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바람을 알게 되다

면접을 통해 깨닫게 된 일의 의미

by 수인

"나, 이번이 마지막이야. 이번에도 안되면 그냥 나도 남들처럼 살려고. 일에서 의미 찾으려고 안 하고 그냥 일은 일이다, 이렇게."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한 말이다. 도슨트 경험을 발판으로 나는 미술계에서 일자리를 찾기 위해 이곳저곳에 원서를 넣었다. 당시 아무것도 몰라서 용감했던 나는 미술 전공이나 경력 등 자격 제한이 없는 곳이면 어디든 넣고 봤다. 그래서 넣었던 곳이 공예 전문 갤러리, 미술 관련 사회적 기업, 아이들에게 전시를 설명하는 강사, 옥션 등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내가 미술계에서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생각해 보지 않고 아무런 방향도 없이 밑도 끝도 없이 원서부터 들이밀었던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절박했다. 더 늦기 전에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어서 삼십 대 초반의 나이에 회사를 그만두고 나왔고, 내가 그동안 마음속에 품어왔던 일들은 하나씩 다 도전해 보았다. 이제 남은 건 '미술' 하나였다. 이마저도 안되면 나는 다시 돌아가야 했다. 침체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도저히 멈출 길이 보이지 않던 그 흔들림 속으로.


당연히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채용 담당자로부터 이야기를 직접 들은 것은 아니었지만 듣지 않아도 뻔했다. "음.. 이 지원자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우리 회사에 지원서를 냈을까? 미술을 전공한 것도 아니고, 관련 경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도슨트 경험은 미술계에서는 경력으로 쳐주지 않는다.) 게다가 나이도 많잖아! (미술계에서는 사실 나이보다는 관련 전공이나 경력이 더 중요하다. 하지만 나는 관련 전공도 아니고, 경력도 없는데 나이도 많다! 그러니 이건 사실상 쓰리콤보다.)"


그러나 이런 나를 면접까지 볼 기회를 준 곳도 있었으니 그중 한 곳은 미술 관련 사회적 기업이었다. 신진예술가를 발굴하기 위해 아트페어를 열고, 예술가의 공공예술 참여를 독려하는 등 예술가의 복지를 위한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예술과 사회, 관람객을 연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곳이었다. 내가 서류를 통과했으니 큰 진입장벽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고, 무엇보다 예술가의 삶을 향상하면서 합리적인 방향으로 예술과 관람객을 매개한다는 점이 좋았다.


오전 10시에 있는 면접, 아침 9시에 집을 나섰지만 늦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근처 역에 내려 택시를 탔다. 택시를 타고 회사 앞에 내렸을 때 처음 느꼈던 감정은 '아.......'였다. 작은 회사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더 후미진 곳에 있었고, 회사라기보다는 일반 가정집 같은 느낌이었다. 그동안 너무 크고 삐까뻔쩍한 회사만 다녀서 그런지 낯설었다. 최대한 수수하게 입는다고 입은 건데 내가 그럼에도 과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백화점과 로펌이라는 다소 화려한 경력에 역시나 화려한 것을 좋아할 것처럼 생긴 외모와 분위기. 나는 예전에 공기업 취업을 준비했을 때도 면접장에서 이런 소리를 들었다. "예전에 다녔던 직장이 화려하네요, 잘 맞아 보이는데 왜 나왔어요? 아, 결혼하면 회사 그만둘 건가요?" 나는 또 보이는 것만으로 내가 이곳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이라는 느낌을 줄까 봐 걱정이 되었다.


대표님이 들어오시고 면접이 시작되었다. 대표님은 조심스럽지만 조곤조곤 이야기할 거 다 하시는 스타일 같았고, 눈빛이 따뜻하며 진실했다. 이런 분이라면 같이 일을 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대표님이 "이곳을 차선으로 생각하고 들어오려는 사람이 많아요."라고 하셨기 때문이다. 나 또한 그런 생각이 없잖아 있었기 때문에 뜨끔했다. 대표님은 걱정이 많아 보였다. 특히 소규모 기업에서 겪는 인력 운용에 대해 고심하고 계셨다. 그도 그럴 것이 사람들은 다 좋아 보이는 곳, 있어 보이는 곳에 가고 싶어 하니까. 나 또한 그런 마음으로 대기업과 로펌에 들어갔고 그곳에서 데일 대로 데어봤음에도 아직도 네임밸류를 신경 쓰지 않는 건 아니었으니까.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는 것,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은 정말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다른 사람과 사회의 시선을 이겨내는 용기도 필요하지만 내가 나를 이겨내야 하는 용기도 만만치 않게 중요했다.


면접을 보고 나오면서 이곳에 합격하지 못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정말 좋은 면접을 봤기 때문에 괜찮았다. 이 인터뷰를 통해 내가 일을 함에 있어 어떤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좋아하는지가 분명해졌다. 나는 규모가 크고 일견 화려해 보이는 회사에서 하나의 부속품처럼 일하는 것보다는 조금 작은 규모의 회사라도 내가 많은 것을 책임지고 보다 자율성이 많이 부여된 상태로 일하는 것을 선호하는 것이었다. 큰 규모의 회사에서 일할 때 괴로웠던 것 중 하나는 지금은 내가 이렇게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죽을 둥 살 둥 일하지만 어느 날 툭 하고 회사를 떠나버려도 그 회사는 아무 문제없이 굴러간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회사가 성과를 내서 작년 대비 얼마나 성장하고 이런 게 나는 와닿지도 않고 기쁘지도 않았다. 물론 내가 일한 게 먼지만큼이라도 도움은 되었겠지. 하지만 So What? 그게 대체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내가 한 일이 가시적으로 잡히지 않는데, 상사의 꾸지람과 멘션 외에 그 어떤 피드백도 피부로 느껴지지 않는데. 하지만 규모가 작은 회사에서는 일의 공정에 처음부터 끝까지 참여할 수 있고, 그렇게 해서 만들어 낸 결과물은 내 것처럼 느껴질 수가 있다. 조직이 작기 때문에 고객과 만나는 접점이 생길 가능성도 더 커지고 내 결과물에 대한 피드백도 바로바로 받을 수 있다.


대학로의 길거리를 거니는데 여름 바람이 살랑, 불어왔다. 그 부드러운 바람을 느끼며 내가 원하는 게 이런 것이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내가 이 회사에 합격하건 그렇지 않건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내가 왜 일을 하고자 하는지, 어떤 일을 하고자 하는지가 좀 더 명확해진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원래도 좋아하는 대학로 거리를 걷고 또 걸으면서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2년 전 런던의 워털루 브리지를 거닐 때 런던의 하늘을 보고 바람을 느끼며 '아, 이러려고 돈 버는구나' 생각했지만 이번에는 '아, 이러려고 내가 일을 하려고 하는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다른 시공간의 다른 바람, 그 바람 속에서 내 새로운 바람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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