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친구는 결혼 안 한대? 독신주의자야? 2

<알> 독신주의는 아닌데 결혼 생각은 없다.

by 뇽알

‘친구랑 같이 살기’를 시작한 지 4년이 다 되어가건만, 초반이나 지금이나 다를 것 없이 종종 저렇게 물어보는 친구들이 있다. 사실 이 문제에 대해서 뇽과 심도 깊은 대화를 해 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 둘 다 관심 없는 주제라서 - 갑자기 이런 말을 들으면 준비 없이 면접장에 들어간 것처럼 당황하게 된다. ‘결혼하고 싶다’라고 얘기한 적은 없지만 그렇다고 ‘독신주의’라는 신념이 강하게 자리 잡은 것도 아니니 말이다. ‘독신주의(獨身主義)’라고 이야기하려면 일단 둘이 따로 살아야 성립되는 말 아닌가 싶기도 하고. 그리하여 정확히 말하자면 ‘독신주의는 아닌데 결혼 생각은 없다’라는 게 맞을 것이다.


자유와 독립을 원할 뿐입니다.

어렸을 때,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엄마에게 “엄마는 아빠랑 결혼했으니까 나는 오빠랑 결혼해야 돼”라는 이상한 논리를 펼쳤다는 이야기 이후로 내 입에서 ‘결혼하고 싶다’라는 말이 나왔다는 일화는 들어본 일이 없다. 일단 성장 과정에서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봐오면서 미래 남편에 대한 기대치가 쭉쭉 하락하였을뿐더러, 매년 명절·제사 때마다 갑자기 집안을 북적북적 채우는 사람들을 지켜보노라면 ‘이게 사람 사는 모습이지’가 아니라 ‘이렇게는 못 살겠다’라는 생각이 확고한, 아웃사이더의 정체성이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인터넷에서 심심치 않게 보는, ‘결혼이란 두 사람의 만남인 동시에 두 집안의 만남’이라는 이야기를 접하면서는 우리 집안의 규모도 감당 못 하는 내가 남의 집안까지 챙길 그릇이 아니라는 결론이 금방 나와버렸다. 맏며느리만 하늘이 내리는 게 아니라 인싸도 하늘이 내린다고 생각한다. 인간관계의 폭이 넓어질수록 인격이나 지위보다 스트레스 지수가 먼저 높아지는, 나의 괴팍한 성미를 어찌할 수가 없다. 엄마나 친구들은 “결혼하면 달라진다”라는 희망의 주문을 걸어보려고 했지만, 나는 그것보다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신봉한다. 정확히는 고칠 의지가 없는 게 맞겠지만.


그렇다면 뇽은 어떨까. 나와는 달리 무대 공포증이 없고 마음만 먹으면 어느 집단에서든 리더가 되고 마는 천성을 가졌지만, 의외로 아싸의 성향이 있다. 인간관계가 넓어지는 것에 대해 나만큼의 부담감을 갖지는 않지만, ‘혼자 하면 하는 거지, 굳이 타인과 모든 일을 공유할 필요는 없다’라는 사고방식에 있어서는 동일하다. 뇽이나 나나 혼밥이든 혼영이든 필요한 상황에서 주저함이 없고 - 같이 살아도 나만 좋아하는 영화는 온전히 집중하고 싶어서 혼자 보러 다녀오곤 한다 - 쇼핑을 할 때도 누군가와 함께 고민하는 것보다는 혼자서 빠르게 목적 달성하는 것을 더 좋아하는 편이다. 뇽은 대체로 처음 들른 가게에서 큰 고민 없이 물건을 사 버리고, 나는 누구의 간섭도 받기 싫어서 쇼핑의 90% 이상을 온라인에서 해결하니 말이다. 둘 다 어느 집단에서든 사람들과 두루 잘 지내는 게 좋다는 건 알지만, 친목을 더욱 다지기 위해 관심 없는 취미 생활을 억지로 공유하거나 무리하게 1박을 함께 해 가며 살을 부대끼는 노력까지는 사양한다. 하루 중 ‘혼자만의 시간’이 반드시 보장되어야 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서로 가장 잘 맞는 셈이다.


혼자라서 행복한, 지금 이 순간

둘 다 혼자 있는 걸 즐긴다면서도 아이러니하게 같이 살게 되었지만, 이 생활에 익숙해졌다고 해서 타인과 새로운 가정을 꾸릴 수도 있을 거라는 비약은 하지 않는다. 또한 함께 있는 동안에도 각자의 활동을 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다. 뇽이 핸드폰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 영상을 보는 동안 나는 인터넷 기사나 커뮤니티 게시글을 읽고 있고, 서로 재미있다고 여기는 건 공유하지만 상대방이 공감하지 않아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다. 애초에 나는 텍스트를 더 좋아하고 뇽은 이미지를 좋아한다는, 극명한 취향 차이를 서로 알고 있고 받아들인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물론 뇽의 영향으로 함께 보는 영상이 늘어나긴 했지만, 글을 더 좋아하는 나의 습성은 바뀌지 않았다.


집안일도 주말에는 내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뇽이 이부자리를 정돈하는 식으로 함께 하지만, 시간이 촉박한 평일에는 각자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굳이 물어보지 않고 해 놓는다. 쓰레기통 비우기는 뇽이 다음 날 아침에 하겠다고 해도 내가 못 참고 한밤중에 해치우고, 자꾸만 물 주기를 잊어버리는 절명 위기의 화분들은 뇽이 살리고 있다. 우리는 같이 살고 있지만 각각의 인격체라는 사실을 늘 잊지 않고 있기 때문에, 같은 마음일 때 신기해하고 기뻐 하지만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어도 크게 섭섭하게 여기지 않는다. 물론 생색 대마왕인 내가 집안일을 미리 해놓고 뇽에게 칭찬을 강요하는 건 사실이지만, 최소한 “나는 하는데 쟤는 왜 이걸 안 하지?” 따위의 생각은 하지 않는다는 것.


하지만 내가 다른 사람과 결혼해서 살면서도 쿨한 태도를 유지할 수 있을 거라고 장담하지는 못하겠다. 일단 뇽과 나 사이 안정의 기반에는 20년 넘게 알고 지낸 세월이 있는데, 처음 만난 사람과 이 시간을 다시 쌓아간다는 것은 감히 상상도 하기 힘들다.

또한 우리는 서로를 가족처럼 여기고 있지만, 완전한 타인에서 시작하는 친구 관계의 특징 또한 잊지 않고 있다. 다시 말해, 익숙해졌다고 해서 양보나 배려를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다. 뇽이 요리를 좋아한다고 해서 아침에 내가 눈을 떴을 때 밥이 차려져 있을 거라고 기대하지 않고, 설거지는 내 운명이라고 받아들였지만 4년이 다 되어 가는 지금도 뇽은 내가 설거지할 때마다 눈치를 본다 - 단지 급하게 설거지를 할 뿐인데 와장창 소리가 나면 화가 났다고 생각하고 더 눈치를 본다 -


어떤 관계든 두 사람이 함께 노력하면 혼자보다 나은 삶을 만들어갈 수 있겠지만, 부모님과 함께 살던 시절의 나를 떠올려보기만 해도 혈연이나 법적 테두리로 보장된 관계 안에서 내가 과연 지금만큼 노력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부부 관계는 친구와 마찬가지로 완전한 타인끼리의 만남이라는 점은 같지만,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배우자 혹은 부모의 역할이 덧씌워지면서 나를 객관화시키는 일이 쉽지 않을 것 같다. 이와 더불어 공감대 형성 측면에서는 확실히 이성보다 동성이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일례로, 매달 호르몬의 저주로 한 사람이 예민해지거나 무기력해졌을 때 진심으로 고통을 알아주고, 찬장에 초콜릿을 잔뜩 채워놓거나 핫팩을 데워주며 함께 극복하는 것이다. 혹자는 둘이 그렇게 잘 맞으니 한 사람이 남자로 태어났으면 더 좋았겠다고 얘기하지만, 그랬다면 지금과 똑같은 상황은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초코가 약일레라


결론적으로 그 친구가 앞으로도 결혼을 안 할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나는 안 하는 게 확정이며, 이런 나와 함께 살아주는 것에 오늘도 감사히 여긴다. 그리고 혼자 살지는 않더라도, 하나의 독립된 생물체로서의 나를 유지하는 삶이 ‘독신’의 범주에 들어간다면, 둘 다 독신주의자인 것으로 마무리하겠다.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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