 호젓한 미술관에 미술관의 일원으로 있다는 게 만족스러웠고, 관람객들과 눈을 마주치고 같이 호흡하며 작품을 설명하는 건 더 만족스러웠다.


큐레이터가 어떤 주제로 작가와 작품을 전시에 녹여낼지 기획하는, 방송국으로 치면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PD라면 도슨트는 전시장의 아나운서였다. 미술관에서 근무하는 여러 사람들의 정성이 들어간 전시를 관람객들이 잘 소화할 수 있도록 엑기스를 콕콕 집어 설명하는, 전시와 관람객들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는 중요한 사람이었다. 나는 큐레이터가 작성한 전시 설명글을 읽고 숙지했다. 더 궁금한 사항이 있으면 별도로 찾아보기도 했고, 대본을 들고 작품을 보며 어떻게 설명할지 시뮬레이션을 돌렸다. 도슨트로 근무했던 또 다른 미술관에서는 작가와 직접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주어서, 작가에게 작품에 관해 궁금했던 사항을 물어보기도 했다. 이렇게 공부하고 연습한 다음 관람객들 앞에 서서 전시와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안내했다.


나는 관람객들과 함께 작품을 둘러보는 게 즐거웠다. 단순히 설명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관람객들의 연령대, 성별, 미술에 대한 관심도, 전시 관람 경험, 미술 전공 여부, 전시 관람의 목적 등을 고려해서 설명하는 방법과 방식을 조금씩 달리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전시장에 관람객이 들어오면, 눈치껏 동태를 살핀다. 전시를 자세히 보는지 아닌지, 도슨트가 필요해 보이는지 아닌지 보다가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건넨다. “혹시, 도슨트 설명 필요하세요?” 이렇게 하면 열에 아홉은 반색을 하며 설명을 듣고 싶다고 했다. 그럼 나는 전시 설명에 들어가기 전에 스몰토크를 통해 관람객들의 배경을 파악한다. “저희 미술관에 와 보신 적 있으세요?” “전시 보는 거 좋아하세요?” 이렇게 하면 다양한 대답이 쏟아져 나온다. “사실 저는 미술 전공생인데 공부하러 왔어요,“ “아뇨, 이 미술관은 처음이에요, “ “제가 좋아하는 작가라서 저 멀리 경상남도에서 왔습니다.”


배경은 다 달랐지만, 같은 전시와 작품을 두고 이야기를 나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관람객들은 내 이야기를 듣고 고개를 끄덕끄덕 하기도 하고, 자신만의 감상을 덧붙이기도 했다. 그리고 설명이 끝난 후 많은 분들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설명을 듣지 않았으면 잘 몰랐을 텐데 듣기를 잘했다고, 고맙다고.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뿌듯함과 기쁨이 함께 차올랐다. 나 또한 난해한 현대미술 앞에서 난감하게 서 있곤 했고, 미술관에 있는 사람들은 괜히 다가가기 어려웠기에 묻지도 못하고 물음표를 한가득 안고 돌아온 적이 많았다. 그래서 더 다가가고 싶었다. 나도 아직 미술이 어렵지만 꼭 어려운 것만은 아니라고,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듣게 되면 사실 미술은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 생각과 감정을 담은, 삶 그 자체라는 것을 말해주고 싶었다.


나는 그렇게 전시장의 아나운서가 되었다. 직사각형 텔레비전 속에서 어쩌면 멀게 느껴지는 아나운서 대신 전시장이라는 공간 속에서 관객과 생생하게 대화하고 교감하는, 살아있는 전시장의 아나운서 말이다. 아마도 어렴풋이 나는 매개하는 것의 기쁨을 느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작품 속에 숨어 있는 작가의 이야기, 전시 속에 숨어있는 기획자의 이야기, 미술관이라는 공간 속에 숨 쉬고 있는 그 모든 이야기를 내가 매개체가 되어서 전달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지금도 도슨트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어시스턴트 큐레이터로서 도슨팅 할 일이 자주 없어서 아쉽다. 지금은 전업 도슨트도 있고, 직업인으로 고용되어 돈을 받고 일하는 경우도 많아지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도슨트는 자원봉사의 개념이 더 강하다. 나도 하루에 교통비나 중식비 명목으로 5,000원, 8,000원 받으며 일했다. 이런 방식이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돈과 상관없이 정말 미술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일했던 게 가끔 그립다. 그리고 작품과 관람객을 매개하는 도슨트를 계기로 미술계에 첫발을 내디뎠으니, 도슨트라는 일은 나와 미술계 또한 매개해 준 것이나 다름없다. 순수한 열정이 나를 또 다른 세계로 인도한 것이다.


또각또각, 나에게 살짝 열린 길을 따라 걸어가 보기로 했다- 도슨트로 일했던 미술관에서



*도슨트 용어 정의는 네이버 지식백과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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