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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들과 나의 칼국수는 좀 다르네

by 해피연두

지금. 겨울방학중이다.

1월 초에 시작된 방학은 아직도 지나간 날 보다 남은 날들이 훨씬 더 많다.

처음부터 돌밥돌밥으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나만 손해라는 건 그동안의 경험으로 충분히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 금방 지나갈 거야! 마음을 굳게 먹자!"

"혼자 먹는 게 아니라 같이 먹으니 점심이 더 맛있어지겠지! "

나름 럭키비키 한 사고를 가지고 방학을 시작했었다.

하지만 아침부터 산처럼 쌓인 설거지를 하면서, 점심메뉴를 무엇을 먹을지 고민을 하면서 그런 마음들은 조금씩 사라지고, 힘듦이 차곡차곡 스며들고 있다.

"아! 아직은 개학이 멀었네!

애꿎은 달력만 한번 노려보았다.



"점심에 뭐 먹을까?"

"나 칼국수 먹고 싶어!"

그래, 먹고 싶다는데 당연히 해드려야지요. 칼국수 대령하겠습니다!

"음 칼국수라~~"

일단 마트에서 칼국수면을 하나 산다. 그리고 멸치육수를 낸다. 야채를 몇 가지 넣는다. 면을 가볍게 헹군 뒤에 끓인다. 간을 맞춘다.


하지만 나에게 각각의 과정들은 쉬운 과정들은 아니다.

일단은 얼마나 물을 넣는지도 잘 모르겠다. 칼국수면을 사면 봉지에는 물 몇 ml가 필요한지 적혀있지 않다. 나에게 이런 눈대중으로 그냥 물을 담아서 끓여보았더니, 한 번은 물을 너무 조금 넣어서 볶음 칼국수가 되어버리기도 했고, 한 번은 한강물이 되어서 한참을 덜어내야 했다.

칼국수면도 봉지에서 꺼내어 살살 턴뒤에 국물에 넣어주었는데 그 안에서 서로 달라붙어버려 칼국수가 아닌 떡이 되어버린 적도 있다.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하고 나서야 그래도 먹을만한 칼국수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렇게 봉지 칼국수로 헤매고 있을 때 발견한 게 바로바로바로 밀키트다.

어느 날 냉동코너에서 발견한 대기업의 밀키트 칼국수!

일단 대기업의 제품이니 믿음이 간다. 나름 다른 식품들을 사 먹을 때도 평타이상의 맛은 보장되었기에 고민 없이 고를 수 있었다.

1인분씩 육수와 면이 개별 포장되어 있다.

라면 끓이듯 물을 올리고 수프를 넣어둔 뒤 끓으면 육수와 면을 넣으면 끝이다. 맛은 또 어떤가.. 꽤 많은 양의 바지락조개와 야채들이 냉동상태로 들어있어 육수의 맛은 꽤 괜찮다. 매콤한 고추까지 살짝 들어가 시원하면서도 칼칼한 바지락 국물맛으로 합격이다.

그래 이맛이다!


아이들은 다행히 두 가지 칼국수를 모두 잘 먹는다. 그래서 두 가지를 번갈아가면서 해주고 있다. 집에서 이렇게 먹으면서도 외식메뉴를 선택할 때 또 칼국수를 선택하기도 한다. 어디서 먹어도 크게 실패하지 않고 만족하면서 먹는 메뉴가 바로 칼국수인 것 같다. 넓적한 면발과 쫄깃한 바지락조개, 시원한 육수가 어우러진 우리 집 단골메뉴이기도 하다. 아이들에게 칼국수라는 음식은 어떤 기억으로 남게 될까? 밀키트의 맛으로 기억될까? 아니면 엄마가 면을 사서 끓여준 칼국수로 기억될까? 언젠가 한번 물어봐야겠다. 나도 궁금하니까~


나에게 기억된 칼국수는 조금 다르다. 칼국수를 먹기 위해서는 일단 밀가루와 밀대가 필요했다. 엄마는 밀가루가 가득 담긴 대야에 물을 부어서 반죽을 만들었다. 그 반죽을 도마보다도 더 크고 넓게 죽죽 밀어버렸다. 옆에 앉아서 점점 커지는 밀가루 반죽이 신기해서 나도 밀어보고 싶다고 조르기도 했다.

그러면 엄마는 작은 밀가루 반죽을 떼어서 손에 쥐어 주셨다. 그 반죽을 조몰락거리면서 놀았던 기억이 난다. 한참을 밀어서 큰 동그라미 모양으로 변신한 반죽은 이리저리 척척 접혔다. 그리고 칼로 쓱쓱 잘라주면 칼국수면이 완성되었다.

엄마가 이렇게 면을 만드는 동안 부엌에서는 보글보글 육수가 만들어지고 있다. 뚜껑을 열면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났다. 육수에 만들어진 국수를 풍덩 넣고는 이리저리 휘저어 주셨다. 옆에서 빨리 익기를 기다리면서, 엄마가 쥐어준 작은 반죽을 조물조물 가지고 놀았다. 길쭉하게 혹은 납작하게 이리저리 모양을 만들다 보면 엄마의 칼국수도 완성이 되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의 음식들은 손이 참 많이 갔다. 그때는 밀키트는 당연히 없었겠지만 칼국수면정도는 팔고 있지 않았을까?

엄마는 힘들지만 손수 반죽을 하고 밀대로 밀어 자르면서 칼국수를 끓여주셨다.

더 저렴하게 먹으려고 그런 걸까? 더 맛있게 먹으려고 그런 걸까?

이유가 무엇이든 중요하진 않다.

엄마의 칼국수는 엄마의 정성과 사랑이 듬뿍 들어간 음식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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