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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큼한 봄동무침

by 해피연두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11월 중순만 해도 이게 겨울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날씨가 따뜻하더니~!!

어느 순간 "지금이 겨울이라는 것을 잊은 것이냐!!" 하면서 호통이라도 치듯이.


두꺼운 패딩을 꽁꽁 입고, 목도리와 장갑으로 무장을 하고 다니지만 '바이러스'라는 놈은 우리를 가만두지 않는다. 어느 순간 우리 몸속으로 들어와 우리를 괴롭힌다.

세 아이들이 한 명씩 한 명씩 번갈아서 감기에 걸리기 시작했다. 열도 나고, 기침도 한다. 열심히 병원도 다니고 약도 챙겨주지만, 감기는 쉽게 물러서지 않는다.

같은 집에서 함께 지내고 있으니 아이들에 이어서 나까지도 감기에 걸려버렸다.

감기에 걸린 엄마는 건강한 엄마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를 수가 없다. 다르면 안 된다.

정 다르다면 약을 챙겨 먹고, 옷을 따뜻하게 챙겨 입는 정도..

감기 걸린 엄마도 식사를 준비하고, 청소와 빨래를 하고, 아이들을 챙기고, 내 일도 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힘은 들고 입맛도 뚝 떨어져 버렸다.


뭘 먹어도 먹는 둥 마는 둥... 세상 그렇게 맛있게 느껴지던 음식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러면서 다이어트가 되는 거 아냐"

우스갯소리로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도 안다.

이 시기가 지나가고 나면 또다시 잘 먹는 나로 돌아온다는 걸..

그리고 빠진 살보다 더 찌는 일이 생긴다는 걸 말이다.


다음 한주 동안 식구들이 먹을 식재료를 사러 토요일 아침에 마트로 향했다.

한 손에는 일주일치 식단을 적은 수첩과 다른 한 손에는 커다란 장바구니 2개. 매주 나를 따라다니는 나의 장보기 친구들이다. 토요일 오전마다 가는 익숙한 장소.

마트를 돌아다니다가 눈에 들어온 건 '봄동'이었다.

"우왕! 맛있겠다"

봄동을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마음의 소리가 나왔다.

노란색 중에서도 쨍한 노란색과 찐한 초록색이 어우러져 동그랗게 그 모습을 뽐내고 있었다.

"이걸 사서 맛있게 겉절이 해달라고 해야지!!"

여러 개의 봄동 중에서도 향긋함이 풀풀 풍기는 색이 또렷한 봄동 하나를 비닐에 얼른 담아두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봄동을 먹을 생각을 하니 입맛이 저절로 돌아오는 느낌이었다.


"이번에 봄동 나왔던데! 엄청 맛있어 보여서 하나 사 왔어!"

조잘거리면서 봄동을 꺼내 들었다. 남편은 이리저리 인터넷검색을 하더니 능숙하게 봄동을 다듬기 시작했다. 인터넷 레시피라는 게 비슷비슷하면서도 잘 들여다보면 천차만별이다. 당연히 사람마다 입맛이 다르고 재료를 다루는 방법이 다르니 레시피도 다를 것이다.

처음 봄동을 사 온 내가 레시피 하나를 보고 따라 했었다. 완성된 사진은 무척이나 맛있게 보이는 봄동무침이었다. 하지만 역시 똥손인 나는 봄동을 너무 푹! 삶아버렸다.

너무 익어버린 김치인지, 물러버린 김치인지, 알 수 없는 이상한 맛이 되어버렸다.

그 봄동을 거의 다 먹어갈 때 즈음 남편이 말했다

"봄동은 익히지 않고 그냥 겉절이처럼 무치는 게 더 나을 것 같아"


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원하던 맛이 아니었다.

그 이후 봄동은 사 오는 건 내 담당, 요리하는 건 남편 담당이 되었다.

이번에도 능숙하게 봄동을 씻고 먹기 좋게 다듬더니 필요한 양념들을 척척 꺼낸다.

남편은 숟가락을 이용해서 적당량을 넣고, 나는 양념을 제자리로 치우는 역할담당이다.

액젓과 고춧가루 등등 무언가가 들어가 더욱 맛있어진 봄동무침은 나의 침샘을 자극했다.

"음!! 역시 남편의 손맛이 최고야"

간을 보겠다면서 봄동을 무치는 남편옆에 서서 손으로 하나를 집어 먹었다. 입안 가득히 아삭함과 상큼함이 퍼지기 시작한다. 입맛도 없었는데 봄동 덕분에 사라졌던 맛세포들이 하나씩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나 보다.


봄동을 맛있게 먹고는 힘을 내기 시작했다. 내 몸도 아프지만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하면 티가 안나는 집안일이지만 하지 않으면 티를 팍팍 내는 집안일도 기다리고 있고, 돈을 버는 내 일도 해야 한다. 아이들이 얼마나 나아졌는지 어디가 더 아픈지도 챙겨야 하고, 학습도 챙겨주어야 한다. 봄동 하나를 사서 한 주 동안 맛있게 먹었다. 그다음 주에도 마트에서 장을 볼 때 또 하나의 봄동이 내 장바구니에 들어있었다.

"다음주도 맛있는 봄동무침을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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