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늘 "부엌이 싫다"라고 외치는 내가 어릴 적에도 그랬을까? 가만히 어린 시절을 생각해 본다.
그때는 내 의견과 상관없이 좋은 싫든 엄마를 도와야 했었다. 엄마 혼자 음식을 준비하는 모습이 어린 마음에도 신경 쓰였던 것 같다.
더구나 나는 집안의 장녀였다.
그 유명한 k-장녀! 막중한 책임감과 의무감을 가지고 있다는 걸 은연중에 나도 알고 있었나 보다.
많은 제사와 손님들을 위해서 엄마는 많이 바쁘셨다. 손이 커서 준비하는 음식의 양도 많아 나도 돕지 않으면 일이 빨리 끝나지 않기에 나 역시 부엌의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야 했다.
명절이 얼마 남지 않는 날에 엄마는 미리 만두빚을 준비를 했다.
초등학생인 내가 들어가서 앉아도 될 것 같은 커다란 대야가 거실 가운데 준비되었다.
그리고 여기에 만두소가 되는 재료들이 하나씩 들어가기 시작했다. 시장에서 사 온 네모난 두부 몇 모는 커다란 면 주머니 속에 들어가 그 본래의 모습을 잃고 물기까지 쭈욱 빠져야 속재료가 될 수 있었다. 물기가 있으면 만두가 맛이 없다면서 엄마는 힘껏 두부의 물기를 짜내었고, 어느새 두드려 맞아 형체를 잃어버린 물기 빠진 포슬포슬한 두부는 대야 속으로 들어갔다.
김치 역시 마찬가지이다. 역시나 가지고 있는 국물을 모두 짜내어 물기 없는 뽀송한 김치로 변신해야 대야 속으로 입장이 가능했다. 이리저리 꾹꾹 주머니를 누르는 게 어린 나의 눈에는 재미있어 보였나 보다.
"나도 해볼 거야"하면서 옆에서 같이 눌러보기도 했지만 도와주는 건지, 오히려 방해가 되는 건지 별 도움은 되지 않았던 것 같다.
물기를 빼느라 엄마의 벌써 힘이 들었지만, 들어갈 재료는 아직 많이 남아있었다.
미리 불리고, 뜨거운 물에 익힌 당면은 건져내어 잘라주어야 했다. 엄마는 양손에 칼을 하나씩 들고 잘 잘라지지 않는 물컹한 당면을 능숙하게 잘라내었다. 당면이라는 재료가 평소 딱딱한 상태이지만, 물에 불리고 익히면 말랑말랑해진다. 어린 나는 익힌 당면은 칼로 자르면 무 자르듯 탁탁 잘 잘라질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완전히 오산이었다. 익힌 당면은 익히지 않는 처음상태의 당면보다 자르기가 더 어렵다. 물컹물컹하니 한번 자르려면 어깨에 팔에 힘이 꽤 들어간다는 건 나중에 내가 직접 만두를 만들 때 알게 되었다.
"이거 왜 이러지! 이렇게 자르기가 어려운 거였어? 엄마의 쌍칼실력은 대단한 거였구나"
그렇다고 긴 당면을 그냥 넣을 수는 없다. 다른 재료와 잘 어우러지게 하기 위해서는, 먹을 때 목에 걸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난도질되어 짧아진 당면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육점에서 구입한 곱게 갈아진 고기와 다진 파, 다진 양파, 다진 부추 그리고 계란 몇 개가 들어간다. 그리고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더 들어갔을 것이다. 소금, 후추등의 양념도 들어가서 더 맛있는 만두소가 완성이 되었다.
힘들게 만두소를 완성했지만 모든 과정이 이제 겨우 반정도 진행된 것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만두피 만들기가 시작된다. 반죽을 적당한 크기로 떼어내어 밀대로 밀어주어야 한다. 만두소가 들어가도록 적당한 동그라미가 완성되면 얼른 가져와 만두소를 한 숟가락 넣고 끝부분을 꾹꾹 눌러준다.
밀대를 밀어주는 건 엄마가, 그리고 소를 넣는 건 내가 이렇게 역할을 나누어서 만두를 만들었다. 대야에 가득 담긴 만두소를 보면서 맛있어 보인다면서 살짝살짝 먹어보기도 했다. 익지도 않은 고기가 들어간 속을 먹는다고 잔소리를 들으면서도 몰래몰래 먹는 만두소는 꿀맛이었다.
커다란 대야의 만두소는 좀처럼 줄지를 않았다. 수십 개의 만두를 만들고 나서야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점점 줄어드는 만두 속만큼 완성된 만두는 늘어가기 시작했다. 엄마는 중간중간에 다 만들어진 만두를 찜기에 쪄주었는데 그때의 만두맛은 정말이지 세상의 모든 만두 중에 최고였다. 그 어떤 대기업도 절대 따라 할 수 없는 그리고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그런 맛.
만두를 모두 완성하고 나서는 찜기에 쪄서 냉동실에 넣고 두고두고 먹었던 기억이 나서 나도 아이들과 함께 만두를 만들어 보기도 했다. 나름 만두라면 여러 번 만들어본 터라 자신 있었다. 일단 인터넷 서치를 하고 필요한 재료들을 준비했다. 엄마가 된 내가 재료들을 하나씩 손질해서 작은 볼에 담고는 아이들이 직접 소를 넣을 수 있도록 숟가락도 앞에 하나씩 준비해 주었다. 그리고 만두피를 사서 만들기 시작!
엄마의 만두맛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나름 꽤 먹을만한 만두가 완성되었던 기억이 있다. 아이들도 재미있게 만두를 만들어 주었다. 물론 아이들의 손으로 만든 만두라서 찜기에서 나온 만두는 제 모습을 잃고 여기저기 펑 터져 버렸지만 나름 재미있는 추억으로 남아있다. 이번 방학에도 다시 한번 만두 만들기에 도전해볼까? 아직도 방학은 1달이나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